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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막차를 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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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읽어버린 10년 시대 살아온 사람들 이야기

동두천 재래시장 아주머니는 10여 년간 지속되는 고단한 삶의 원인을 잘 이해할 수 없다.

동두천 재래시장 아주머니는 10여 년간 지속되는 고단한 삶의 원인을 잘 이해할 수 없다.

인구는 자꾸 줄어든다는데 왜 실업자는 많은가. 수출은 그렇게 잘 된다는데 장사는 왜 이리 안 되나. 매일 아파트는 늘어만 가는데 집 없어 고생하는 사람은 왜 그리 많은가. 세상은 자꾸 좋아진다고 하는데 우리 집 살림은 왜 수십 년간 펴지질 않는가. -동두천 재래시장 아주머니

경기 연천군의 농민 전갑수씨(43)는 요즘 연일 한숨을 몰아쉬고 있다. 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이제 만 16년째다. 아내와 결혼하면서 고향에 정착한 것은 농사에 대한 큰 기대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지긋지긋한 서울에서 딱 2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고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2만㎡ 이상을 자작하고 3만3000㎡ 정도를 차농해서, 먹고사는 것이 그리 각박하지는 않았다. 사정이 급변한 것은 큰 아이가 올해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다. 미술에 소질을 보이는 딸은 지금 서울 한 고등학교에 유학 중이다.

“한 달에 과외비 100만 원, 자취방 월세, 생활비, 용돈 등을 합해 거의 200만 원을 아이에게 써야 한다. 아내가 한 달에 며칠씩은 자취방에 가봐야 하니 왕복 교통비와 거마비도 만만치 않다.” 그는 10년 전보다 지금이 훨씬 더 살기 어려워졌다고 생각한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1998년 무렵에도 1년에 5000만 원 이상은 벌었죠. 쌀농사도 짓고 비닐하우스도 열심히 했으니까요. 문제는 단순히 먹고사는 것이 아니라는 걸 요즘 절감합니다. 소득은 분명 꾸준히 늘고 있지만 소비가 그보다 몇 배로 늘고 있어요. 아내나 아이들에게 뭔가를 해주지 않으면 금방 불평 불만이 쏟아지지요. 휴대전화를 교체해달라거나 화장품, 문화비용 같은 것에 대한 욕구가 엄청나게 강해졌어요.”

전씨의 말은 요컨대 요즘 도시와 시골 간의 문화적·심리적 차별 의식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시민이 욕구하는 것은 농촌 사람들도 당연히 충족을 원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예컨대 42인치 PDP TV에 대한 욕구는 도시민과 농민을 가리지 않는다.

“사람 욕심은 끝이 없어요. LCD TV가 더 선명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몇십만 원씩 더 주고 그걸 산단 말이오. 김치냉장고 들여놓는 것이 유행하더니 요즘엔 에어컨들을 달고 삽니다. 이웃이 사면 나도 사야 하는 게 돼버렸으니 시골 사람 생활비가 도시 사람과 차이가 없어.”

요약해서 말하자면 전씨의 삶의 질은 10년 전에 비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가지고 있는 농토 외에는 마땅한 노후 대책이 없는 것도 불안하다. 국민연금에 가입했지만 앞으로 20여 년이 지난 후 받을 연금이 특별한 의지처나 위안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더 커서 시집 장가를 가기 시작하면 결국 가지고 있는 땅을 팔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실을 꼭 절망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대통령 탓을 하는데, 나는 생각이 달라요. 그전 대통령 시절이 더 좋은 시절이었냐 하면 그건 아니거든.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아니고, 이회창이가 대통령이 됐다 해도 농민정책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는 거죠. 어차피 농민은 뒷전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시대의 대세니까, 이것을 좌파정권이니 하면서 공격하는 것은 온당치 않아요.”

