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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10년’ VS ‘되찾은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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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비판에 민주개혁진영 맞불… 이명박-정동영 후보간 논쟁으로 번져

지난 10년은 우리에게 ‘잃어버린 10년’일까. 아니면 ‘되찾은 10년’일까. 대선을 불과 40여 일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를 평가하는 논쟁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한나라당은 과거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규정한 반면 노무현 정부와 대통합민주신당(이하 신당)은 ‘되찾은 10년’이라고 맞불을 놓고 있다.

북한의 핵 실험 발표 후 노무현 대통령이 2006년 10월 10일 청와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영접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북한의 핵 실험 발표 후 노무현 대통령이 2006년 10월 10일 청와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영접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은 1980~90년대 일본경제의 실패를 이르는 말이다. 초호황을 누렸던 일본경제가 부동산을 중심으로 거품이 생기고 1990년 초 거품경제가 붕괴되면서 은행들의 도산과 기업과 가계의 부실이 이어졌다. 거품이 꺼진 10여 년간의 일본경제를 일컬어 ‘잃어버린 10년’으로 표현한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는 일본경제의 ‘잃어버린 10년’을 차용해 이번 대선의 선거 슬로건으로 만들었다. 한나라당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이 집권한 기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명명했다. 이렇게 규정함으로써 노무현 정권의 실정을 대선 구도에도 활용하려는 목적에서다. 특히 신당의 대통령 후보인 정동영 후보를 노무현 대통령의 아류로 규정하여 대선판도를 이명박 대 노무현의 구도로 만들겠다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신당은 지난 두 번의 집권기간을 ‘되찾은 10년’으로 규정하고 한나라당과 본격적인 가치논쟁을 벌이고 있다. 신당은 정부 수립 이래 권위주의 정부를 무너뜨리고 민주개혁 진영이 정권을 잡은 최초의 정부를 김대중 정부로 규정하고, 국민의 정부에 이어 노무현 정부가 재집권에 성공함으로써 민주개혁 진영의 2기 정권을 수립했다고 보고 있다.

DJ가 ‘되찾은 10년’ 처음으로 언급

1997년 12월 19일 새벽,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이회창 후보를 37만여 표 차이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했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그 시각 일산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집 골목에는 수백 명의 지지자가 모여 ‘김대중’과 ‘대통령’을 연호하며 계속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역사상 최초로 선거를 통해 권위주의 정부에서 민주정부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이후 우리 현대 정치사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권위주의 정권이 통치했다. 제2공화국의 장면 정권은 유혈혁명인 4·19혁명에 의해 수립됐으며,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는 3당(민정당+민주당+공화당) 합당을 통해 권위주의 세력과 연합해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민주개혁 진영의 진정한 정부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념적으로는 모두 보수이므로 진보 진영이라고 분류할 수 없다”며 “이념적 분류보다는 이들을 정통 야당을 해온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세력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견해도 있다. 김민전 경희대 정치학과 교수는 “우리 역대 정부들이 나름대로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고 본다”며 “이승만 정권은 국가건설, 박정희 정권은 산업화 등 시대적 과제를 잘 수행한 면도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개혁 진영은 집권 2기 동안 권위주의 시대의 기득권을 타파하고 정치·경제·사회 등 각 분야에서 개혁을 단행해왔다. 하지만 민주개혁 진영은 지난 10년 동안의 개혁을 ‘미완의 개혁’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그동안 진행해온 개혁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다시 집권해야 한다는 논리다.

반면 한나라당은 지난 10년간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이때를 기다렸다. 한나라당도 이번 대선에서 정권을 얻지 못하면 당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다는 위기의식이 당원 사이에 팽배하다. 한나라당이나 뉴라이트 등 보수 진영에서는 몇 년 전부터 ‘잃어버린 10년’론을 설파하면서 정권 탈환을 벼르고 있다.

하지만 민주개혁 진영에서는 한나라당의 ‘잃어버린 10년’론에 대해 ‘되찾은 10년’론으로 맞서고 있다. ‘되찾은 10년’의 저작권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6월 성공회대성당에서 열린 6·10항쟁 20주년 기념식에서 “50년에 걸친 독재에 종지부를 찍고, 세계가 공인하는 민주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 어떻게 ‘잃어버린 10년’이냐”고 반문하고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50년 동안 잃어버린 우리의 민주주의를 ‘되찾은 10년’”이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은 IMF 외환위기라는 국가부도 사태에서 투명하고 경쟁력 있는 경제로 발전시킨 것에 대한 자긍심도 함께 피력했다.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IMF 상황을 떠안은 김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에 IMF 구제금융 상황을 성공적으로 탈피했다.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가 10월 29일 대한상의 특강에 앞서 상의 회장단과 환담하고 있다. <박민규 기자>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가 10월 29일 대한상의 특강에 앞서 상의 회장단과 환담하고 있다. <박민규 기자>

