삼성·CJ 싸움에 애꿎은 인사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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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최대 물류업체인 대한통운 인수를 두고 삼성과 CJ가 정면 충돌했다. 대형 M&A(기업 인수·합병) 과정에서 치열한 승부를 벌이다보면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음해하는 경우는 많다.

이번 사안은 한국 최고 재벌가인 범삼성가 내부에서 벌어진 공방전이어서 많은 관심을 모았다. 대한통운 인수전은 일단 CJ가 승리하면서 끝이 났지만, 막후에 잠복된 삼성과 CJ의 뿌리깊은 앙금이 재현된 것이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왼쪽)과 이재현 CJ그룹 회장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왼쪽)과 이재현 CJ그룹 회장

이 사건의 전말은 CJ가 대한통운 인수를 위해 삼성 계열사인 삼성증권과 자문계약을 맺은 터에 삼성의 또 다른 계열사인 삼성SDS가 포스코와 손잡고 입찰에 참여하면서 충돌했다. CJ는 “삼성이 CJ의 사업을 방해하려는 목적”이라고 주장했고, 삼성은 “비즈니스 차원”이라고 반박했다.

이 사안은 삼촌(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조카(이재현 CJ그룹 회장) 간의 해묵은 감정이 들춰지는 사태로 번졌다. 두 사람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삼성과 CJ, 이건희 회장과 이재현 회장 간의 앙금은 가깝게는 지난 1994년 계열분리 과정에서 비롯됐지만, 멀리는 지난 1966년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에서 시작됐다. 당시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고(故) 이병철 회장은 구속됐고, 삼성은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의 후폭풍으로 장남 이맹희씨(이재현 회장의 부친)와 차남 이창희 전 새한그룹 회장은 청와대 투서자로 내부에서 지목되면서 결국 삼성을 떠났고, 이후 끝내 삼성의 경영에 복귀하지 못했다. 이맹희씨에게 붙여진 별칭은 ‘비운의 황태자’였다.

이 사건 이후 삼남 이건희 회장이 경영 전면에 부상하면서 1987년 이병철 회장이 타계한 뒤 삼성의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이건희 회장이 총수에 오르고 계열분리작업이 본격화되면서 삼성그룹의 모기업 중 하나인 제일제당은 장손인 이재현 회장에게 넘어갔다. 계열분리는 이맹희씨의 부인 손복남씨 명의로 돼 있던 삼성화재 지분과 삼성이 보유했던 제일제당 지분을 맞교환하면서 매듭지어졌다.

하지만 계열분리 직후 이건희 회장 측에서 심복이던 이학수 전 비서실장(당시 차장)을 제일제당의 대표이사로 전격 발령내면서 이재현 회장 등을 경영진에서 배제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에 이재현 회장 측이 강력 반발하고 나서면서 난타전을 벌인 끝에 이 전 실장은 사흘 만에 삼성으로 돌아왔다.

그러던 차에 1995년 삼성은 이재현 회장의 서울 장충동 자택 이웃 옥상에 (이재현 회장의) 집안 동태를 살피는 CCTV를 설치한 사실이 드러나 또한번 충돌했다. 그 후에도 고 이병철 회장의 제사나 장충동 자택 세금문제 등 가족 내부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 이어져왔다.

사실 이번 대한통운 인수전은 삼성측의 말처럼 “비즈니스 차원”에서 보면 비일비재한 일이다. 하지만 CJ에는 “자라보고 놀란 가슴”처럼 그동안 누적돼온 감정의 골이 너무 깊어 과잉대응한 것인지 모른다.

한데 재미있는 것은 전날까지 삼성과 CJ가 전면전을 벌일 것처럼 보였던 대한통운 인수전이 불과 몇천억원의 입찰가 차이로 CJ의 승리가 됐다는 점이다.

“절대 양보 못한다”며 강경하던 삼성(포스코 컨소시엄)의 입장을 감안하면 뒷맛이 개운찮다.

이 와중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은 삼성과 일전불사를 외치던 CJ가 인수자 선정 당일 갑자기 홍보 책임자를 전격 퇴진시킨 대목이다. 혹 누군가 “(대한통운을) 양보할 테니, 해묵은 감정을 들춰낸 임원을 퇴진시키라”고 제안한 것은 아닐까. 왠지 대한통운 인수전에서 애꿎은 인사가 희생된 것 같아 께름칙하다.

정선섭<재벌닷컴 대표> chaebul@chae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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