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길-탁발순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김택근 지음·들녘·1만3000원

김택근 지음·들녘·1만3000원

2004년 3월, 실상사 주지 도법 스님은 불쑥 길을 떠난다. 지리산 실상사는 우리나라 대표 사찰 중 하나다. 도법 스님은 그곳의 주지 자리를 10년 동안 맡아왔다. 그 자리를 박차고 탁발순례를 하겠다고 나서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을 터. ‘탁발’이란 본래 승려들이 걸식으로 의식을 해결하는 것으로 불교에서 출가 수행자들이 지켜야 할 규율인 12두타행 중 하나인 ‘걸식’과 같은 의미다.

그러나 도법 스님이 탁발순례에 나선 것은 자신의 수행이나 구도를 위해서가 아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생명을 존중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고 기도하기 위해서다. 이름하여 ‘생명평화 탁발순례’다. 스님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4년 동안 2만8000여 리를 걸었다. 홀로 떠난 스님의 곁에는 이제 7만2000여 명이 함께 하고 있다. 사람뿐 아니다. 도법 스님은 들짐승, 날짐승, 물고기, 식물 등과도 같이 한다. 이들을 살리는 햇빛, 물, 공기, 흙, 바위 등이 이에 동참한다. ‘사람의 길’은 도법 스님의 지난 4년간의 행적을 선명한 사진과 함께 담은 책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다큐멘터리 같은 냄새를 전혀 풍기지 않는다. 시인이자 경향신문 논설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저자 김택근의 유려한 문장과 따뜻한 감성이 돋보인다. ‘순례기’가 아니라 장편 서사시, 혹은 장편 이야기시를 감상하는 듯하다.

도법 스님은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는 자세로 우리나라 전국 방방곡곡을 순례한다. 스님은 ‘경쟁과 다툼’에서 비롯한, 상처투성이의 역사 현장을 돌아보며 ‘생명과 평화’를 기원한다. 금수강산이 파괴될 위기에 처해 있는 곳을 찾아가 무릎이 깨질 만큼 삼보일배를 마다하지 않으며 위기를 막아낸다.

생명과 평화를 바라는 스님의 몸과 마음은 언제나 산속 깊은, 조용한 절집에 있지 않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이 땅의 현장에 있다. 스님은 늘 “불교의 기본정신은 속세의 치열한 역사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기에 스님은 현실을 외면한 채 신비주의로 치장하고, 권력을 탐하는 오늘날 이 땅의 불교가 매우 못마땅하다. 불교의 권력 다툼이 정점에 이르렀던 1998년, 조계종 분규 사태가 일어났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덩치가 우람하고 몸에 칼자국이 있는 스님들의 사진이 전 세계에 퍼지며 국제적인 망신을 초래했다. 불교의 권력화를 비판하던 스님은 그때 총무원장 대행을 맡아 포용력을 발휘하며 사태를 원만히 해결했다. 사태가 마무리된 뒤 한 젊은 스님이 찾아와 ‘조계종 접수’를 권유했을 때 도법 스님은 젊은 스님의 제안을 웃음으로 넘기고 홀연히 산사로 돌아갔다. 젊은 스님의 제안을 또 다른 권력화로 여겼기 때문이다.

도법 스님은 문제가 발생하거나 문제가 발생할 조짐이 보이는 곳에 항상 빠지지 않는다. 불교개혁은 물론, 인권·환경·전쟁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생명과 평화를 빌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스님은 ‘행동하는 지식인, 참 지성인’의 표본으로 통한다.

한국 불교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도법 스님은 경쟁이 아닌 공존을 원한다. 마음을 열고 손바닥을 펴서 세상 사람들이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길을 가기를 염원한다. 모두 함께 가기 위해서는 이 땅에 생명평화의 마음을 심어야 한다. 아무리 사소한 생명이라도 소중히 여겨야 하고 그 가치를 알아야 한다. 요즘 흔히 쓰는 표현인 ‘지속가능한 삶’은 바로 생명평화 속에 있다는 것이 스님의 주장이다.

도법 스님의 탁발순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스님의 몸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임형도 기자 lhd@kyunghyang.com>

BOOK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