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운 타고 난 김관진 정책통 한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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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진 안보실장의 프로필은 전형적인 ‘용장’의 이미지다. 심지어 강경파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육사 31기 출신인 한민구 국방장관 내정자는 정책·전략기획 업무분야에서 최고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군에서 하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지장(智將), 용장(勇將), 덕장(德將)이 모두 합쳐서 덤벼도 이기지 못하는 장수가 바로 운이 따르는 ‘운장’(運將)”이라는 것이다. 청와대가 이달 초 국가안보 컨트롤타워 역할을 담당할 신임 국가안보실장으로 임명한 김관진 국방장관의 경우는 관운이 넘친다는 측면에서 운장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운장’에 앞서 언론이 보도하고 있는 김관진 안보실장의 프로필은 전형적인 ‘용장’의 이미지다. 심지어 강경파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의 국가안보실장 임명에 대해 북한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박근혜는 극악무도한 대결 광신자를 청와대 안보실장으로 지명한 것으로 하여 초래되는 모든 후과(결과)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면서 김관진 실장을 ‘친미사대 매국노’, ‘민족반역자’, ‘대결 광신자’ 등으로 표현했다.

한민구 국방장관 내정자. | 서성일 기자

한민구 국방장관 내정자. | 서성일 기자

김 실장은 2010년 12월 4일 국방장관 취임 이후 지난 3년 6개월 동안의 장관 재임 기간 중 ‘도발원점 타격’, ‘지휘세력까지 타격’ 등 북한이 도발하면 굴복할 때까지 응징하겠다는 대북 강경발언을 잇따라 쏟아냈다. 그는 신년사 격인 장관 지휘서신 1호에서 이순신 장군의 어록을 빌려 ‘차수약제 사즉무감’(此讐若除 死則無憾), 즉 ‘원수를 무찌른다면 지금 죽어도 한이 없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북한도 ‘특등 호전광’, ‘역도’, ‘괴뢰패당 우두머리’, ‘첫 벌초 대상’ 등의 원색적인 용어를 쓰면서 그를 비난해 왔다. 심지어 북한군은 김관진 국방장관의 얼굴을 사격 표지판으로 사용했는가 하면 군견이 ‘김관진’이라는 이름표를 단 마네킹을 물어뜯는 장면을 조선중앙TV에서 방영하기도 했다. 그만큼 북한이 가장 싫어하는 국방장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관운 타고난 ‘運將’, 대북 강경파
수년 전에는 김관진 국방장관을 살해하기 위한 북한 암살조의 국내 잠입설까지 나돌면서 국방부는 장관 차량의 유리를 방탄으로 바꾸고, 출퇴근 때마다 출입문을 포함해 차량의 이동로를 바꾸기도 했다. 그는 또 장관 집무실에 북한군 수뇌부의 사진을 걸어놓기도 했다.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적장을 보면서 ‘지금 이 순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고 짚어보는 차원에서 붙여놓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니폼(군복) 입은 장군도 아닌 반 정치인인 국무위원으로서 그런 사진을 걸어놓은 것이 부적절하다는 평가가 꽤 많았지만, 일부 시민들은 “과연 김관진”이라면서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김관진 안보실장이 6월 2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김관진 안보실장이 6월 2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그와 같이 근무한 군인들의 평가에 따르면 김 실장은 실제 덕장에 더 가깝다. 대신 나름대로 가치관이 뚜렷하다. 김 실장의 독특한 가치관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독일 육사 출신이다. 그런데 독일 육사는 학사학위를 수여하지 않기 때문에 독일 육사로 유학을 갔다 온 후 임관한 장교들은 대학 위탁교육을 통해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마찬가지로 독일 유학을 마친 김 실장에게도 서울대 위탁교육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그는 거부했다. 이유인 즉, 군인이 되려고 육사를 갔지, 서울대 가려고 육사 간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억지스러운 고집을 피운 때문에 그는 오랜 기간 공식 학력이 고졸이었다. 이후 그는 문제를 제기했고, 소정의 절차를 거쳐 대학 졸업 학력을 인정받았다. 현재 그의 최종 학력은 대학원 졸업이다.

