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과 경영실적은 반비례한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요즘 대기업 사람들을 만나면 “2012년이 걱정이다”라는 말을 한다. 미국과 유럽 경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데다 내수마저 신통찮고, 중동사태로 유가도 치솟으니 기업으로선 ‘안팎 곱사등이’ 처지다.

기업들의 이런 걱정에 하나 더 하는 것이 2012년에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총선이다. 일부 기업들 사이에서는 2012년을 ‘두 마리 마녀의 해’라고 말할 정도다. ‘두 마리 마녀’는 증권시장의 변동성을 크게 만드는 선물과 옵션 만기일이 겹치는 상황을 빗대 유래한 말이다.

17대 대통령 선거 벽보. / 김정근 기자

17대 대통령 선거 벽보. / 김정근 기자

사실 기업들은 선거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어떤 선거든 간에 기업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 같은 기업들의 생각은 그리 틀리지 않아 보인다. 재벌닷컴이 최근 ‘대통령 선거와 10대그룹 경영실적’을 조사한 결과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해의 경영실적은 다른 해에 비해 유난히 나빴다. 실제로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된 1987년 이후 치러진 5차례 대통령 선거 당해 연도의 10대그룹 매출은 전년 대비 평균 5.9%가 증가했다. 이는 조사대상 기간인 1987~2007년에 10대그룹이 기록한 연평균 매출 성장률에 비해 크게 낮은 것이다.

10대 재벌의 매출은 1987년 69조9000억원에서 2007년에는 1192조8000억원으로 연평균 18.2%씩 증가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해의 순이익과 매출로 남기는 순이익률은 오히려 하락했다는 점이다.

10대그룹의 순이익은 1987년 6800억원에서 2007년 30조1000억원으로 20년 동안 연평균 2.2배씩 증가했지만, 선거 당해에는 전년 대비 평균 8%가 감소했다. 순익률 감소는 더욱 심했다. 10대그룹의 순익률은 대통령 선거 직전 연도에는 평균 2.33%였으나, 당해 연도에는 2.02%로 0.31%포인트가 뚝 떨어진 것이다. 회계장부상 기업의 순이익은 총매출에서 재료비나 판매관리비 등 순수 매출 및 영업비용과 영업외적 비용을 공제하고 남는 항목이다. 조사 결과를 요약하면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해에 대기업의 매출은 다른 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조했고, 영업비와 영업외 비용이 늘어나 순이익을 잠식했다는 얘기다.

10대그룹의 순이익이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선거 당해 연도의 영업외 비용이 늘어난 때문이다. 물론 영업외 비용에는 환차손이나 금융이자와 같은 경영외적 비용이 변수로 작용하지만, 기부금도 적지 않다. 15대 대통령 선거 당시 파문을 일으킨 ‘차떼기’ 스캔들처럼 기업들의 순이익을 까먹는 영업외 비용은 다른 해보다 훨씬 많이 발생한다. 대다수 기업들이 이같은 선거와 관련해 지출한 영업외 비용을 회계장부에 분산처리하기 때문에 찾아내기가 불가능할 뿐이다.

물론 정치와 기업경영의 관계도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기업에 손 벌리는 정치인도 줄었고, 정치권과 거리를 두는 기업들도 많다. 재벌 총수들 중에는 내년의 절반을 해외출장으로 잡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정선섭<재벌닷컴 대표> chaebul@chaebul.com

재벌이야기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