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시나리오-남의 ‘꿈’이 돼버린 한 남자의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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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대중에게 노출되고, 그것이 초미의 화제로 치달아 가며 서서히 꼼짝달싹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좀더 보편적인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 뿐 아니라 요즘의 세태 풍경과 닮아 보여 씁쓸하다.

[시네프리뷰] 드림 시나리오-남의 ‘꿈’이 돼버린 한 남자의 성찰

타인에게는 평범하다 못해 존재감 제로인 대학교수 폴(니컬러스 케이지 분). 어느 날 온 세계의 관심이 그에게 쏠린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 꿈속에 그가 등장한다는 믿지 못할 증언이 쏟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폴은 남의 꿈에서조차 그냥 잠시 스쳐 갈 뿐 이렇다 할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자기 모습에 실망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생애 처음으로 뜨겁게 주목받는 현실이 싫지만은 않다.

문제는 꿈이란 게 늘 아름답고 행복하진 않다는 것. 언제부턴가 폴이 등장하는 꿈들이 ‘악몽’으로 변해가기 시작하면서 짧았던 그의 행복도 깊은 나락으로 곤두박질친다.

<드림 시나리오>는 노르웨이 감독 크리스토퍼 보글리의 세 번째 장편영화다.

보글리의 장편 세 작품 모두에는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규정하는 개인과 이들의 욕망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대중매체라는 현실이 담겨 있다. 각각 형태와 규모는 다르지만 결국 문제의 밑바탕에는 그릇된 욕망과 가치로 인해 부풀려진 ‘탐욕’이 똬리를 틀고 있다. 유명세 또는 관심의 정점에서 추락하는 주인공들에게 삶의 본질과 가치에 대한 깨달음이란 언제나 회복할 수 없는 뒤늦은 시점에야 힘겹게 도래한다.

주목받는 신예 감독과 제작사의 최신작

세 편의 작품이 모두 비슷한 형식과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번 <드림 시나리오>는 확실한 차이를 보이기도 하다.

앞선 두 편의 영화는 고향인 노르웨이에서 자국어로 만들어졌는데 이번 작품은 미국의 자본과 영어로 만들어졌다. 제작을 맡은 이들의 면모도 작품에 대한 기대를 드높인다.

미국의 제작 배급사 ‘A24’는 요즘 가장 뜨거운 브랜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업성과 작가주의가 공존하는 비범한 작품들이 이 회사의 지붕 아래서 빛을 발했다. 여기에 <유전>, <미드소마> 같은 작품으로 독특한 정신세계를 증명한 아리 에스터 감독까지 자신의 제작사 ‘스퀘어 페그’를 통해 제작에 동참했다. 최근 영화시장의 판도와 분위기를 어느 정도 파악하는 관객에게는 이 정도만으로 기대 요소가 충분하다.

이전 두 편에서는 주인공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꿈이라는 일종의 초자연적인 현상을 통해 사건이 촉발된다는 점도 다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대중에게 노출되고, 그것이 초미의 화제로 치달아 가며 서서히 꼼짝달싹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좀더 보편적인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 뿐 아니라 요즘의 세태 풍경과 닮아 보여 씁쓸하다.

확실히 돌아온 대배우 니컬러스 케이지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배우 니컬러스 케이지다. 이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난데없는 대중의 관심에 휘둘려 천당과 지옥을 오고 가는 평범한 소시민의 역할을 기막히게 소화해 낸다. 실제로 해외 평단의 평가를 둘러보면 여기엔 이견이 없는 분위기로 호평의 대부분이 그의 연기에 대한 극찬이다.

<대부>, <지옥의 묵시록>으로 유명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조카이기도 한 그는 예술 관련 명문가로 알려진 집안의 후광을 피하려고 마블 만화 캐릭터인 ‘루크 케이지’의 이름에서 따온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청춘 코미디 <리치몬드 연애 소동>(1982)의 단역으로 데뷔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주연급으로 급성장한다. 특히 1987년은 그에게 중요한 해가 됐는데 전혀 다른 분위기의 두 작품 <문스트럭>(Moonstruck)과 <아리조나 유괴 사건>(Raising Arizona)을 통해 대체 불가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견고히 확보했다.

비교적 일찌감치 뛰어난 연기자임을 인정받고 승승장구한 그였지만, 2010년 전후에 재정적 어려움과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다작 출연을 하며 작품 관리가 안 되는 바람에 삼류 배우로 전락했다는 혹평을 받았다. 다행히 최근 몇 년 동안 출연한 영화들의 평가가 좋아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고 있다는 평가의 연장 선상에서 이번 <드림 시나리오>는 확실한 방점이 될 것 같다.

제목: 드림 시나리오(Dream Scenario)

제작연도: 2023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102분

장르: 드라마, 코미디

감독: 크리스토퍼 보글리

출연: 니컬러스 케이지, 줄리안 니콜슨, 릴리 버드, 마이클 세라

개봉: 2024년 5월 29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미쳐가는 세상을 추월하는 미친 상상력

크리스토퍼 보글리의 단편영화들/vimeo.com

크리스토퍼 보글리의 단편영화들/vimeo.com

종종 평범한 사람들은 근접할 수 없는 상상력을 보여주는 이야기꾼들을 만나곤 한다. 이런 부류 중 상당수를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하는 영화감독 중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요즘 관객들에게 익숙한 인물을 꼽자면 요르고스 란티모스(<송곳니>·<킬링 디어>·<가여운 것들>), 아리 에스터(<유전>·<미드소마>·<보 이즈 어프레이드>), 일명 ‘다니엘스’로 불리는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콤비(<스위스 아미 맨>·<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이란계 덴마크 감독 알리 아바시(<경계선>·<성스러운 거미>) 등이 떠오른다. 이들의 불편한(?)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크리스토퍼 보글리라는 이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크리스토퍼 보글리는 1985년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서 태어났다. 2011년 단편으로 영화계에 발을 디딘 이후 다수의 단편영화와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다. 시나리오 작가와 연출은 물론 배우로도 활약 중이다.

‘https://vimeo.com/kristofferborgli’에서는 그의 단편영화 일부를 무료로 볼 수 있다.

장편 데뷔작 <드립>(Drib·2017)은 폭력적 영상에 반응하는 대중에 영합해 만든 영상으로 하루아침에 유명 인사가 된 한 청년이 대기업 스포츠음료 광고에 출연하면서 벌어지는 촌극을 냉소적으로 그려 주목받았다.

두 번째 장편영화 <해시태그 시그네>(Sick of Myself·2022)는 한국에 처음 소개된 보글리의 작품이다. 평소 자존감이 약한 시그네는 인성은 밑바닥임에도 예술가로 잘 나가는 남자친구에게 묘한 시기심을 느낀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자신을 망가뜨려서라도 주변의 시선을 독차지하기. 하지만 결과는 우려를 훌쩍 뛰어넘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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