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수습 ‘바른말’ 대통령에 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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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수의 급선무(急先務)와 면절정쟁(面折廷爭)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

이명박 대통령이 마침내 상대(上臺: 청와대 입성)한 지 1년 반 만에 재산기부의 결단을 내렸다. 그러나 발표 시점 등을 놓고 여러 얘기가 나온다. ‘중도강화론’의 상징으로 내세운 ‘친서민 행보’의 추동력을 배가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그럴듯하다. 일각에서는 ‘조문정국’으로 코너에 몰리면서 이를 계속 미룰 경우 적잖은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을 우려해 아껴둔 카드를 마지못해 꺼내 들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은 더욱 직설적이다.

“기부가 아니라 재단을 만드는 것이다. 재산 많은 사람들이 탈세해서 자식들한테 재산 물려줄 때 많이 쓰는 수법이다.”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탈세’ 운운은 지나친 감이 있으나 사실 자신의 아호를 간판으로 내건 것은 자칫 쾌척(快擲)의 취지와 동떨어진 ‘가산(家産)에 대한 집착’으로 비쳐질 소지가 크다. 재단 이사진에 대통령의 친구와 측근, 사위 등이 포진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 자발성 및 순수성에 적잖은 의구심을 표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근원적 서민대책 마련 시급
그러나 시종 날 선 비판을 해온 민주당이 ‘만시지탄이 있으나 대국민 약속을 이행한 것은 다행이다’라는 논평을 내놓은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많은 사람들은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실제로 현직 대통령이 자신의 재산을 장학재단에 내놓은 것은 초유의 일이다. 이에 고무된 한나라당의 움직임은 매우 부산하다. 진수희 여의도연구소장이 당 차원의 장학재단 설립계획을 밝힌 데 이어 안상수 원내대표가 원내대책회의에서 의원들의 ‘협찬(協贊)’을 촉구하고 나선 게 그 증거이다.

“저도 돈이 없지만 장학재단에 내놓겠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도 조금씩 내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청와대와 한나라당 모두 ‘쾌척’과 ‘협찬’도 좋지만 서민을 위한 근원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라는 지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현재 민주당은 쟁점법안을 놓고 한나라당의 ‘직권상정’ 운운의 최후통첩에 발끈하며 결사저지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또 다시 여야 공연(共演)의 ‘깽판국회’가 재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원래 ‘깽판국회’의 1차 책임은 청와대와 한나라당에 있다. 비정규직법의 시행기간을 연장하는 식의 안이한 해법을 의중에 두고 반년이 넘도록 손을 놓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지적에 달리 변명키도 어렵기 때문이다. 국정운영 당사자로서 사안의 경중완급(輕重緩急)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이를 경계하는 <맹자> ‘진심’ 상편의 해당대목이다.

“지자(知者)는 선무(先務: 먼저 해야 할 일)를 급하게 여기고, 인자(仁者)는 친현(親賢: 현자를 가까이 함)을 급하게 여긴다. 요순 같은 ‘지자’조차 만물을 두루 알지 못한 것은 급선무(急先務) 때문이고, 요순 같은 ‘인자’조차 사람을 두루 사랑하지 못한 것은 급친현(急親賢) 때문이다. ‘3년상’을 제대로 모르면서 ‘시마소공(麻小功: 3월상과 5월상)’을 세밀히 살피는 것은 급선무를 모르는 것이다.”

현재의 ‘급선무’는 민심을 얻는 것이고, ‘급친현’은 대대적인 인적쇄신이다. 득민심(得民心)은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통한 ‘급친현’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강부자’와 ‘고소영’ 등의 ‘코드인사’로 인한 실민심(失民心)을 만회할 수 있다.

원래 최고통치권자에게 막강한 인사대권을 부여한 것은 급변하는 정황(政況)에 따라 그에 맞는 천하의 인재를 두루 찾아내 과감히 발탁해 쓰라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이 대통령이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친서민 행보’와 한나라당의 ‘장학재단’ 움직임은 3년상의 근본(根本)은 미뤄둔 채 ‘시마소공’의 지엽(枝葉)을 세밀히 살피는 것과 같다.

고래로 ‘득민심’에 실패하고도 통치에 성공한 적은 없다. 일찍이 관중은 <관자> ‘오보’(五輔)편에서 그 위험성을 이같이 경고한 바 있다.

“성군으로 칭송을 받은 사람치고 사람을 얻지 못했다는 얘기를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다. 폭군으로 나라를 잃어버린 사람 치고 사람을 잃지 않았다는 얘기를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다.”

성군과 폭군의 분기점이 바로 ‘득민심’과 ‘실민심’에 있음을 갈파한 것이다. 지난 6월의 ‘조문정국’ 하에서 터져 나온 대대적인 인적 쇄신에 대한 요구는 ‘중장기 근원적 처방’의 요설(饒舌)로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청와대 측은 8월쯤 그 실체가 드러날 것이라며 ‘개봉박두’를 되뇌고 있으나 벌써부터 전례에 비춰 ‘서일필(鼠一匹)’에 그칠 것이라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인사실패의 심각성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육탄돌파’
현재 한나라당 내에서 이 대통령의 심기를 가장 잘 읽으면서 근사하게 코드를 맞추고 있는 사람은 바로 안 대표이다. 그는 ‘강한 여당’을 표방하며 재차 원내사령탑에 올랐다. 최근의 정국경색도 청와대와 코드를 맞추고 있는 그의 강성행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는 그의 원내대표 출마 때 이미 예견된 것이기도 하다.

