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협약에 관한 한 한국은 개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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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CC 5차 평가보고서 준비하는 이회성 IPCC 부의장

[신동호가 만난 사람] “기후변화협약에 관한 한 한국은 개도국”

“한국 경제에 큰 축복이 내린 겁니다.”
기후변화나 녹색성장을 얘기할 때 교과서처럼 인용되는 것이 IPCC 보고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정부간 기후변화위원회 등으로 번역·소개되고 있는 IPCC는 매우 특이한 국제기구다. 과학자와 경제학자 등 민간 전문가가 만든 보고서를 총회에서 각국 정부 대표가 승인하고 정부간 협상자료로 활용한다. 다시 말하면 과학을 정책으로 채택하는 구조다.

이 기구는 그동안 네 차례의 평가보고서와 10여 차례의 특별보고서 및 기술보고서를 통해 21세기의 가장 뜨거운 이슈 가운데 하나인 기후변화 논의를 주도해 왔다. 지구온난화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해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을 이끌어 냈으며, 선진국에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여한 교토의정서를 채택토록 했다. 지금도 국제사회가 더욱 광범위하고 강력한 기후변화 대응체제 구축에 즉각적으로 나서야 할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는 IPCC가 이런 활동 덕분에 2007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은 알지만 이 기구를 이끄는 지도부에 한국인이 포함된 배경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이회성 IPCC 부의장은 세계에너지경제학회(IAEE) 회장을 지낸 국제 에너지경제학 분야의 실력자다. IPCC 2차 평가보고서의 제3실무그룹 공동의장이었고, 3차 평가보고서의 주저자이며, 4차 평가보고서에서는 검증편집자로 활동했다. 이 부의장은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의 동생이다.

이 부의장에게 들어야 할 얘기는 여러 가지다. 세계는 오는 12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제15차 당사국총회(COP15)를 주목하고 있다. 이에 앞서 우리 정부는 국가 온실가스 중기 감축 목표를 확정·발표할 예정이다. 최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IPCC 제31차 총회 결과와 내년 부산에서 열릴 제32차 총회 전망, 2014년 발표 예정인 제5차 평가보고서 내용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11월6일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기상청 안에 있는 IPCC 부의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IPCC에는 발족할 때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하셨죠.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전공이 에너지경제학이기 때문이죠. 기후변화 문제는 85%가 에너지 문제니까요. 1980년대 중반에 처음으로 기후학자와 경제학자가 만나 이탈리아에서 회의한 적 있습니다.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고 있는데 좀 더 연구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죠. 이게 시발이 되어 1988년 IPCC가 만들어졌고, 저는 2차 평가보고서 제3실무그룹 공동의장을 하면서 기후변화의 사회경제적 측면을 집중적으로 다뤘던 거죠.”

부의장은 어떻게 해서 맡게 됐습니까. 지난해 9월 선거가 치열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치열한 줄 알았으면 나가지 않았죠.(웃음) IPCC에 관련하는 학자들이 저더러 부의장으로 나와 달라고 권유했어요. 의장단에 경제학자가 필요하다는 거였죠. 학자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한 번 나와 달라고 하면 대개 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가서 봤더니 현직에 있던 부의장이 자기가 더 하는 걸로 알고 있더라고요. 결국 둘이서 투표장까지 가게 됐는데, 간신히 이겼습니다, 허허.”

IPCC 의장단은 의장 1명, 부의장 3명으로 이뤄져 있다. 겉으로는 인종별, 대륙별로 안배돼 있지만 그런 원칙은 없다. 따라서 이 부의장을 ‘아시아지역 부의장’이라고 한 것은 틀린 표현이다. 의장은 부의장 중에서 선출하는 것이 관례인데 ‘기후변화학’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경제학자는 현 의장단 중에서 이 부의장이 유일하다.

