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공교육 붕괴
“사교육 증대와 조기유학은 국민의 정부·참여정부 시기에 시작한 문제가 아니다. 최근 10년 사이에 공교육의 부실문제는 물론 있었다. 한편으로 국민소득이 늘어남에 따라 사교육은 늘어날 수밖에 없는 면도 있다. 문제의 근본 원인은 학벌사회·완고한 대학 서열에 있다. 입시 위주의 교육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사교육비 증대를 막을 수 없다.”
윤지희 교육과시민사회 공동대표의 말이다. 그런데 정작 한나라당의 ‘잃어버린 10년’론에는 학벌주의나 입시 위주 교육문제에 대한 언급은 없다. 소위 ‘좌파정권의 교육정책’을 대표하는 것으로 거론되는 ‘3불(不)정책’도 한나라당의 ‘잃어버린 10년’ 신고목록에는 거론되고 있지 않다. 한나라당은 사교육과 조기유학이 급증하면서 “교육으로 가난을 대무림하고 있으며, ‘기러기 아빠’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교육이민으로 가정이 파탄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IMF 외환위기 직후 예외적인 숫자를 기준으로 지금과 비교해서 조기유학이 20배로 늘어났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과장이다.” 여종구 교육인적자원부 재외동포교육과 과장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1996년, 1997년 각각 3500, 3200여 명 수준이었던 조기유학생 수가, 1998년엔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는 것이다. 전체적인 흐름에서 1998년의 숫자를 떼어내 그로부터 20배 늘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통계의 왜곡이라는 주장이다.
“30조 원 규모의 사교육비”라는 한나라당의 주장도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10월 9일 발표한 교육공약에서도 한나라당 측은 같은 수치를 제시한 바 있다. 당시 참교육학부모회는 그 산출 근거가 무엇인지 공개질의했다. “아직까지 아무런 답변은 없었다.” 이희정 참교육학부모회 사무처장의 말이다.
“정부 조사와는 범주부터 차이가 있다.” 박영숙 교육부 사교육대책추진팀장의 말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뉴스메이커의 요청에 ‘사교육비 규모 추계현황’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작성해 보내왔다. 이 문건에 따르면 정부(KEDI, 한국교육개발원)가 파악한 사교육비 총액은 13조6485억 원으로, 이는 2003년 조사된 수치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이 문건에서 통계청의 의견이라며 “2006년 통계청 가계수지 동향을 바탕으로 만든 한나라당 자료는 ▲ 농·어가를 제외하고 ▲ 가구를 대상으로 해 취학 전 자녀와 대학 이상 자녀 등을 모두 포함하여 일반적 의미의 사교육비보다 광범위하게 잡는 등의 문제가 있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교육부는 수치를 제외한 한나라당의 정부교육정책 평가에 대해선 “답할 입장이 아니다”고 밝혔다. 교육 전문가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모두 평준화 정책을 강조하고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중·고등교육에서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강제로 평준화 정책을 유지하려 했기 때문에 부작용이 나타났다.” 강소연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회장(연세대·교육심리학 박사)의 말이다. 지난 10년간 평준화가 하나의 ‘교육이데올로기’처럼 작용하면서 역효과가 심화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는 단체 내에 입장 차이는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교육문제 인식과 정책에 찬성하는 편이라고 밝혔다. 강 회장은 “지난 10년, 특히 참여정부가 교육개혁을 위해 노력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다른 어떤 부분보다 교육개혁은 미진했다”며 “교육의 다양성과 수월성을 위한 노력보다 평준화에 대해 강조한 것은 전교조 등 일부 교원단체의 주장이 아니라 진보단체 입장을 반영하려는 교육부 관료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립형 사립고·특목고 진학을 위한 사교육은 한나라당이 교육과 관련한 대선공약대로 자율형 사립고 등을 확대하면 경쟁이 완화되면서 공교육으로 흡수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반대의 시각도 있다. 김천기 전북대학 교육학과 교수는 “한나라당의 ‘잃어버린 10년’ 주장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문제는 정책 실패에 있다기보다 적극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지 못한 것”이라며 “문제는 학벌주의와 입시교육체제에서 발생하는 것이지 ‘3불정책’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른바 5·31교육개혁(2005년) 이후 교육정책은 문민정부의 연속선상에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라며 “두 명의 새로운 대통령이 관료와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물리치고 국민의 여망에 따라 새로운 교육정책을 관철했는지가 중요한데, 관료구조·세력을 극복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도 굉장히 중요하게 평가해야 할 대목”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교육문제는 교육 전문가에 맡겨야 하며, 정치논리로 풀어선 안 된다”는 한나라당의 ‘10년 평가’에 대해서도 “정책은 교육 전문가 입장만 반영해서 결정할 수 없으며,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데 전문가 견해를 참고하는 수준에 머물러야 한다”며 “전문가 입장만 고려해서 정책을 결정한다는 것은 민주사회의 운영원리와도 맞지 않은 견해”라고 비판했다.
결국 과거에 대한 상이한 평가는 앞으로 펴나갈 정책문제와 맞물려 있다. 특히 교육분야는 대선후보들이 서로 다른 해법을 제시하고 있어 대비점이 뚜렷하다. 그러나 사교육과 교육이민의 증가 추세는 완급의 문제는 있을 수 있겠지만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 공통된 전망이다. 결국 선택은 국민의 몫으로 남는 셈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