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내면의 진솔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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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솔함만큼 훌륭한 소통의 도구가 있을까. 회화 장르 가운데 유화가 화려한 만찬을 위해 정성스레 가꾼 풀 메이크업이라면, 드로잉은 막 세수를 끝내고 간단히 스킨과 로션만 바른 맨얼굴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드로잉을 보는 재미는 애써 관객을 의식하지 않은 작가의 맨얼굴, 나아가 그들의 순수한 아이디어와 연상을 접하는 데 있다.

위부터 시계방향_ 김영미 ‘군중 속의 고독’, 나탈리 타초 ‘The Pink Dog’ , 박재용의 작품 ‘Tree Innocent’.

위부터 시계방향_ 김영미 ‘군중 속의 고독’, 나탈리 타초 ‘The Pink Dog’ , 박재용의 작품 ‘Tree Innocent’.

지난 8월 11일부터 24일까지 서울 관훈동 토포하우스에서 열리는 <작가들의 방>전은 김영미, 변웅필, 박재용, 알랭 카르데나스-카스트로(프랑스), 나탈리 타초(프랑스), 리차드 휠런드(미국) 등 6명의 작가가 내면에 숨겨진 진솔한 이야기를 털어놓은 자리다. 프랑스 유학 중인 독립 큐레이터 강효연씨가 구성한 이 전시는 드로잉이라는 장르의 매력을 발산하는 동시에 작가들의 독특한 발상에 주목한다. 나아가 작은 규모임에도 한국, 미국, 프랑스의 작가가 뒤섞임으로써 세계 문화의 이질성과 동질성을 느낄 수 있다.

김영미씨는 수묵화에서 유화로 장르를 바꾼 작가다. 오랜 수묵화 창작은 그의 드로잉에 그만큼 노련미를 더한다. 그의 중심 소재는 인물과 동물인데 무심한듯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인간의 무표정은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잃어버린 인간성의 상실을 가리키는 반면, 점차 지혜를 얻어 의인화한 동물은 인간사회의 약점을 조롱하고 풍자한다. 연필·콘테·수묵·수채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다채로운 선을 보여준다.

변웅필 ‘무게’, 알랭카스데나스-카스트로 ‘도피’.

변웅필 ‘무게’, 알랭카스데나스-카스트로 ‘도피’.

변웅필은 자신의 얼굴을 여러 배율로 확대, 축소한 ‘자화상’ 시리즈로 눈길을 끌고 있는 젊은 작가다. 그의 드로잉은 민머리의 남자가 보여주는 여러가지 포즈를 86컷에 펼쳐 놓았다. 인체의 비례와 동작이 자연스러워 편안하면서 사랑스러운 느낌을 준다. 박재용은 아이의 상상력으로 나무와 사물을 결합시켰다. 싱싱한 나무 줄기와 가지, 나뭇잎들이 목마로, 그네로, 자전거로, 회전의자로 자유롭게 변신한다.

알랭 카르데나스-카스트로는 어렸을 때 어린이집 교사에게 체벌을 당했던 트라우마를 드로잉의 소재로 택했다. 발가벗고 얼굴이 빨간 아이의 형상이 다양한 배경 속에 등장하며 그 때의 느낌을 선과 원, 면을 이용해 환상적으로 표현했다. 여성작가인 나탈리 타초는 여자아이들이 인형을 그리거나 베껴서 오려 붙이는 것 같은 기법으로 프랑스 여성의 심리를 표현했다. 또 리차드 휠런드는 순전히 자신의 영감과 상상에 기대어 기하학적 패턴들을 커다란 종이에 잇대어 그림으로써 작가 스스로 창조한 우주의 느낌을 준다. 


<한윤정 기자 yjh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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