전씨는 그래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느끼는 배신감 같은 것이 있다. 김대중이나 노무현 같은 진보주의 정치인들이 농민을 배려할 것이란 기대가 분명 존재했기 때문이다. 중국산 농산물이 몰려오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이 임박한 상황에서 두 대통령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은 멀리 사라져버렸다. “언제 우리가 대통령 덕에 살았느냐”는 동네 노인들의 말에 더욱 공감이 가는 현실이다.

강남의 한 유력 증권사의 지점장 조민우씨(47·가명)는 노무현·김대중 정권의 탄생을 지지했던 사람이다. 그는 평소 한국 금융시장의 파행과 불투명성에 주목하면서 두 사람의 진보 정치인이 그 막힌 활로를 뚫어주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지금 그는 그런 희망을 버렸다.

“증권사 지점장들, 차명으로 주식투자 많이 해요. 떼돈 번 사람들도 많고요. 나 역시 직원 시절 남의 돈 끌어들여 투자했죠. 한번 큰 돈을 잃고 다시는 투자 안 합니다. 그 대신 연봉 1억 원 이상을 받으며 경제적으로는 만족하며 살아갑니다. 지난 10년간 부동산 가격이 엄청나게 올랐죠. 저도 그 수혜자 중 하나입니다. 7~8년 전 강남에 분양받은 아파트가 지금 10억이 나가니까 앉아서 돈을 벌었지요.

“언제 우리가 대통령 덕에 먹고살았나요”

경기 연천의 농부. 추수를 갈무리하는 농부의 마음은 어둡고 답답하다.

경기 연천의 농부. 추수를 갈무리하는 농부의 마음은 어둡고 답답하다.

증권맨들 대부분은 한나라당을 지지합니다. 이명박씨가 집권하면 증권시장이 또 한 번 도약하고 그만큼 목돈을 벌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믿고 있지요. 막연하게 그렇게 믿습니다. 그러나 개인이 부자가 되는 것과 국민이 공평하게 잘 사는 것과는 다릅니다. 학창시절, 운동권의 논리에 공감하면서 저는 약간 좌로 기운 정치인들이 조화롭게 국가를 경영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노무현 정부 5년간을 지켜보며 그 기대가 무너져내리는 것을 목격했다.

“제가 입사할 시점(1988년), 명문대 경영학과나 경제학과를 졸업하면 대기업 입사는 식은 죽 먹기였습니다. 과 사무실에 가면 원서가 쌓여 있었고, 마음에 드는 회사를 선택해갈 수 있었습니다. 증권사 입사도 지금처럼 어렵지 않았어요. 경제의 활력이 넘쳤고 팽창해가는 경제의 힘을 피부로 느꼈으니까요. 그때는 너무도 당연하게 여겼던 상황들이 지금 생각하면 굉장한 축복이었던 것이죠. 그런 활력이 다 어디 갔나요. 그 책임을 10년 좌파 정권이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서 뭔가 다른 방식의 국가경영론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돼요. 고3이 된 딸 아이가 진로를 걱정할 때, 뾰족하게 해줄 말이 없어요. ‘유학을 보내면 어떻게든 풀리겠지’ 생각도 해보지만 유학생 출신 실업자도 넘쳐나는 상황을 보면 그것도 안이한 생각이죠. 나라의 근본을 바꿔야 해요. 지나간 10년을 일단 실패로 규정하고, 골똘하게 다른 묘안, 국가경영의 새로운 틀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는 아직도 한국의 증권시장이 활력을 잃지 않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또한 시중자금을 투자자본으로 전환하는 증권시장의 시스템에 종사하고 있음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사회의 엘리트들이 느끼는 현실 인식이 주변부 사람들의 인식을 대신할 순 없다.

