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입’ 자처 ‘4대강 살리기’ 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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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성진의 순행치수(順行治水)와 부쟁지덕(不爭之德)

공성진 최고위원. <이상훈 기자>

공성진 최고위원. <이상훈 기자>

검찰총장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이후 처음으로 내정자가 임명 직전에 낙마하는 일이 빚어졌다. 불투명한 금전거래 및 부적절한 처신 등에 대한 여론의 거센 질타로 인한 것이다. 주목할 점은 법상(法相·법무부장관)보다 더 막강한 검찰 총수에 대한 ‘제수(除授)’ 의사를 전격 철회한 이명박 대통령의 행보다. 청와대 측이 전하는 이 대통령의 언급이다.

“고위 공직자가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반하는 것은 잘못이 아닌가. 그런 사람일수록 처신에서 타의 모범이 돼야 한다.”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팍스 로마나’의 배경을 ‘귀족은 도덕적 의무를 진다’는 뜻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서 찾은 바 있다. 실제로 로마 귀족은 전쟁이 일어나면 솔선해 재산을 사회에 헌납한 뒤 스스로 무장해 전선으로 달려 나갔다. 포에니 전쟁 당시 전사한 ‘콘술(집정관)’만 13명에 달했다. 시오노는 공공의식과 솔선수범, 검박한 삶 등으로 상징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역사적 의미를 이같이 풀이했다.

“로마는 이 전통 덕에 ‘지성’은 그리스인, ‘체력’은 켈트인 및 게르만인, ‘기술’은 에트루리아인, ‘경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졌으나 결국 위대한 로마 문명을 천년 동안 꽃피울 수 있었다.”

러·일 전쟁 당시 일본은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러시아 육군과 만주의 패권을 놓고 여순·대련에서 맞붙었다. 일본의 육군대장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는 6만 명의 부하들이 전사하는 악전고전 끝에 승리할 수 있었다. 해군대장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가 발틱함대를 일거에 현해탄에 수장시킨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었다. 자식과 남편을 잃은 수많은 일본의 어머니와 아내들이 그를 규탄하기 위해 요코하마 부두가로 몰려갔다. 그러나 노기의 손에는 두 아들의 유골함이 들려 있었다. 그럼에도 죄책감을 벗지 못한 그는 이내 할복하려다가 메이지 천황으로부터 ‘내 생전에는 할복할 수 없다’는 명을 받고 자중하다가 1912년 메이지의 장례식 당일 부인과 함께 할복자살했다.

토론회서 이대통령 적극 감싸
최근에는 귀족을 대신한 부자들의 ‘리세스 오블리주(Riches oblige)’가 강조되고 있다. 세계 2위의 갑부이자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이 보유 주식의 85%에 이르는 370억 달러를 빌 게이츠가 운영하는 자선단체에 기부한 게 그 실례이다. 한 손에 <논어>, 한 손에 주판을 들고 수많은 기업을 일으킨 뒤 600여 교육복지단체를 세운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도 “영리행위 또한 인애(仁愛)가 깃들고 도의에 맞아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보유재산을 쾌척해 만든 ‘청계장학재단’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관측통들은 이 대통령의 전격적인 ‘제수’ 철회를 두고 ‘친서민 행보’에 찬물을 끼얹을 것을 우려한 결과로 보고 있다. 이는 그가 자신의 ‘친서민 행보’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일환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청와대의 인사검증 시스템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로 그의 전격 철회는 평가할 만하다. 실제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입론(立論)한 그의 ‘친서민 행보’는 나름대로 주효하고 있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국정 지지도와 당 지지도가 ‘조문정국’ 이전으로 되돌아간 게 그 증거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한나라당이 ‘서민의 마음을 얻는 데 당운을 걸겠다’며 ‘서민정책 추진본부’를 발족시킨 것도 그 취지 만큼은 평가할 만하다. 용산참사 등에서 보듯이 비록 청와대와 보조를 맞추기 위한 ‘사후약방문’의 성격이 짙기는 하지만 ‘웰빙정당’의 본색을 호도하기 위한 이벤트로 치부하기에는 제법 결기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공성진 최고위원이 청와대 대변인을 방불하는 ‘MB의 입’ 역할을 자임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듯싶다. 최근 MBC의 ‘100분토론’에 참석해 이 대통령을 ‘소통의 달인’으로 적극 감싸고 나선 게 그 증거이다.

“이 대통령은 조그마한 중소기업에 취직해 20년 만에 회사를 굴지의 글로벌기업으로 키워냈다. 서울시장 시절에는 숱한 난관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4000여 회의 소통 과정을 거쳐 주변 상인들을 설득해 청계천 신화를 이뤘다. 이는 그가 ‘소통의 달인’이었기에 가능했다.”

그의 이런 논변(論辯)은 ‘친서민 행보’가 본격화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 대통령을 ‘벽창우(碧昌牛)’로 생각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인터넷 토론 광장에 ‘소통의 달인이 아니라 삽질의 달인이겠지’라는 등의 조소(嘲笑)가 줄을 이은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천하대세를 읽는 감각 탁월
당시 그는 왜 이런 구설을 자초한 것일까. 청와대의 ‘서민 속으로’ 속셈을 미리 읽었던 것인가? 실제로 강단에서 ‘미래학’을 가르친 바 있는 그는 천하대세를 읽는 감각이 탁월하다. 그의 ‘미래학적’ 예견이다.