한동안 잠잠했던 ‘잃어버린 10년’ 논쟁이 다시 불붙은 것은 노무현 대통령을 통해서다. 그동안 국민의 정부의 정신적 계승을 강조해온 노 대통령은 10월 18일 혁신벤처기업인 특별강연에서 “‘잃어버린 10년’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관치경제시대에 잘 주물러진 관료들, 정경유착해서 잘 나가던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잃어버린 10년’일 수 있지만, 지난 10년 동안 잃어버린 게 뭐지요? 있으면 신고하십시오. 찾아드리겠습니다”라며 한나라당을 자극했다. 며칠 후 국무회의에서 노 대통령은 ‘잃어버린 10년’ 주장에 대해 각 부처에서 조목조목 정리하고 국정홍보처에서 종합해 대처하라고 지시했다. 이와 관련해 국정홍보처 관계자는 “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각 부처에서 자료를 준비하고 있다”며 “아직 범정부 차원에서 자료집을 펴낼 계획은 없다”로 말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신고합니다. 돌려주세요’라는 보도자료를 내고 “우리 국민에게 지난 무능정권 세월은 상실의 시대였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이와 함께 ‘잃어버린 세월’과 관련한 10가지 신고목록을 제시했다. 현재 한나라당은 ‘잃어버린 세월’과 관련해 네트즌들로부터 홈페이지(www. hannara.or.kr)를 통해 제보를 받고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10년간의 세월을 ① 경제대란 ② 집값대란 ③ 실업대란 ④ 교육대란 ⑤ 안보대란 ⑥ 헌법대란 등 육란(六亂)의 시대로 규정했다. 한나라당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국정주도세력이 새로워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신당 이낙연 대변인은 “지난 10년간 우리 국민은 투명한 정치, 돈 덜 드는 선거, 서민복지 등을 얻었다”며 “한나라당은 10년 전이 그리운지 모르지만 국민은 결단코 10년 전의 악몽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논평했다. 청와대도 청와대브리핑(www.president.go.kr)에 ‘쟁점, 멀리 보면 보입니다’라는 코너에서 한나라당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잃어버린 10년’ 가치전쟁 벌여

‘잃어버린 세월’이라는 과거에 대한 논쟁이 현실에서 대선 후보들 간의 논쟁으로 정점을 이루고 있다. 특히 신당의 정동영 후보는 이 논쟁을 가치논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이와 관련해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국민이 가장 힘들었던 것은 개혁·혁신이 아니었나 생각한다”며 “경제 성장은 고사하고 부질 없는 이념 논쟁으로 10년을 다 허비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박형준 대변인도 “지난 10년 동안 정권의 반(反)시장정책으로 투자의 위기가 오고, 국정운영 실패로 양극화가 심화됐다”며 “이들의 인식은 1980년대 운동권을 벗어나지 못했고, 이것은 정동영 후보에게도 이어졌다”고 말했다.

최근 한 여론조사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지난 10년에 대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48.4%로 ‘되찾은 10년’이라고 한 38.4%보다 많았다.

신당 정동영 후보는 “지난 10년은 30년 적폐(積弊)가 무너진 것이다. 상징적으로는 삼풍백화점 붕괴로 토목경제가 무너졌고 국가 시스템이 무너진 것이 IMF다”며 “1998년 민주정부가 탄생한 이후 우리 사회에 비로소 투명성이란 명제가 던져졌고,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정치가 깨끗해졌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동영 후보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강원택 숭실대 정치학과 교수는 “지난 정권에서는 10년 동안 민주화 등 국민들에게 집권해야 하는 논리나 비전을 제시했는데, 지금은 민주화라는 도구적 유용성이 약화되면서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아젠다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후보와 정 후보는 ‘잃어버린 10년’ 논쟁에 이어 ▲ 교육문제 ▲ 금산 분리 ▲ 기업 정책 등 이념 및 정책 대결에서 각을 세우며 물러설 수 없는 ‘가치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학계에서도 지난 10년 동안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정책에 대한 공과(功過) 평가 작업이 활발하다. 최근 명지포럼은 명지대에서 ‘IMF 외환위기 이후 10년, 성찰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민이 ‘잃어버린 10년’, ‘되찾은 10년’이라는 선거 슬로건에 지나치게 휘말릴 필요는 없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정권을 획득하는 일은 특정정당의 전유물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우리나라의 민주화가 성숙된 만큼 국민들은 특정 정치세력을 떠나 국가와 국민을 올바르게 이끌 정당과 후보에 손을 들어줄 것이라는 말이다. 김민전 교수는 “현재 한나라당이 50% 이상 지지를 받고 있지만 이것이 계속된다는 법은 없다”며 “유권자들의 역량이 성숙해진 만큼 정당은 국민들의 판단에 따라 정권을 잡을 수도, 내놓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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