IPCC가 지난 20년 동안 ‘지구가 온난화되고 있다’ ‘인간의 책임이다’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는 보고서를 지속적으로 내면서 기후 위기 극복을 금세기 인류의 최대 과제로 부각시키지 않았습니까. 초기에는 회의론자도 굉장히 많았죠.
“지금은 잠잠해졌지만 아직도 회의론자들이 있어요. 회의론자들이 주로 주장하는 게 구름이에요. 구름이 이중적 기능을 하거든요. 위치나 크기 등에 따라 온난화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냉각 현상을 일으키기도 하지요. 구름과 관련해서는 이번 5차보고서에서 별도의 장을 두고 심층적으로 다시 한 번 점검할 예정입니다.”
IPCC는 지난 10월 26~29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제31차 총회에서 5차 평가보고서의 개요와 목차를 정했다. IPCC가 5, 6년 간격으로 내는 평가보고서는 전 세계 130여 개국 과학자 2500여 명의 참여로 이뤄지는 대작업이다. 5차 보고서는 2014년 총회의 승인을 얻어 발간할 예정이다.

4차 보고서가 나왔을 때 너무 과장했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요즘 들어서는 너무 낙관적으로 본 게 아니냐는 시각도 많습니다. 5차보고서에 그런 시각이 반영됩니까.
“중요한 포인트를 말씀하셨어요. 북극의 얼음이 녹는 속도 등을 보면 지구온난화의 영향이 4차 보고서에서 지적한 것보다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는 거죠. 최적추정치를 중심으로 최고값과 최저값을 제시하고 있는데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던 학자들은 모두 이 범위 안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최적추정치를 조금 넘어선 것은 사실이고요. 그래서 5차 보고서에도 현재 진행 중인 기후변화 현상에 대해 더욱더 엄밀하게 검증할 계획입니다.”

5차 보고서에서 일반인도 관심을 가질 만한 중요한 내용은 무엇인가요.
“제1실무그룹에서 골칫거리는 피드백 효과입니다. 사람들 때문에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지 않습니까. 그러면 극지방이나 높은 산의 눈이 녹고, 눈이 없어지면 햇빛이 흡수돼 온도가 더 올라가죠. 마찬가지로 동토층이 녹으면 거기에 있던 메탄가스가 뿜어져 나와 더 더워지잖아요. 피드백이 분명히 있는 거죠. 그런 피드백의 메커니즘은 알지만 이게 어떤 속도로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아직 돼 있지 않아요.”

돌이킬 수 없는 시점을 말하는 티핑포인트 얘기도 구체적으로 다뤄지겠네요.
“그렇죠. 티핑포인트가 제2실무그룹의 중요한 과제가 되는 거죠. 식량, 물, 건강, 생태 등과 같이 분야별로도 다루지만 지역별로도 나눕니다. 기후변화 영향은 지역에서 벌어지고 지역에 따라 영향이 다르기 때문에 대응책도 다르게 얘기할 수밖에 없지요. 저마다 생태계가 살아갈 수 있는 기후, 온도의 범위가 있는데 더워지는 쪽으로 가까워질수록 거기에 취약한 종은 숫자가 줄어들겠죠. 그러면 그 종 때문에 살아가는 주변의 다른 종들도 함께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전 생태계가 주저앉는 상황이 오겠지요. 그게 티핑포인트입니다. 상당히 심층적으로 연구해야 되는 과제입니다.”

우리나라로 국한시키면 어떻습니까. 피해가 크다든가, 적다든가….
“그걸 연구해야 합니다. 정부 당국자가 기후변화 대책을 얘기할 때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국내총생산(GDP)의 1% 또는 2%를 잠식한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지금은 그렇게 말할 수 없죠. 근거가 없으니까요. ‘글로벌’하게는 다 알고 있습니다. 제2실무그룹 보고서에서 여러 가지 숫자가 나오는데 그 숫자에 해당하는 한국의 숫자를 우리가 알아야 해요.”