“주위에서 다시 한 번 십자가를 지고 이명박 정권의 성공을 위해 몸을 던져 보라는 권유가 있었다.”
‘육탄돌파’의 선봉장을 자임한 셈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그의 ‘육탄돌파’ 언동은 촛불정국을 자초한 청와대의 행보를 방불 한다. ‘조문정국’이 한창일 때 뜬금없이 ‘소요사태’ 운운한 게 그 증거이다.
“국민장의 슬픔에 젖어 북핵위기를 제대로 인식치 못하는 국민이 있는 듯하다. 안보의식을 더욱 강화해 경계를 철통같이 해야 한다.”

그의 이런 발언이 알려지자 수많은 네티즌들이 ‘철통안보’ 언급과 대비되는 그의 입영경력을 집중 성토하고 나섰다. 그는 졸업을 앞두고 현역입영 대상의 판정을 받았으나 연이은 고시낙방으로 두 차례 입영을 연기하는 와중에 연락이 두절돼 행방불명으로 처리되기도 했다. 32세의 고령이 된 1977년에 비로소 입영의무를 면제받아 보충역으로 군역을 마쳤다. 네티즌들이 그의 ‘철통안보’ 운운에 냉소를 보낸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한 네티즌의 지적은 통렬하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군대 가기 싫어서 나이될 때까지 계속 도망 다닌 것이다.”

민심 얻는 대대적 인적 쇄신 필요
최근 카운터파트인 민주당 이강래 원내총무와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벌인 ‘조문정국’ 논쟁도 구설에 오르기는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서거를 역사 속에 묻고 새 한국의 미래를 위해 나가야 할 때이다.”
이는 야당의 끈질긴 ‘대국민사과’ 요구에도 불구하고 침묵으로 일관한 청와대의 상황인식을 대변한 것이기도 하다. 천재(天災)조차 ‘부덕의 소치’라며 ‘책기지교’(責己之敎)를 발표한 조선조 군왕의 국량(局量)과 대비되는 협량(狹量)이 아닐 수 없다. 과거 문민정부는 민심이 들끓을듯하면 국민들이 생각하는 이상의 전격적인 대폭 개각으로 이를 조기 진화했다. 현직 장관이 경질통보도 받지 못한 채 출근했다가 집무실에서 신임 장관과 조우하는 해프닝이 벌어져 ‘깜짝쇼’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으나 민성을 화급(火急)하게 여기는 자세만큼은 평가할 만했다. 이벤트 위주의 ‘깜짝쇼’도 분명 문제가 있지만 민성을 무시한 ‘벽창우(碧昌牛)’ 행보는 더 큰 문제이다.

전직 검사인 그는 18대 국회에서 총 59명에 달하는 법조출신 대다수가 속한 한나라당 내에서 좌장 격에 속한다. 그는 법조출신 의원을 이같이 칭송한 바 있다.

“법조출신이 일을 잘한다. 특히 검사 출신은 상명하복의 검찰 분위기에 익숙한 탓인지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다.”
상명하복의 ‘청명(聽命)’을 유능한 의원의 기준으로 삼은 셈이다. 이는 의정(議政)과 상치되는 것이다. 원래 ‘의정’은 목숨을 건 직간(直諫)에서 출발한다. 조선조 때 사간원(司諫院)의 간관(諫官)은 흉년에 내려지는 금주령 하에서도 유일한 예외를 인정받았다. 군왕조차 금주령을 지켜야만 하는 상황에서 이런 특혜를 인정한 것은 역린(逆鱗)으로 인한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군왕의 면전에서 바른 말을 하도록 격려키 위한 것이었다. 이를 ‘면절정쟁(面折廷爭)’이라고 한다. 이들은 출·퇴근의 시간도 자유로웠을 뿐만 아니라 간언이 나오게 된 출처에 대한 추궁도 면죄 받았다. 이를 소위 ‘불문언근(不問言根)’이라고 한다.

사서에 최초로 등장하는 간관은 전국시대 말기에 활약한 초나라의 굴원(屈原)이다. 당시 초회왕은 그의 간언을 무시하고 진나라로 갔다가 인질이 되어 객사했고, 뒤를 이은 초경양왕은 간신들의 모함을 곧이듣고 그를 추방했다가 이내 패망을 자초했다. 당시 굴원은 절명시를 남기고 멱라수에 몸을 던지는 소위 ‘사간(死諫)’을 행함으로써 간관의 표상이 되었다.

최근 이 대통령이 보여주고 있는 ‘친서민 행보’ 등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는 ‘시마소공’의 쇄사(鎖事)에 지나지 않는다. 3년상의 급선무인 ‘득민심’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대대적인 인적 쇄신인 ‘급친현’을 성사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최근 구두선처럼 되뇌는 ‘중도실용’에 대한 국민들의 전폭 지지도 기대할 수 있다. 이는 ‘면절정쟁’의 당사자인 원내사령탑의 몫이다. ‘중장기 근원적 처방’ 운운은 청와대의 안이한 시국상황 인식 수준을 짐작케 해준다. 그의 ‘면절정쟁’ 행보가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이다.

신동준 <21세기정경연구소장> xhindj@hanmail.net | <조선일보> <한겨레신문> 기자,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서울대·외국어대·국민대 강사, <자치통감-삼국지> <국어> <공자와 천하를 논하다> <연산군을 위한 변명>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초한지> 등의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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