김 신임 실장은 ‘작지만 강한 군대’를 건설하기 위한 국방개혁에는 한계를 보였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국방장관 취임 이후 군령권(작전·정보)과 군정권(인사·군수)을 통합하는 것을 골자로 한 상부 지휘구조 개편을 추진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또 장관 재임 시 군내 인사 잡음도 일부 나왔고, 북한 무인기 사태, 사이버사령부 정치 댓글 의혹 사건 등이 발생해 일각에서는 책임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야전부대보다는 정책부서에서 두각
육사 31기 출신인 한민구 국방장관 내정자는 국방부와 육군본부, 교육사 등 정책부서에서 쌓은 다양한 업무경험을 바탕으로 정책·전략기획 업무분야에서 최고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야전부대보다는 정책부서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윗사람의 신뢰가 큰 만큼 야전부대 지휘관으로 나갈 때마다 제대로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군 수뇌부가 적임자가 마땅히 없다는 이유로 그를 임기에 관계없이 정책부서 책임자로 자꾸 불러들였기 때문이었다. 부산지역 53사단장으로 있다가 1년도 채 근무하지 못하고 국방부 국제협력관으로 보직이 바뀐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 내정자는 치밀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약점이 된 경우도 있다. 한 내정자는 2006년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 재직 당시 열렸던 남북 장성급회담의 우리 측 수석대표를 맡아 당시 북측 대표였던 김영철 북한군 중장(한국군 소장)과 직접 대좌했다. 나중에 정찰총국장까지 지낸 김영철은 ‘승냥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을 만큼 거친 성격의 소유자였다. 당시 한 내정자는 날씨와 농사를 주제로 한 의례적인 인삿말을 준비해 갔는데 김영철은 말꼬리를 잡고 시비를 걸어왔다. 일종의 기싸움이었다. 이럴 때는 보통 순발력을 발휘해 말장난 같지만 ‘되치기’를 해야 하는데 한 내정자는 말 한 마디라도 심사숙고해서 하는 성격인 탓에 점잖게 대응하다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합참의장 재임 시절인 2010년에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때 미온적으로 대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 부분은 국회 인사청문회의 쟁점이 될 전망이다. 한 내정자는 “당시 충분한 대응사격과 함께 추가도발에 대응한 공군력 운용 대비를 지시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심모원려형인 한 내정자가 여러 가지 군사적 파장을 고려한 것이 외부에는 소극적 대응으로 비쳐졌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 내정자는 2010년 7월 합참의장 후보자로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친 바 있다. 앞서 그는 육군의 인사권을 가진 육군참모총장이었으면서도 가장 큰 권한인 장군 인사 한 번 못해보고 합참의장으로 내정됐다. 당시 이를 두고 “운장(運將) 황의돈 장군 옆에 있다가 파편을 맞았다”는 말이 군 내부에서 나돌았다.

총장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9개월 만에 합참의장으로 자리를 옮긴 당시 한 합참의장 내정자는 합참에서 근무한 경력이 전혀 없었다. 반면 육사 동기생인 황의돈 대장은 합참에서 정보융합처장, 작전기획부장, 국방정보본부장 등을 역임해 합참 근무경력이 풍부했다. 누가 봐도 황의돈 장군이 합참의장에 더 적합했다. 그러나 황의돈 대장의 재산문제가 청문회 과정에서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한 군 최고 수뇌부는 그를 합참의장이 아닌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고, 한민구 육군참모총장을 합참의장으로 임명하는 ‘대장 돌려막기’ 인사를 실시했다. 결과적으로 한 내정자는 육군참모총장과 합참의장, 국방장관을 모두 역임하는 관운을 누리게 됐다. 황의돈 대장은 나중에 재산 형성 과정이 문제가 되면서 육군총장에서 중도하차했다. 한 내정자는 구한말 항일 의병장이었던 한봉수 선생의 손자이다.

<박성진 경향신문 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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