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속정취 짙은 한국적 추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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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심플하다.” 심플한 사람 장욱진(1918~1990). 그는 그림만 그렸다. 그림을 그리지 않을 때는 술을 마셨다.

1983년 사진작가 강운구가 촬영한 수안보 시절의 장욱진.

1983년 사진작가 강운구가 촬영한 수안보 시절의 장욱진.

장욱진은 한국적 추상화를 정립한 거장이다. 개인적으로 역사학자 이병도(1896~1989)의 사위이기도 하다. 그의 20주기 전시가 2월 27일까지 서울 갤러리 현대 신관에서 열리고 있다. ‘가족도’ ‘보리밭’ ‘가로수’ ‘모기장’ 등 유화 60여점과 먹그림 20여점 등 80여점이 나왔다. 장욱진 미술문화재단(이사장 이순경) 소장품과 기관 및 개인 소장자들의 작품이다. 해와 달, 가족과 집, 새와 나무 등을 심플하고 토속적인 감성으로 추상화했다.

갤러리 현대에 들어서면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자그마한 그림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장욱진은 주로 엽서나 A4~A3용지 크기의 작은 화폭에 그렸기 때문에 큰 작품이 없다. 그런데도 그림들은 현재 점당 억대를 호가하는데 당시엔 마음맞는 이들에게 그림을 선물하곤 했다고 한다. 전시장에는 작품 외에 작가의 일상이 담긴 사진들이 추억으로 다가온다. 전시장 지하 1층 한편에는 장욱진이 죽기 전까지 작업했던 경기 용인 소재 장욱진 고택(등록문화재 제 404호)의 작업실을 재현해 관람의 재미를 더한다.

장욱진의 ‘가족도’(1972·7.5X14㎝)

장욱진의 ‘가족도’(1972·7.5X14㎝)

충남 연기군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일곱살에 부친이 사망하자 까치를 그리며 그림을 시작했다. 집 마당 나뭇가지에 앉은 까치를 하늘로 떠난 아버지로 생각했거나, 자유롭게 날아 다니는 새의 비상을 그리워했을 터이다. 지난 12월 27일 부친의 20주기를 지낸 장녀 장경수씨(66·장욱진 미술문화재단 이사))는 어릴 적 추억을 소상히 전한다. “아버지는 우리들을 너무 사랑하셨습니다. 야단치신 적이 없어요. 형제들은 서로 ‘아버지가 나를 제일 사랑하신다’고 생각했지요. 항상 그림을 그리거나 술 마시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천식을 앓으셨는데, 돌아가시던 날도 점심식사 약속을 마친 후 ‘숨차다’고 병원으로 가셨어요. 어머니가 전화를 받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돌아가신 후였습니다. 홀연히, 너무 허무하게 가셨어요, 앓다 떠나시면 이별 준비를 했겠지만….” 술에 대한 기억이 이어진다. “아버지께선 무척 가정적이셨습니다. 그런데 술이 금메달감이셨죠. 안주없이 깡술을 하루이틀이 아니라 한달 내내 잡수셨어요. 식사도 거른 채 마셨답니다. 그림과 술이 아버지의 인생 그 자체였죠.” 경성사범부속 초등학교,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지금의 경복고)를 졸업한 장욱진은 일본 도쿄 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이번에 처음 공개된 장욱진의 미공개작 ‘반월’(1988·45.7X35㎝)

이번에 처음 공개된 장욱진의 미공개작 ‘반월’(1988·45.7X35㎝)

유학중 이병도의 맏딸 이순경(91)과 결혼했고 귀국 후 징용에 끌려갔지만 해방되면서 가족의 품에 안긴다. 1945~47년 국립박물관에 재직했고, 6·25전쟁 후 종군화가로 활동하던 그는 전쟁의 아픔을 술로 달래기 시작했다. 

1954~60년에는 서울대 미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장욱진은 귄위와 형식을 지독히 싫어해 넥타이를 매지 않은 헐렁하고 낡은 양복 차림에 고무신을 신고 까치집머리로 다녔는데, 새로 들어온 수위들은 그를 문앞에서 쫓아내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2남4녀의 아이들을 그리며 단순하고 포근한 자신만의 세계를 이뤘다. 특히 노산이었던 막내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뜨자 그는 저승과 이승의 연결책으로 삼은 새를 자주 그렸다. 가정 경제는 책방을 경영한 아내가 책임졌고 그는 그림과 술만 고집했다. 하지만 붓을 들고 그림에 몰입하면 몇 달이고 술 한방울 입에 대지 않았다. 입장료 성인 3000원, 학생 2000원. (02)2287-3500.

<유인화 경향신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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