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의 기득권 보호정책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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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 베이징·도쿄 지국장 출신이며, 온라인 저널리즘 전문가인 레베카 메키논은 2012년 6월 7일 그녀가 설립한 전 세계 시민언론가들의 네트워크 ‘글로벌 보이스’에 기고한 보고서에서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존중하지 않는 국가에서는 새로운 통신 인프라의 도입이 새로운 검열과 감시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글에서 그녀가 꼽은 최신 사례는 에티오피아였다.

7월 12일 오전 ‘망 중립성 이용자 포럼’ 주최로 광화문 방송통신위원회 앞에서 열린 방송통신위원회 직무위반에 대한 감사원 공익감사청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방통위에 대한 항의 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7월 12일 오전 ‘망 중립성 이용자 포럼’ 주최로 광화문 방송통신위원회 앞에서 열린 방송통신위원회 직무위반에 대한 감사원 공익감사청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방통위에 대한 항의 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 나라의 유일무이한 이동통신사인 에티오 텔레콤은 인터넷 속도와 품질을 개선하기 위해 3G 무선망을 설치한다는 명분을 세운 후, 심층 패킷 감시란 기술을 통해 아랍의 민주화에서 사용됐던 토르(Tor)와 같은 인터넷 검열 우회 기술을 원천 차단해버렸다. 이런 탄압은 이후 한층 더 악화됐다. 2012년 5월, 에티오피아 의회는 에티오피아 통신 서비스 침해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에 따라 에티오 텔레콤은 인터넷 전화(VoIP)를 포함한 잠재적 경쟁자들을 이동통신사의 수익 침해뿐 아니라 국가 안보에 위협된다는 명목으로 제거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됐다.

이런 반(反)자유적이고, 반(反)경쟁적인 행위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헌정의 기초로 한 대한민국과는 상관없는 소식처럼 들린다. 그러나 지난 7월 13일 방송통신위가 발표한 ‘통신망의 합리적 관리 및 이용에 관한 기준안’을 생각하면, 이건 전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날 방통위가 정한 기준안에 따라 KT, SK 텔레콤 등 이동통신사는 파일 공유 기술(P2P)과 모바일 인터넷 전화(mVoIP)에 대해 트래픽 차별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이 권한을 실질적으로 행사하기 위해 심층 패킷 기술을 사용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심층 패킷 기술이 앞서 소개됐던 것처럼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시민단체 등을 통해 제기됐지만, 가볍게 넘어갔다. 에티오피아처럼 한국에서도 이통사가 4G 무선망을 설치한다는 명분으로 ‘IT 검열 강국’에 한 걸음 더 다가갔고, 정부도 거기에 보조를 맞췄다.

물론, 심층 패킷 기술이 이통사가 주장한 것처럼 트래픽 관리 측면에서 활용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같은 기술이 앞서 에티오피아뿐 아니라 이란 같은 권위주의적 국가에서 인터넷 검열에 애용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헌법이 국민의 자유를 수호하는 나라에서는 그 같은 기술의 이용은 신중하게 제한되어야 하고, 명백한 이용자의 동의 없이는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나아가, 근본적으로 대한민국의 전기통신사업법상 이통사는 기간통신사업자(common carrier)다. 즉, 트래픽을 전달해주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지, 그 트래픽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를 파악하고, 심의하는 내용규제를 할 수 있는 권한도, 책임도 그들에게 애초에 주어진 바 없다. 법으로 허용되지 않는 권리를 이통사에게는 허용하면서, 국민에게는 헌법으로 보장된 기본권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방통위의 행동은 정당화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통사를, 그리고 방통위를 이토록 당당하게 하나로 만드는가? 한 마디로 그것은 기득권이다. 전자는 한국 IT산업을 갈라파고스로 만들지라도 자신들의 수익을 보전하길 원한다. 후자는 국민들이 자신들의 통제를 벗어나 자유로운 소통을 하길 원하지 않는다. 한국에 전 세계에서 83번째로 아이폰이 들어온 것은 위피(WIPI)란 나홀로 모바일 표준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나홀로 표준은 한국 정부와 이통사의 합작품이었다. 그 어제를 기억한다면, 따라서 오늘이 우연이 아님을 알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미래가 되어서는 안 된다.

모두에게 개방되고 자유로운 인터넷이, 우리가 알던 인터넷이 추억이 되는 일은, 오히려 감시와 검열의 도구가 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이다. 내 자신의 자유는 내가 스스로 지키려 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지켜주지 않기 때문이다.

김재연 <‘소셜 웹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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