가장 관심이 많은 분야는 경제 문제일 텐데요. 온실가스 감축 비용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란이 많지 않습니까.
“사실 4차 보고서에서는 감축 비용이 그리 많지 않다, 조금만 신경 쓰면 된다는 식의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기존 모델을 계산해 나온 결론이지만 모델이라는 건 많은 한계점을 안고 있습니다. 가정을 세워 만든 숫자이니까요. 예를 들어 전 세계 192개국이 다 감축을 한다거나 시장이 상당히 경쟁적으로 움직인다는 가정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죠. 또 (수수료나 법률·회계 비용 등과 같이) 경제 운용에 따른 거래비용도 포함돼 있지 않고요.”

5차 보고서에서는 감축 비용이 상당히 올라가겠네요.
“꼭 그런 건 아닙니다. 더 감소할 수도 있다는 연구도 많이 나오고 있잖아요. 지금은 신재생에너지 비용이 높지만 기술이 많이 보급되면 더 낮아지겠죠. 이런 부분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해서 어느 정도 비용이 발생하는지를 알아야 하지요. 이게 감축 부분에서는 최대 관심사입니다.”
비용 문제와 관련해 이 부의장은 평소 ‘석기시대 비유’를 즐겨 든다. 석기시대의 기술로 철기시대를 맞으면 비용이 많이 들지만 철기시대 기술을 적용하면 오히려 줄어든다는 것이다. 화석에너지 시대의 기술로는 BAU(Business As Usual, 별도의 감축 노력이 없을 때의 온실가스 배출량)가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말이다. 새로운 기술 등장으로 비용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고려가 논의의 핵심에서 빠져 있다는 얘기다.


“정부 당국자가 기후변화 대책을 얘기할 때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GDP의 1% 또는 2%를 잠식한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지금은 그렇게 말할 수 없죠. 근거가 없으니까요.”

“정부 당국자가 기후변화 대책을 얘기할 때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GDP의 1% 또는 2%를 잠식한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지금은 그렇게 말할 수 없죠. 근거가 없으니까요.”

국내로 눈을 돌리면 우리 정부는 2020년까지 BAU 대비 21%, 27%, 30% 감축안을 내놓지 않았습니까. 이 부의장께서 ‘획기적’이라고 좋게 평가를 하셨는데요.
“BAU 대비 숫자가 많아서 획기적이란 뜻은 아닙니다. IPCC가 제시한 숫자가 있어요. 선진국은 앞으로 5년, 길어봐야 10년 안에 절대량을 줄이라고 했어요. 개발도상국은 2020년 또는 2030년부터 추세선, 즉 BAU로부터 이별하라는 겁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 가지 안으로 역계산 해 보면 BAU로부터 이별하는 시점이 바로 지금부터예요. IPCC가 제시한 것보다도 무려 15년 또는 25년을 앞선 조치죠. 게다가 BAU와 작별하되 선진국의 기술적·재정적 지원을 받도록 돼 있는데 우리는 그런 조건을 달지 않았어요. 두 가지 다 획기적인 겁니다.”

일부에서는 기후 문제에서 국제적인 리더십을 갖기 위해 우리가 개도국 지위를 벗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까.
“국가적으로 손해를 보려면 그렇게 하는 거죠. 개도국 지위를 벗는다는 것은 우리가 탄소 배출권을 밖에서 사와야 한다는 얘깁니다. 그런 결정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기후변화협약에 관한 한 한국은 개도국입니다. 다른 데 가서 개도국·선진국을 구분하는 작업을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정부가 내놓은 온실가스 감축 수단에 탄소 포집 및 저장(CCS) 기술도 포함돼 있습니다. CCS는 우리나라에서는 현실성이 없는 기술이 아닙니까. 이 부의장께서 당시 검토위원장으로서 그런 점을 지적하지 않았습니까.
“검토위원회에서 어떤 말을 했는지는 밖에서 말할 수 없게 되어 있어요. 그렇게 하기로 사인했기 때문에 그 질문에는 답을 할 수 없고요. CCS 자체를 본다면 그건 잡아가둬서 어디 묻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묻을 데가 없어요. 폐유전, 폐가스전에 묻어야 하는데 우린 유전도 없고 가스전도 없잖아요. 묻을 데가 없는 기술로 2020년에 실용화한다는 것이죠. 그건 재고해야죠.”
이 부의장은 2003년부터 계명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계명대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학부에 환경대학이 개설돼 있다. 이 부의장은 현재 환경대학장직을 맡고 있다. 대구가 2013년 세계에너지경제학회 국제학술대회를 유치한 데는 이 부의장의 공이 크다. 국제에너지경제학술대회는 전 세계 에너지학자, 산업계 인사, 정부 관계자 1000여 명이 참석하는 큰 행사다. 이 부의장은 내년 10월 부산에서 열리는 제32차 IPCC 총회 유치에도 기여했다.