“저는 어렵게 공부해서 자수성가한 부류에 속합니다. 중·고교 시절, 변변한 과외 한 번 받지 않았어요. 우리 아이들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지금 그 생각을 버린 지 오래됐어요. 아내는 능력 있는 과외 교사를 찾아 오늘도 헤매고 다닙니다. 추한 모습이지요.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해요. 사회 구성원들이 국가적 어젠다에 관심이 없어요. 저부터가 그렇지요. 이렇게 만든 것을 좌파 정권의 실패로 규정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 사람들 국가적 어젠다를 무척이나 강조하는 사람들인데, 집권 10년 동안 그런 사회적 분위기는 완전히 실종됐습니다. 능력이 없거나 요령이 없거나 아니면 궤도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닌가요?”

소위 ‘좌파정권’ 10년간 비정규직 문제는 더욱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본질적인 의미에서 두 정권은 좌파 정권이라기보다 ‘신자유주의 정권’이라는 노동계의 지적이 일면 타당한 것도 비정규직 문제가 그 해법을 아직 찾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정렬 공공노조 조직쟁의 국장은 비정규직 문제를 일자리 문제가 아니라 생존권 문제라고 주장한다.

유정렬 공공노조 조직쟁의 국장은 비정규직 문제를 일자리 문제가 아니라 생존권 문제라고 주장한다.

전국 공공서비스노조 유정렬 조직쟁의국장은 ‘합리적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양산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가 사실은 노동자들의 ‘생존권 박탈로 이어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최근 노조 산하 전국학교비정규직 투쟁대책위원회의 활동과 당면한 문제를 이렇게 분석했다.

“전국 학교의 비정규직 직원은 모두 12만 명에 달합니다. 학교 급식실의 조리종사원 5만여 명, 기타 영양사, 행정실 직원, 도서실 사서, 교무실 교무보조, 과학실 과학조교 등의 수가 7만 명을 넘지요. 이들 역시 7월 1일 비정규직보호법의 시행을 전후해 큰 어려움에 봉착했습니다.

다른 부분의 비정규직 직원과 마찬가지로 채용 2년 후 정규직 전환 의무 조항 때문에 해고의 위험에 직면해 있습니다. 설혹 해고되지 않는다 해도 임금 체계의 전환을 통해 대폭 삭감된 임금을 강요받고 있지요.”

서울의 한 사립여고는 올 1월 비정규직 직원 4명을 일시에 해고했다. 7월 1일 새로운 법 시행에 앞서 합리적으로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학교는 ‘합리적’이란 말을 쓰지만 당하는 직원들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다.

“생존을 위협하는 법안이 어떻게 합리적입니까. 한 명문 공립여고는 17년간이나 일했던 비정규직 직원의 신분을 박탈하고 간접고용 방식으로 전환했습니다. 17년간 일한 직원의 운명에 대해 이제는 더 이상 책임질 수 없다는 선언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한 초등학교의 방과 후 보육교사는 현재 임금의 3분의 1 수준으로 깎인 봉급으로 재계약을 강요받았습니다. 연봉제로 바꾸면서 사실상 퇴직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들의 고용과 퇴직을 사실상 결정하는 주체는 학교장이다. 학교장이 전권을 쥐고 있다. 학교장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재계약에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학교장의 전권 행사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 유 국장의 생각이지만 시도교육위원회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공공서비스 노조에 가입한 학교 비정규직 직원은 정말이지 미미한 세력입니다. 12만 명 중 고작 700명이 가입해 있어요. 노조에 가입하려 해도 학교 눈치를 보기 때문에 여의치 않은 겁니다. 노조에 가입하면 즉각 개인 면담을 통해 회유와 협박이 들어옵니다. 즉각 탈퇴를 종용하는 것이죠. 해고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한 노조에 가입하기 힘듭니다. 공통의 문제를 개인의 힘으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생계 문제에 직면해서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지요.”

더 큰 문제는 비정규직의 고용 사이클 속에도 편입돼 있지 않은 사람들이다. 영세 자영업자, 시장 상인들은 사회적 안전망 밖에 존재하며, 경기 침체 여파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서울 강북 지역 한 시장 모퉁이에서 신발 노점상을 하고 있는 박정호씨(40)는 1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달라는 기자에게 냉소적인 태도로 이렇게 말했다.

