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의 기준에도 ‘심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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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시스터즈는 그룹 장기하와 얼굴들의 코러스를 담당하며 독특한 퍼포먼스로 인기를 끌었다. 미미시스터즈의 데뷔 앨범에 실린 <미미>가 지난 4월 6일 KBS로부터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이유는 ‘당신을 만난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네’라는 노랫말 중 ‘벙어리’라는 단어가 장애인을 비하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라고 한다. 소속사는 이번 제재에 대해 “다른 방송사에서는 별 문제가 없었던 것이 KBS에서만 문제가 되었다”며 의아해 하는 입장이다.

[문화내시경]심의 기준에도 ‘심의’가 필요하다

이는 심의에 대한 통합된 가이드라인이 없고 방송사마다 심의 기준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니 그때그때 심의하는 담당자의 해석과 가치관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는 셈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이 2009년에 발표한 <달이 차오른다, 가자>는 가사 중 ‘지레 겁먹고 벙어리가 된 소년은’과 같이 문제가 된 미미시스터즈의 노래와 동일한 단어가 들어가 있지만 아무런 통제 없이 KBS 전파를 타고 있다. 단 2년 안에 상반되는 사례가 발생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더욱이 올해 초에 출시된 엠블랙의 「Stay」에는 ‘장님’이라는 단어가 쓰였음에도 방송에 잘만 나오니 KBS는 비하의 대상이 되는 장애인을 선별하는 기준마저도 다른 모양이다.

어처구니없는 조치는 심의를 맡은 이의 지나친 확대 해석에 기인한다. 미미시스터즈의 노래는 멋진 남성과 마주친 후 화자의 심경을 속담에 비유한 것인데 이를 장애인 비하로 여겨질 수 있다며 금하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그와 같은 기준이라면 막말로 가사에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속담이 나오면 허위 사실 유포로 제지를 가할 수 있을 테고, ‘작은 고추가 더 맵다’에 대해서는 남성의 성기를 연상시키는 선정적인 표현이라며 방송 부적격 처분을 내릴 수 있고,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가서 눈 흘긴다’고 하면 특정 지역을 좋지 않게 묘사한다고 해서 금지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지극히 개인적이며 모호한 판정이 또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에 답답함은 가중된다.

노라조의 <카레> 중 ‘완전 좋아 아 레알 좋아’의 ‘레알’이라든가 제국의 아이들 <이별드립>, 블랙 펄의 <고고씽>처럼 인터넷 은어를 사용한 노래도 제약을 받지 않고 방송에 나가는 것을 확인하면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다. 속담보다 비속어나 인터넷 은어가 들어간 가사가 차라리 방송에 적합하다는 뜻에서인지, 장애인들의 오해를 살 요소를 미리 차단하려는 꼼꼼함에 의거한 것인지 저의가 궁금하기만 하다. 이쯤 되니 심의 기준에 심의가 필요한 상황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문화내시경]심의 기준에도 ‘심의’가 필요하다

모든 방송을 포괄하는 통일되고 명확한 심의 기준이 없다는 허술한 체제도 되돌아봐야 하겠지만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제재를 가하는 과도한 분별과 심의의 편협성도 문제다. 대중음악의 노랫말은 직선적, 사실적, 서사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은유, 비유가 수도 없이 쓰인다. 이를 편향된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매번 좋지않은 의미로 곡해될 수밖에 없다. 대놓고 욕설을 하거나 비속어를 쓰지 않는 이상 지레 차단하려 하지 말고 청취자들이 접하고 해석할 수 있도록 전파의 기회는 열어 줘야 하지 않을까 한다. 심의하는 사람도 자신의 잣대만 들이미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정황을 헤아리고 판단의 여지를 남겨 두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한동윤 <대중음악 평론가> bionicsou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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