국제에너지학술대회와 IPCC 총회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에너지학술대회는 한국자원경제학회에 준비위원회가 만들어졌어요. 학회에서 저더러 대회장을 맡아 달라서 해서 영광으로 받아들였고요, 준비위원회가 대구시와 공동보조를 맞춰서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내년에 하는 IPCC 총회는 기상청이 주관이 되어 부산시와 정부의 모든 부처가 협력하는 준비기획단을 발족시켰더군요. 관련 부처가 잘 알아서 하고 있습니다.”

12월 열리는 COP15에 대해서는 전망이 어둡던데요.
“틀만 합의하겠죠. 구체적인 숫자나 수단 같은 것은 다음에 하자는 쪽으로 갈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은 포스트 코펜하겐에 더 관심이 있다고 해요. 논의가 그때부터 활발하게 진척되지 않겠느냐고 보는 거죠.”

끝내 합의가 안 되면 어떻게 됩니까.
“우선 저개발 국가들이 막대한 피해를 보죠. 몰디브 같은 나라는 완전히 물에 잠기고, 방글라데시는 태풍을 더 많이 만나고, 중국은 농부들이 물 부족에 빠지게 되고요. 중국도 사실은 내부적으로 고민이 많더라고요. 석탄이 엄청나게 있는데 석탄을 버릴 수 없으니 말입니다. 반면에 한국은 석탄이 없잖아요. 신났죠.”
‘화석연료가 없는 게 오히려 축복이다’라는 말은 이 부의장의 ‘어록’에 한자리를 차지할 만하다. 에너지경제학자로서 그동안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아온 것은 에너지의 95%를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라고 보기 때문이다. 세계 13위 안에 드는 경제대국 가운데 그렇게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한국뿐이다. 192개 기후변화협약국 가운데 최빈국에서 지금의 경제적 인프라를 갖춘 나라 역시 한국 말고는 없다. 이처럼 분명한 모델을 갖고 있는데 스스로 이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화석연료가 없는 게 왜 축복이 됩니까.
“전 세계가 이제 화석연료를 쓰지 말자는 거잖아요. 이것처럼 땡잡은 게 어딨어요. 그동안 그 때문에 온 나라가 기진맥진해온 건데 말이죠. 이제 똑같이 출발하자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자원과 화석 에너지의 제약이 없는 시대가 열렸으니 그야말로 한국 경제에 큰 축복이 내린 겁니다.”

우리가 다른 에너지 분야에서 앞서 가야 한다는 말씀이네요.
“21세기를 주도할 에너지의 주역이 네 가지예요. 신재생에너지, 원자력, CCS, 에너지 효율 개선입니다. 이 가운데 CCS를 제외한 나머지 세 가지는 우리가 결코 뒤지지 않는 분야예요. 에너지 효율 면에서는 이미 우수합니다. 이런 점에서 이걸 조금 더 개선하는 데는 비용이 많이 들지요. 일리 있는 얘기예요. 하기만 이건 기존의 기술 갖고 그렇다는 얘기고 앞으로 새 기술이 개발되면 효율 개선에 의한 효과도 커집니다. 지금 에너지 혁명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글·신동호 기획위원>
<사진·김석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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