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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 빈부격차 통계보다 실감지수가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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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주장 ‘7대 분실물’ 집중검증

[커버스토리]우리사회 빈부격차 통계보다 실감지수가 세다

한나라당 정책위원회(의장 이한구)는 최근 지난 10년간 ‘잃어버린 세월’에 대한 10가지 목록을 발표했다. 한나라당의 자료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실정 사례로 첫째, 양극화 확대 둘째, 부동산값 폭등 셋째, 세금 증가 넷째, 공교육 붕괴 다섯째, 비정규직 확산 여섯째, 복지정책 후퇴 일곱째, 언론탄압 여덟째, 비만 정부 아홉째, 친북정책 열째, 법치 훼손을 들었다.
이에 대해 김종민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은 “‘잃어버린 세월’ 신고목록을 보면 참 염치없고 무책임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국민들은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 뉴스메이커는 한나라당이 주장한 사례 10가지 중 7가지를 선택해 각계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편집자 주>


1 양극화 확대

참여정부를 평가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양극화’다. 소득양극화, 교육양극화, 정보양극화, 의료양극화, 소비양극화 등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양극화는 다양한 형태로 표현됐지만 실은 소득양극화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잃어버린 10년’을 제기하는 한나라당의 첫 공격도 ‘양극화’다. 한나라당은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더욱 확고해졌고, 이로 인해 서민들과 중소기업들은 더 힘든 세상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 기간에 빈부격차는 더욱 확대되어 상위 10%의 소득(월 845만 원)이 하위 10%(월 85만 원)의 무려 10배에 이르고, 이로 인해 중산층은 붕괴되고 소수의 부유층과 다수의 빈곤층으로 양극화되었다는 비판이다.

한나라당은 또 중국(9.0%), 홍콩(6.3%), 인도네시아(5.8%), 말레이시아(5.5%) 등의 2005년 경제 성장률을 제시하며 “세계 경제가 거침없이 질주할 때 우리는 제자리(한국 4.0)를 맴돌고 있다”고 주장했다. “성장이 멈추어버린 10년 동안 다수 국민은 빚으로 살아가고 있다”며 “가계대출이 1990년대 평균 대비 6배 이상 증가했고, 엄청난 빚으로 2006년에만 무려 26만 명이 파산신청을 했다”고 지난 10년간 국민경제의 실패 사례를 지적했다.

이 같은 한나라당의 주장은 최근 각종 통계가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 9월 통계청의 ‘가계수지 동향’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도시 근로자 가구 중 소득 수준 상위 20% 계층은 하위 20% 계층보다 5.04배 더 많이 번다. 이자 소득과 배당 소득 등 주로 금융자산으로 생기는 재산 소득만 따로 계산하면 그 격차는 8.12배로 벌어진다. 토지 소유 편중 현상도 두드러져 전 국토의 56%에 이르는 민간 보유 토지 가운데 57%를 상위 1%가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한국노동연구원이 기획예산처 양극화·민생대책본부에 제출한 보고서 ‘소득분배 및 공적이전·조세의 재분배’를 보면 도시가구의 시장소득 기준 상대빈곤율(중위소득의 50%가 안 되는 가구소속 인구의 비율)은 2006년에 16.42%로 2005년의 15.97%에 비해 0.45%포인트 올라갔다. 이 상대빈곤율은 관련 통계가 나온 1999년 이후 최고치다.

그러나 이 같은 통계에도 불구하고 ‘양극화’에 대한 논쟁은 뜨겁다. 양극화 현상이 ‘심각하다’는 주장과 ‘그렇지 않다’는 주장, 양극화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해 정부와 한나라당은 물론 학계에서도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정책실은 한나라당의 공격에 대해 “지난 10년간 4대 부문 구조조정과 양극화 등 외환위기의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한 동반성장 전략으로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열었다”고 반박하며 “2003∼2006년 4년간 우리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30개 OECD 회원국 중 9위 수준인 4.3%인데, 여전히 개도국들의 고도성장에 빗대 ‘저성장’이라며 국민의 눈을 가리려 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상국 경희대 산업공학과 교수도 같은 의견이다. 김 교수는 세계적인 신용평가회사 무디스의 ‘한국의 양극화는 우려할 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평가를 설명하며 “지니계수(양극화를 진단하는 계수)를 보면 경우 일본과 덴마크만 빼면 우리나라의 양극화 정도는 전 세계에서 양호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현재는 아니지만, 양극화의 속도가 빠르고 다양한 부문에서 나타나는 것이 문제로, 단일민족이라는 특수성 탓에 상대적 박탈감이 큰 것이 사실”이라며 “지니계수보다 야당의 공격, 언론의 선정성 탓에 실감지수가 높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양극화의 원인을 정부에서는 소득 분배상의 문제로, 야당에서는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로 보는 경향이 있다”며 “이보다 더 큰 요인은 우루과이라운드, 한·미 FTA 등 세계화의 진행에 따른 구조조정의 결과”라고 강조했다. 대우자동차나 기아자동차의 몰락에서 보듯 세계적인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도태된 국내 기업의 공백을 살아남은 대기업이 장악함으로써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일어났고, 이를 양극화라고 느끼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또 “한나라당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양극화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는데 그들의 전신이 바로 IMF 외환위기를 불러온 세력 아니냐”고 질타했다.

이에 반해 나성린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당초 양극화 논란은 사회복지정책을 늘리기 위해 노무현 정부와 좌파 진영이 제기한 것”이라며 “IMF 외환위기 이후 심해진 양극화는 김대중 정부 시절에 다소 나아지다가 오히려 노무현 정부 들어 다시 악화됐다”고 주장했다. 주장에 따라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는 자료를 제출하는 것에 대해 나 교수는 “OECD 전체로 볼 때 경제성장률은 좋은 편이나 문제는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 아시아의 경쟁상대국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이라며 “일부 학자들이 세계화를 원인으로 지적하지만 세계화는 수출과 IT 활황 등 오히려 국내 경제가 성장하는 데 이바지하는 바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IMF에 대한 한나라당의 책임을 묻기도 하지만 이는 외부에서 받는 충격을 이겨내지 못한 우리 경제의 취약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모든 경제 주체의 책임”이라며 “문제는 이후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가 이를 계기로 구조조정 등을 통해 성장기반을 만들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동반성장을 주장하며 분배를 따지다 발목 잡힌 꼴”이라고 비판했다.

양극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대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류정순 빈곤문제연구소장은 “빈곤과 양극화 문제는 우리 사회를 송두리째 흔드는 심각한 문제지만 현재 우리사회에는 시장만능주의를 잡아줄 브레이크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도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주장하는 것은 ‘네모난 동그라미’처럼 모순”이라고 지적했고 장상환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도 “대선주자들의 경제성장과 관련한 공약은 양극화를 심화할 수밖에 없다”며 “사회복지를 확충하는 등 분배를 통해 성장을 이끌 수 있다는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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