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오월에 대한 곧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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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광주의 오월에 대한 곧은 시선

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창비·1만2000원

한강의 신작 <소년이 온다>를 만나기 전, 새로 번역돼 나온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를 읽었다.

흑인 노예 엄마가 갓난 딸의 목을 그어 죽인 참담한 역사에 책장은 더디게 넘어갔고 그러다 한순간 눈앞이 환해지며 벅찬 감동을 느꼈다.

그때 문득, 오월 광주도 백 년이 지나야 이런 지극한 언어로 기려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벌써 닳고 해져 잊혀가는 그날을 제대로 기억하려면 아주 오래 기다려야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내가 잘못 생각했음을 알았다.

하루 종일 이 책을 붙들고서, 읽다가 눈을 감고, 읽다가 한숨을 내쉬고, 다시 읽다가 꺽꺽 소리 내 울면서 알았다.

작가의 역량이, 그러니까 글을 잘 쓰는 능력을 넘어선 그의 진정성이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성취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을.

한강은 진정성이라는, 이제는 낡은 듯 보이는 그 말로밖엔 표현할 길 없는 진지한 책임감과 올곧은 성실로 광주의 오월에 부끄럽지 않은 언어를 이루었다.

1980년 5월 26일 계엄군이 도청을 진압하기 전날 밤에서 시작한 1장부터 2014년 작가가 이 소설을 쓰게 된 인연과 심중을 술회한 에필로그에 이르기까지 소설은 팽팽한 긴장으로 가득하다.

문자로, 영상으로, 증언과 창작으로 여러 번 접해온 익숙한 이야기인데도 그렇다.

아마 참혹한 현실에 눈감지 않는 작가의 곧은 시선과 무서우리만큼 정확한 문장 덕분일 것이다.

얼굴과 가슴을 수차례 칼로 베인 젊은 여성의 부패한 시신을 고스란히 지켜보는 첫 장의 시선은 끝까지 유지된다. 그 시선은 동정과 분노로 흔들리거나 흐려지지 않는다.

작가는 다만 지켜본다.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현실을 눈 부릅뜨고 끝까지 감당한다. 34년 전 봄에도, 올봄에도 걸핏하면 눈 감고 피해온 나로선 이런 작가가 그저 놀랍고 고마울 뿐이다.

소설은 언어의 예술이니 <소년이 온다>의 성취는 무엇보다 언어에 있다.

장편임에도 어색한 단어나 빼도 좋은 문장 하나를 발견할 수 없을 만큼 이 작품의 언어는 집중도가 높다.

그리고 그 언어로 빚은 인물들은 귀신마저 생생하다. 27일 새벽 도청에서 죽은 열다섯 살 동호, 시신조차 사라져 끝내 행불자가 되고 만 그의 친구 정대와 누나 정미, 그 봄날에 죽지 못해 남은 생을 거듭거듭 죽어야 했던 선주, 은숙, 영재, 진수, 동호의 엄마와 형까지, 소설을 읽노라면 이 모든 이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른다.

그들이 겪은 절망과 모욕을 마치 내가 겪은 듯이 벌벌 떨리게 느끼게 된다.

안타깝게도 <소년이 온다>에는 <빌러비드>가 보여주는 사금파리 같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작가의 한계가 아니라 우리의 현재다. 잠시나마 인간임을 자랑으로 여기게 해줬던 이들을 ‘꽃 핀 쪽으로’ 모시고, 죽은 이를 모욕하는 것이 훈장이 되어버린 천박한 시대를 끝낼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걸 가르쳐주기 위해, 저 오래된 미래로부터 지금 소년이 온다.

<김이경 소설가/독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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