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가 사위 총수시대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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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이 수백억원의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화교 출신인 담 회장은 동양그룹 창업주 고 이양구 회장의 둘째 사위로, 그의 손위 동서는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다. 담 회장의 구속은 한때 재계를 풍미했던 동양가의 한 축이 무너지는 것이어서 안타까움을 준다.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이 지난 2006년 2월 창사 50주년을 기념해 직접 자사의 대표 브랜드인 ‘초코파이’ TV광고에 등장한 모습. |경향신문 자료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이 지난 2006년 2월 창사 50주년을 기념해 직접 자사의 대표 브랜드인 ‘초코파이’ TV광고에 등장한 모습. |경향신문 자료

지난 2002년 동양그룹에서 분가한 오리온그룹은 ‘초코파이’로 유명한 동양제과(현 오리온)를 발판으로 케이블방송, 엔터테인먼트, 외식사업으로 발을 뻗으며 승승장구하는 듯했다. 몇년 전 담 회장과 부인 이화경 오리온 사장 부부는 함께 TV광고에도 출연하면서 보란 듯 부부애를 과시하기도 했다.

국내 제과업계의 3대 브랜드 중 하나인 ‘오리온’의 아성을 지나치게 믿은 것일까.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중심이던 온미디어가 내리막길을 걸은 끝에 CJ그룹에 넘어가는 등 사업동력이 떨어진 느낌이다.

사실 오리온뿐만 아니다. 동양가의 본가(本家)격인 동양그룹의 상황도 좋지 않아 보인다. 주력사업인 동양시멘트의 계속되는 적자행진으로 동양그룹의 부채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현 회장의 테크니컬한 금융기법으로 간신히 그룹을 지탱하고는 있지만, 마땅한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 재계 사상 첫 사위 총수 시대를 연 동양가. 지난 1989년 창업주인 이양구 회장이 타계한 후 막이 오른 동양가의 사위 총수 시대는 20년 만에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동양그룹의 역사를 보면 말 그대로 파란만장했다. 창업주인 서남(瑞南) 이양구 회장은 일제시대인 1916년 함경남도 함주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부친을 여읜 그는 적수공권으로 과자도매상까지 차린 억척같은 사내였다. 하지만 그는 6·25전쟁으로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고 월남한 뒤 서울에서 자전거 한 대로 과자행상을 해 억대 갑부로 재기했다.

이후 손을 댄 설탕도매업으로 일약 재벌이 된 그는 1956년 풍국제과(동양제과의 전신)를 인수했고, 이듬해에는 이병철 삼성 회장과 함께 삼척시멘트(현 동양메이저)를 사들이면서 당시 재계에서 5대 재벌로 꼽혔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이 회장은 지나친 사업 확장으로 사채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1971년 동양시멘트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고비를 맞았다. 위기에 처했던 그는 1년 만에 다시 재기에 성공하며 화려하게 경영 일선에 복귀한 뒤 국일증권(현 동양증권) 등 회사를 인수하거나 설립해 계속 사업을 확장했다.

이 회장은 교사였던 부인 이관희씨와 결혼해 슬하에 장녀 혜경씨와 차녀 화경씨 두 딸을 두었다. 혜경씨는 검사 출신인 현재현 회장과 중매로 결혼했고, 화경씨는 담철곤 회장과 연애결혼했다. 현상윤 전 고려대 총장의 손자인 현재현 회장과 혜경씨의 중매는 김옥길 전 문교부 장관이 섰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교 출신인 담 회장과 화경씨는 외국인학교에 함께 다니면서 사귀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양구 회장이 타계한 뒤 현재현 회장이 그룹 경영을 이끌다가 2002년 담철곤 회장에게 동양제과를 넘기면서 분가했다.

분가 이후 동양그룹과 오리온그룹은 나름대로 신사업을 추진하면서 독자행보를 걸었지만, 예전의 화려했던 영광을 되찾지는 못하고 있다. 난국을 맞이하고 있는 동양가의 위기탈출 해법이 주목된다.

정선섭<재벌닷컴 대표> chaebul@chae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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