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오죽하면, 20년 전 일로 해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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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발생한 밀양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 중 한 명이 한 수입차 판매업체에 근무 중인 사실이 알려지자, 해당 회사가 지난 6월 4일 해당 직원을 해고했다. 회사 인스타그램 갈무리

2004년 발생한 밀양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 중 한 명이 한 수입차 판매업체에 근무 중인 사실이 알려지자, 해당 회사가 지난 6월 4일 해당 직원을 해고했다. 회사 인스타그램 갈무리

“부장님, 유튜브 보셨어요? 이 과장(가명)이 20년 전 그 사건의 공범이었다고요. 계속 같이 근무할 수 있을까요?” 김 대리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사무실은 일순 조용해졌다.
인사부 박 부장은 창밖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 우리 회사 규정에 맞는지 확인해봐야겠어.”
부장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회사에 입사하기 전 범죄로 해고할 수 있는지는 케이스별로 달라. 과거 비위행위를 저지르고 입사한 경우에도 징계할 수 있다는 판례도 있기는 하지만, 원칙적으로 과거와 현재의 직무가 연속성이 있어야 하거든.”
김 대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럼 이 과장의 경우는 어떻게 되나요?”
부장은 답했다. “이 과장이 입사한 후 범죄사실이 밝혀졌다면, 회사 규정에 따라 채용 결격 사유로 해고가 가능할 수도 있어. 우리 회사는 성범죄로 벌금형을 받은 후 2년이 지나지 않았다면 해고가 가능하지.”
김 대리는 다시 물었다. “하지만 20년 전 사건이라면 시간이 많이 지났잖아요.”
부장은 깊은숨을 내쉬며 답했다. “범죄행위가 현재 업무와 관련성이 없다면 해고는 무효가 될 가능성이 커. 오랜 시간이 지나면 부당해고로 판단될 수 있고.”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부장은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회사의 이미지와 신뢰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 예외적으로 가능할 수도 있겠지.”
김 대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네. 신뢰와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 예외적으로 해고가 가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며칠 후, 부장은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법과 규정을 철저히 검토한 결과, 회사의 이미지와 고객들, 주주와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 이 과장을 해고하기로 결정했어.”
사무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과거의 그림자가 현재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고민이 가득했다. 이 과장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20년 전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에 연루된 몇 명의 가해자 신상을 유튜버들이 경쟁적으로 공개했습니다. 그중 몇 명은 회사가 해고했고, 나머지 몇 명은 스스로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20년 전 석연치 않게 끝나버린 이 사건은 20년 후에야 노동법적 관점에서 화두를 던집니다.

회사 명예 실추와 사회적 물의

이 분야에서 ‘라면 상무’ 사건이 유명합니다. 대기업 상무 모 이사에 대한 사건입니다. 이 상무는 미국으로 가는 대한항공 비즈니스석 비행 중 ‘밥이 설익었다’, ‘라면이 짜다’ 등 기내 서비스에 대해 여러 차례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상무는 급기야 기내 주방에 들어가 주문한 라면을 주지 않는다며 잡지로 승무원의 얼굴을 때렸습니다. 해당 상무는 해고 무효 소송을 했지만, 법원은 회사 명예 실추를 이유로 본인이 제출한 사임서가 유효하다고 보아 이를 기각했습니다(서울고법 2016나2030096: 대법원 확정).

최근에는 모 방송국 기자가 검찰 핵심 고위 관계자와의 친분을 이용해 강요 미수해 취재윤리를 위반했다는 사건에서, “징계사유는 기자로서 지켜야 할 취재윤리를 위반했다는 것이므로, 형사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고 하여 징계사유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 “취재윤리를 위반한 부적절한 취재 방식이 외부에 알려져 방송국인 피고의 명예가 크게 실추됐다”라는 이유로 해고가 유효하다고 봤습니다(대법원 2023다294838 확정).