안보의식 고취와 노령연금 포스터가 나란히 붙어 있는 구청 게시판.

안보의식 고취와 노령연금 포스터가 나란히 붙어 있는 구청 게시판.

“국가경영 새로운 틀 모색해야 합니다”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어요. 애들이 커가면서 더 궁핍해질 뿐이죠. 자존심 때문에 정부에 생활을 보호해달라고 하진 않아요. 아이들에게 차마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니까. 중국산 신발, 망한 신발회사의 상품을 싸게 갖다 1만 원씩에 팔아요. 경기 일대 장날을 돌아다니며 팔기도 하지요. 하루 5만 원에서 7만 원의 수입이 있지만 이 돈으론 월세 내고 입에 풀칠 할 정도로 살 수 있어요. 국민연금을 한 달에 5만원씩 내야 하는데 이것도 엄청나게 밀려서 지금도 독촉장이 매달 나와요. 제 바람은 국민연금 매달 내는 것 면제해주고 지금까지 낸 연금을 일시불로 받게 해달라는 겁니다. 이자는 한 푼도 받지 않아도 좋으니까. 25년 후 연금을 받기도 전에 생활기반이 다 무너지겠어요.”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기본적인 사회 안전망을 보장하면서도 경제의 활력을 되살려야 희망이 생기는 것이다. 경제를 살려 일자리를 늘리면 다 해소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경제의 활력을 양극화 해소의 물꼬를 트는 방향으로 운용해야 하는 묘수가 필요하다. 이 상황에서 대선 정국에 화려하게 제시되고 있는 이명박식 해법, 정동영 또는 문국현식 해법이 없는 사람들에겐 관념적 논란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잉어빵 장사의 눈에 로또 포스터는 삶을 우롱하는 환상으로 비칠 뿐이다.

잉어빵 장사의 눈에 로또 포스터는 삶을 우롱하는 환상으로 비칠 뿐이다.

저 화려한 중산층의 신화도 무너져내리고 있다. 중산층의 신화, 즉 코리안 드림은 105㎡ 아파트와 중형차의 소유, 주말여행, 골프와 스키 등으로 상징되고 있다. 경기 의정부에 105㎡ 아파트를 소유한 자칭 중산층 김점숙씨(37)는 최근의 고통을 이렇게 설명한다.

“1억5000만 원을 대출받아 2년 전 아파트를 마련해 세를 줬어요. 매달 금융비용만 70만 원 이상 나가니까 월세를 놔야 합니다. 그런데 기대한 것만큼 집값이 오르지 않았어요. 집값이 올라야 내 집에서 한 번 살아보는 건데 그 꿈은 아직 요원합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선 정부가 부동산세도 내리고 돈 있는 사람들이 몇 채씩 주택 소유도 허용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와요. 그래야 부동산 시장이 살고, 집 가진 중산층이 희망을 갖고 살 수 있지요. 우리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막차를 탔어요. 돈 있는 사람 돈 다 벌고, 정작 피해는 우리처럼 가난한 중류층이 받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정권을 한 번 갈아야 합니다. 부자들 돈 버는 것 막지도 못하고, 가난한 사람들 희망을 빼앗아간 정권은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경기 동두천시의 한 재래시장에서 만난 상인의 궁금증은 그 누구도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다. 그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인구는 자꾸 줄어든다는데 왜 실업자는 많은가. 수출은 그렇게 잘 된다는데 장사는 왜 이리 안 되나. 매일 아파트는 늘어만 가는데 집 없어 고생하는 사람은 왜 그리 많은가. 세상은 자꾸 좋아진다고 하는데 우리 집 살림은 왜 수십 년간 펴지질 않는가.”

<한기홍 편집위원 glutton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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