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조선인들이 본 바다 밖 세상
‘18세기 조선’은 무자년 새해에도 인문서 시장의 온기를 유지해줄 땔감 구실을 할까. 또 다시 18세기다. 지은 사람은 정운경. 1699년에 태어나 1753년에 죽었다. ‘탐라문견록’은 정운경이 제주에 부임한 아버지 정필녕을 따라 제주도에 건너가서 보고 들은 것을 적은 책이다.
책에는 ‘영해기문’ ‘탐라기’ ‘순해록’ ‘해산잡지’ ‘탐라문견록’ ‘귤보’ 등 여섯 편의 글이 실려 있다. ‘영해기문’은 정운경이 기존의 제주 관련 기록을 추린 것이고, ‘탐라기’와 ‘순해록’은 각기 1732년 2월과 4월에 제주와 제주 인근 바다를 돌아보고 쓴 것이다. ‘해산잡지’는 제주의 풍물과 풍광을 기록한 것이고, ‘귤보’는 제주 감귤 열다섯 종에 대한 소략한 설명이다.
그렇다면 지은이가 책의 제목으로 삼은 ‘탐라문견록’은 무엇인가. ‘탐라문견록’은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 생환한 제주 사람 14명의 체험담을 정운경이 글로 옮긴 것으로, 전편을 통틀어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당시에는 뱃길을 떠났다가 표류하는 일이 빈번했는데, 이들이 표착한 곳은 오늘날의 대만, 대마도, 오키나와, 베트남 등지였다. 당연히 책에는 당시 조선 사람들의 눈에 비친 외국의 풍물과 외국인들의 생활상이 책 구석구석에 사금파리처럼 박혀 있다. 이들은 코끼리, 공작, 물소처럼 낯선 동물들을 보기도 하고, 나가사키에서는 당시 일본과 교류하던 네덜란드인들을 보고 “손가락이 정강이만 하다”며 놀라워하기도 한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이들이 표착한 곳에서 자신들을 제주도 사람이 아니라 다른 지역 사람이라고 속이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1687년 고상영의 표류기에서, 고상영 일행은 안남국에 표착한 뒤 “사실대로 제주에 산다고 말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걱정하며 자신들을 전라도 사람이라고 말한다. 1679년 관노 우빈의 표류기와 1723년 백성 이기득 표류기에서도 이들은 자신을 나주 사람이라고 속인다. 이는 1612년에 일어난 유구국(오키나와) 태자 살해 사건 때문이다. 당시 제주도에 표착한 유구국 태자의 배를 제주 목사 이기빈이 습격한 이후로 제주 사람들 사이에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퍼져 있었던 것이다.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이 앞 다투어 구해 읽으려 했던 책이지만 지금은 이름조차 낯선 이 책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은 한양대 정민 교수다. ‘미쳐야 미친다’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 같은 책에서 드러난 18세기 조선에 대한 그의 열정이, 먼지 쌓인 이 책의 필사본을 말끔한 한국어로 가다듬어 독자들과 만나게 했다.
|정운경 지음쪾정민 옮김쪾휴머니스트쪾1만3000원|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