일본 드라마 <리갈 하이>의 형사 변호사 코미카도는 묻습니다. “민의라면 뭐든 옳은 겁니까?” 그러나 실체 진실을 가리는 형사 사건이 무죄라고 하더라도, 해고 사건에서는 회사와의 관계상 신뢰관계가 완전히 파탄됐다고 본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이런 사건도 있습니다. 코로나19 자가격리 기간 중 국외여행을 다녀온 단원을 회사 명예 실추를 이유로 해고한 사건에서 “조직의 위신만을 앞세워 그에 대한 응보적 책임과 ‘배제’만을 강조”할 수는 없다고 보아 부당해고로 판단한 사건입니다(서울행법 2020구합85207: 확정). “한 사람을 최종적으로 생업의 장에서 배제하는 해고 조치는 가장 최후의 수단으로서만 고려돼야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위 세 사건은 행위 자체는 상대적으로 경미하거나 무죄 판결이 나왔지만, 사회적 파장과 기업 질서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결론이 엇갈렸습니다.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은 기업 질서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 6일 5일 경북 청도군 한 식당 내부가 텅 비어 있다. 이 식당은 20년 전 경남 밀양지역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가 근무했던 곳으로 알려졌다. 청도군은 누리꾼들이 이 식당이 위반건축물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제기하자, 철거 명령과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연합뉴스

지난 6일 5일 경북 청도군 한 식당 내부가 텅 비어 있다. 이 식당은 20년 전 경남 밀양지역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가 근무했던 곳으로 알려졌다. 청도군은 누리꾼들이 이 식당이 위반건축물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제기하자, 철거 명령과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연합뉴스

입사 전의 오래된 일인데…

공소시효나 소멸시효 제도처럼 징계에도 ‘징계시효’ 제도가 있습니다. 징계시효는 징계사유에 해당하는 어떤 행위에 대해 일정 기간이 지나면 징계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법에는 “구체적 타당성”만큼이나 “법적 안정성”도 중요하기 때문에 생긴 제도입니다.

회사가 징계시효를 규정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회사 사규에 징계시효 규정이 없는 경우에는 징계사유가 발생한 날로부터 상당 기간이 지났다고 하더라도 이를 징계사유로 삼을 수 있습니다. 다만 비위행위가 발생한 날로부터 오랜 기간이 지났다면 사용자가 새삼스럽게 징계를 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 회사는 성범죄로 벌금형을 받은 후 2년이 지나지 않았다면 해고가 가능하지”라는 박 부장의 말처럼 징계시효를 규정하는 회사들은 보통 2년 또는 3년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징계시효가 만료된 경우 비위행위에 대해 나중에 수사나 언론 보도 등이 있더라도 이로 인해 새로운 징계사유가 생긴 것으로 보거나 수사나 언론 보도 등의 시점을 새로운 징계시효의 기산점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판결도 있습니다(2019두40338). 법적 안정성 측면의 판결입니다.

다만 “징계시효가 도과한 비위행위라도 징계양정에 있어 참고자료로 삼을 수는 있다”는 것도 확립된 판례 법리입니다. 이 사건이 입사 전의 일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러나저러나 회사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죽하면, 사적 제재

또 다른 사건입니다. 아청법(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강제추행죄 사건으로 대기업에서 해고된 사건에서 법원은 “아직 어리고 인격 형성조차 제대로 돼 있지 않은 미성년자를 상대로 강제추행을 범한 참가인을 엄벌에 처해야 함은 마땅하다. 그러나 참가인에 대한 엄벌은 독점적인 형벌권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가 형사 절차를 통해 참가인에게 형벌을 부과함으로써 실현돼야 하고, 그 밖에 사적(私的)인 영역에서 사인(私人)이 위와 같은 범죄 행위를 이유로 하여 참가인에게 직접 사적인 제재를 가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사건에서도 참가인이 이 사건 강제추행 행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원고가 참가인과의 근로관계를 종료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서울행법 2014구합72477: 2심 확정). 즉 회사의 해고 자체를 “사적 제재”라고 본 것이고, 범죄 행위가 있더라도 그것만으로는 해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방금 전 사건은 그래도 가해자가 ‘형사 처벌받은’ 경우이고, 밀양 사건은 그게 아니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가해자들이 응당한 처벌을 받지 않고 안심하고 살아가는 세상이 계속되는 한, 해고라는 사적 제재는 쉽게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글을 준비하면서 어느 공기업 인사담당자의 현실적인 대처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일단 근로자를 집으로 보내고··· 노동위원회나 법원으로 판단의 공을 넘기는 게···.”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대표변호사 lawyer_h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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