한나라당 공성진 최고위원(오른쪽)이 허태열·정몽준 최고위원과 함께 앉아 있다. <박민규 기자>

한나라당 공성진 최고위원(오른쪽)이 허태열·정몽준 최고위원과 함께 앉아 있다. <박민규 기자>

“이제는 천신만고 끝에 성공을 거둔 ‘스토리 정치인’의 시대가 가고 정상적인 성장 과정을 거쳐 일정한 직업에 종사하면서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식견을 갖춘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오는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청와대가 직할 운영이 가능한 ‘여의도 친위대’를 구축하려는 포석의 일환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징후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잠잠했던 조기전당대회가 다시 고개를 드는 가운데 ‘히든 실세’로 일컬어지는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정치 재개의 기지개를 켜면서 박근혜 전 대표를 걸고 나선 게 그 증거다. 박희태 대표가 10월 재·보선 출마를 선언한 상황에서 차기 당권을 염두에 둔 행보가 아니냐는 해석을 낳을 만하다. 그 역시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이를 뒷받침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이 전 최고위원은 정치인이고, MB 정부를 출범시킨 최고의 공헌자이다. 이 정권의 성패와 개인의 정치적 운명이 함께 갈 수밖에 없다. 정계 복귀는 당연한 것 아닌가.”

대학 응원단장 지낸 활달한 성격
정기국회 이전에 전당대회를 열어 새로운 지도부를 출범시켜야 ‘근원적 처방’도 할 수 있고, 청와대나 내각의 대대적인 인적쇄신도 기할 수 있다고 덧붙인 것은 청와대와의 사전조율 가능성을 짐작케 해 준다. 그가 최근 대운하 포기 이후 현 정부의 핵심 중점과제로 부상한 ‘4대강 살리기’에 총대를 메고 나선 것도 예사롭지 않다.

원래 ‘치산치수’는 위정자의 기본과제에 속한다. <맹자> ‘고자 하’편에 ‘치수’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나온다. <사기> ‘화식열전’에서 여불위(呂不韋)와 더불어 대표적인 거상(巨商)으로 꼽힌 백규(白圭)는 풍년에 곡물을 사들이는 대신 실과 비단을 팔아넘기고, 흉년에 고치가 폭락하면 비단을 사들이는 대신 곡물을 팔아 거만의 재산을 모았다. 하루는 곡물 증산을 위해 대대적으로 제언(堤堰)을 축조한 그가 맹자 앞에서 자신의 ‘치수’를 크게 자랑했다.

“나의 ‘치수’가 우(禹)임금의 그것보다 나은 바가 있다.”
우임금은 치수를 잘해 요(堯)로부터 보위를 넘겨받고 하나라를 세운 전설적인 인물이다. 맹자가 힐난했다.
“우임금은 자연스런 물길을 따르는 ‘순행(順行) 치수’로 사방의 강을 저수지로 삼았다. 그러나 지금 그대는 ‘역행(逆行) 치수’로 이웃 나라를 저수지로 만들고 있다. 이를 홍수(洪水: 물난리)라고 한다. 이는 인인(仁人)이 미워하는 바이다.”

‘역행 치수’로 인한 홍수는 인재(人災)이다. 수많은 갑문을 축조한 뒤 억지로 배를 띄우는 대운하가 바로 이 경우에 속한다. 그러나 ‘4대강 살리기’는 기본취지에 부합하는 ‘순행 치수’로 진행될 경우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는 학자 출신임에도 통상적인 서생과 달리 성격이 매우 밝고 개방적이다. 신정치 1번지인 강남지역을 같은 지역구로 삼고 있지만 고지식한 정통관료 출신인 강남갑의 이종구 의원과 대비된다. 대학 때 연고전의 응원단장을 지낸 것도 이런 활달한 성정과 무관치 않은 듯싶다. 정치철학을 전공한 바 있는 그는 노장학도(老莊學徒)를 자처하고 있다. 그가 자주 인용하는 구절은 <도덕경>의 ‘부쟁지덕(不爭之德: 다투지 않고 이기는 덕)’이다.

“장수 노릇을 잘하는 자는 무력을 쓰지 않고, 사람을 잘 활용하는 자는 스스로를 낮춘다.”
그가 ‘부쟁지덕’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대붕도남(大鵬圖南)일까? 그는 병역 면제자가 유독 많은 18대 국회에서 매우 드문 경우에 속하는 해병대 출신이다. 그가 10년 만에 정권을 탈환한 한나라당의 동료 의원들에게 ‘소명의식’과 ‘충성심’을 당부하는 것도 이런 이력과 무관치 않을 듯하다. 현재 ‘MB의 입’을 자처하고 있는 그의 선봉적인 역할에 대한 청와대의 평가는 극히 우호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차 이 대통령의 ‘깊은 관심’이 더해질 경우 ‘친이계’의 주역으로 부상할지도 모를 일이다. ‘근원적 처방’이 가시화할 8월 정국을 앞두고 그의 활약이 주목을 받는 이유이다.

신동준 <21세기정경연구소장> xhindj@hanmail.net | <조선일보> <한겨레신문> 기자,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서울대·외국어대·국민대 강사, <자치통감-삼국지> <국어> <공자와 천하를 논하다> <연산군을 위한 변명>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초한지> 등의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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