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는 여자, 훔쳐보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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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죽었다>는 규모의 한계에서 오는 아쉬움도 발견되지만, 뚝심 있는 연출과 재능있는 배우들의 열연이 맞물린 흥미로운 작품이다. 감독의 데뷔작임을 고려하면 충분히 차기작을 기대해봄 직하다.

/(주)엔진필름

/(주)엔진필름

레이디 고다이바(Lady Godiva)의 전설에서 유래됐다는 단어 ‘피핑 톰(Peeping Tom)’은 ‘훔쳐보는 남자’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예술 분야 전반에 많은 영감을 끼쳤는데, 영화계에서는 마이클 파월 감독의 <저주의 카메라>(Peeping Tom·1960)가 대표적 작품으로 언급된다. 앨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이창>(Rear Window·1954)이나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침실의 표적>(Body Double·1989), D. J. 카루소 감독의 <디스터비아>(Disturbia·2007)는 비슷한 소재의 영화를 언급할 때 꾸준히 소환되는 작품들이다.

사실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훔쳐보기’라는 본능적 욕구에 편승한다. 다만 대부분 만들어진 이야기를 합법적으로 엿보는 것이기에 도덕적 딜레마에서 벗어날 뿐이다.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구정태(변요한 분)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은 인물이다. 주변을 스쳐 지나는 사람들조차 매사에 꼼꼼히 관찰하기를 즐기는데, 이런 그의 일상에서 최고의 순간은 고객이 맡긴 열쇠를 이용해 몰래 집에 들어가 둘러보는 시간이다.

그러던 어느 날, 미모의 여성 한소라가 정태의 눈에 들어온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허세와 거짓으로 중무장한 소라는 구정태에게 참으로 흥미로운 인물로 보였다. 그가 죽기 전까지는.

현시대를 적절하게 반영한 범죄 스릴러

<그녀가 죽었다>의 영민함 중 하나는 ‘훔쳐보기’를 넘어 좀더 확장된 시선으로 현시대의 반영을 꾀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인공 구정태는 피핑 톰의 전형적인 유형을 대표한다. 액면 그대로 훔쳐보는 것 자체에 집착하는 인물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나름의 규칙을 철저하게 지킨다. 그의 치명적 오류는 이런 규범을 빌미로 분명한 범죄행위에 스스로가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반면 대척점에 서 있어 피해자처럼 보이는 인물 한소라는 자신의 일상을 과시하고 노출하는 ‘보여주기’로 만족을 얻는 인물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에 집착하고, 그것을 위해 일거수일투족을 연출한다. 계산된 행동으로 반응을 유도해 그것을 즐기는 심상 역시 결국 통상적 형태에서 변태한 새로운 ‘훔쳐보기’의 일종이라 하겠다.

영화는 이런 복잡다단한 관계의 실타래와 감정의 회오리를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 안에 적절히 녹여 풀어낸다.

영화는 주인공 구정태가 카메라를 응시해 관객들과 눈을 맞추며 끝난다. 일명 ‘관객 응시’ 결말이다. 근래 들어 빈번하게 볼 수 있는 끝 장면이라 자칫 게으르고 상투적인 기교로 평가될 수 있겠지만,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를 고려하면 어느 정도 용납해줄 만한 선택이다.

배우 신혜선의 새로운 변신과 기대

주연을 맡은 변요한을 비롯해 출연진의 안정적 연기도 매력적이다. 특히 이 작품의 중요 포인트 중 하나는 ‘배우 신혜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내실 있는 이력을 쌓고 있는 신혜선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연기만큼이나 작품을 선택하는 안목도 남다름이 엿보인다.

<결백>(2020·관객수 89만명), <타겟>(2023·42만명), <용감한 시민>(2023·26만명) 등 신혜선의 주연작 3편에서는 중소규모지만 기성 작품과 차별화를 꾀하는 장르영화라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신혜선 스스로가 배우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배역을 선택해 그에 어울리는 최선의 연기를 펼치고 있다는 점이 예사롭지 않다. 이런 일련의 행보가 신혜선이 이후 선택할 작품들을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아쉽게도 신혜선이 주연한 영화 대부분은 흥행면에서는 그리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다만 이 작품들의 개봉 시기가 코로나19를 전후해 영화시장 전체가 타격을 입은 때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규모의 한계에서 오는 아쉬움도 적잖게 발견되는 등 <그녀가 죽었다>는 장단점을 고루 지닌 작품이다. 그럼에도 김세휘 감독의 뚝심 있는 연출과 재능있는 배우들의 열연이 맞물린 흥미로운 작품임은 분명하다. 더불어 연출 데뷔작임을 고려하면 충분히 차기작을 기대해봄 직하다는 점에서 좀더 긍정적 점수를 줄 만한 영화다.

제목: 그녀가 죽었다(Following)

제작연도: 2024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102분

장르: 미스터리/스릴러

감독: 김세휘

출연: 변요한, 신혜선, 이엘, 한소하

개봉: 2024년 5월 15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소격효과와 ‘관객 응시’ 결말

<살인의 추억>의 마지막 장면들 / 싸이더스 제공

<살인의 추억>의 마지막 장면들 / 싸이더스 제공

러시아의 문학이론가인 빅토르 시클롭스키가 1920년대에 개념화한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는 익숙한 사물이나 관념을 낯설게 만들어 새로운 느낌이 들도록 하는 예술적 기법이다.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연출가였던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무대공연에 유사한 이론을 적용했고, 이는 소격효과(疏隔效果) 또는 이화효과(異化效果)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무대 위 가공의 이야기를 관객이 배격게 함으로써 최대한 관찰자의 시각을 유지해 사건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관객 처지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낯설게 하기’의 기법은 영화에서도 꾸준히 활용됐다. 이론적 소격효과의 의도가 충실히 반영된 대표적 작품으로는 프랑스 누벨바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언급되는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비브르 사 비>(1962)나 오스트리아 감독 미카엘 하네케의 <퍼니 게임>(1997) 등이 있다. 각각의 기교는 다르지만, 관객들을 화면 안의 이야기와 최대한 거리를 두게 만듦으로써 작가가 의도한 주제나 정서의 전달을 극대화한 작품들이다.

한국 영화에서 ‘낯설게 하기’를 효율적으로 활용한 감독이라면 단연 봉준호가 먼저 떠오른다.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의 엔딩 크레딧에서 여주인공 현남(배두나 분)은 부서진 사이드미러를 이용해 관객들에게 햇빛을 반사해 비춘다. <살인의 추억>(2003·사진)은 범인의 인상착의가 ‘그냥 평범했다’는 소녀의 말을 듣고 비장한 눈빛으로 관객들을 응시하는 두만(송강호 분)의 얼굴에서 끝을 맺는다.

이후 적잖은 영화에서 결말에 관객을 응시하는 인물의 얼굴이 발견됐다. 하지만 작품의 빈약한 완성도에 더해졌을 때 이런 결말은 안일하고 무책임해 보이는 역효과를 유발한다. 어느새 관습화되고 익숙해져 충격효과가 미미하다는 점도 치명적이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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