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동족의 배신자’로 평생 낙인찍혀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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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악의가 충만한, 그리고 삐뚤어진 광기가 지배하는 나치 치하 독일에서 생존을 위한 스텔라의 몸부림에 초점을 맞춘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감정을 이입하거나 교훈극으로 마무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건조하게 그의 삶을 관조한다.

/㈜미디어소프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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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역사의 순간에도 그런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배신자. 상대편으로서는 협력자다. 영화 <암살>에서 염석진 역을 맡은 이정재는 반민특위 재판정에서 ‘매국노!’라는 청중의 비난을 받자 갑자기 웃통을 벗어 젖히며 말한다. “내 몸에는 일본 놈의 총알이 여섯 개나 박혀 있소.”

여기 한 여인이 있다. 그의 이름은 스텔라 골드슐락. 실존 인물이다. 1922년생인데 1994년까지 살았다. 영화 <스텔라>는 이 여성의 일대기다. 정확하게는 나치 치하에서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동족 유대인들을 게슈타포(비밀경찰)에 밀고한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수년간의 행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평범한 소녀가 밀고자가 되기까지

나치가 집권하기 전, 스텔라는 가수로 미국 브로드웨이에 서는 꿈을 꾸는 평범한 독일 소녀였다. 평범하기보다 비범한 재능을 가졌다. 예술적 끼라고나 할까. 나치가 집권하고, 유대인 차별과 격리가 본격화된 1938년 11월 9일 ‘수정의 밤(kristal nacht)’ 이후 그의 꿈도 바스러졌다. 독일 중산층 가정이었지만 유대인이라는 천형이 그들에게 닥쳤다. 강제연행과 격리를 피해 숨어 사는 삶에 염증을 느낀 스텔라는 거리로 나섰다. 금발 머리에 전형적인 백인 외모인 스텔라는 나치가 강제로 가슴에 붙이게 했던 ‘유대의 별’ 마크만 없다면 히틀러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이라고 주장한 독일민족, 아리안이라고 주장해도 의심할 사람이 없었다. 스텔라뿐이 아니었다. 애당초 히틀러나 나치당의 주장이 허황된 민족이론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에 멀쩡하게 독일 시민으로 살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유대인이라는 출신성분에 기초한 낙인을 받았다. 스텔라는 공민증을 위조하는 유대인 조직과 어울려 그 상황에서도 꽤 짭짤한 돈을 번다. 게슈타포는 이 비밀 유대인 조직을 쫓는다.

결국 유대인 끄나풀에 잡혀 구타와 고문을 받던 스텔라는 게슈타포 조직 두목에게 자신도 유대인 체포조 일을 하겠다고 호기롭게 나선다. 실제 역사 속 실존 인물인 스텔라 골드슐락이 몇 명의 동포 유대인을 밀고해 수용소로 끌려가게 했는지는 정확하게 집계되진 않는다. 최소 600명에서 3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영화는 악의가 충만한, 그리고 삐뚤어진 광기가 지배하는 나치 치하 독일에서 생존을 위한 스텔라의 몸부림에 초점을 맞추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감정을 이입(‘악행도 다 알고 보면 이유가 있다’)하거나 교훈극(‘악인은 반드시 처벌받고 정의는 실현된다’)으로 마무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건조하게 그의 삶을 관조한다. <운디네>(크리스티안 펫졸드 감독·2020)로 2020년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여우주연상)을 받은 폴라 비어가 스텔라 역으로 열연한다.

<반딧불의 묘>와 <스텔라>의 유사한 시퀀스

인상적인 대목은 연합국의 공습으로 황급히 사람들이 피신한 건물의 파티장에 스텔라 일행이 들어가 차려진 술과 음식을 배불리 먹고 나치 군복을 입고 춤추는 장면이다. 밖에는 마치 BGM(배경음악)처럼 폭격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이들은 턴테이블에 올려진 레코드판(LP)을 트는데, 나오는 음악은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이다. 실제 히틀러가 바그너를 좋아했고, 남겨진 기록에 따르면 바그너는 유대인 혐오를 감추지 않았다고 하는데 <지옥의 묵시록>(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1979) 이후 이 바그너의 음악은 제국의 폭력·무고한 양민 학살의 상징이 돼버렸다. 한국에선 10년 가까이 지난 1988년에야 뒤늦게 <지옥의 묵시록>을 개봉했는데, 그건 이 영화가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는 반전 내지는 염전(厭戰) 사상 때문이다. 신통하게도, 일본제국주의를 미화한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한국에서 정식 개봉하지 않은 다카하타 이사오의 애니메이션 영화 <반딧불이의 묘>(1988)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미군의 공습으로 다른 사람들이 도망갈 때 사실상 천둥벌거숭이 상태인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는 신난다. 빈집에 들어가 미처 사람들이 챙겨가지 못한 쌀이나 옷가지 등을 훔쳐 암시장에 팔아 목숨을 부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를 보고 나면 가슴이 먹먹하다. 반백 년 넘게 살아보니 확실히 깨닫는 건 아무리 발버둥 치더라도 벗어날 수 없는, 개인을 짓누르는 역사의 수레바퀴가 지닌 무게는 생각보다 훨씬 무겁다는 것이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정당화할 수 없는, 있는 그대로의 삶을 관조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역시 나이를 먹은 탓일까.

제목: 스텔라(Stella. A Life.)

제작연도: 2024

제작국: 독일

상영시간: 121분

장르: 드라마

감독: 킬리안 리드호프

출연: 폴라 비어, 야니스 니에브외너, 다미안 하르둔그, 요엘 바스만

개봉: 2024년 5월 22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수입: ㈜미디어소프트필름

배급: ㈜뮤제엔터테인먼트

실존 인물 스텔라 골드슐락의 삶은

스텔라 골드슐락 / 위키피디아

스텔라 골드슐락 / 위키피디아

영화에서는 왜 스텔라가 명백한 ‘나치 부역자’임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자세히 묘사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하면 가볍게 처벌받긴 했다. 동서로 나뉜 독일 상황이 어떻게 보면 천운이었다.

영화에는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전쟁이 끝난 1945년 스텔라는 세 번째 결혼으로 딸을 한 명 낳았다. 전쟁 후 베를린시 외곽에 숨어 살던 그는 동독에 진주한 소련군에 체포됐다. 10년 징역형을 받고 강제수용소를 전전하다가 서독으로 넘어왔고, 이번엔 서독에서 두 번째 재판이 열렸다. 스텔라의 밀고로 아우슈비츠에 끌려간 유대인 유족들의 고소로 열린 재판이다. 재판에서 그는 자신에게 제기된 혐의를 대부분 부인했고, 자신은 유대인 학살 음모론의 희생자라며 역사 수정주의에 근거한 변론을 펼치면서 다시 악명을 떨쳤다. 서독에서 받게 된 최종 형량은 10년인데, 이미 동독에서 처벌을 받았으므로 이중 처벌 금지 원칙으로 수감되진 않았다.

비록 재판과정에선 부인했지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가까운 친구를 비롯한 수많은 유대인을 수용소에 끌려가게 한 일에 대한 죄책감은 아마도 그가 죽을 때까지 따라다녔던 모양이다. 영화에서는 1994년 할머니가 된 스텔라가 열린 창밖으로 투신하는데 실제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도 이설(異說)이 존재한다. 투신자살이 아니라 실족에 의한 익사라는 것이다. 만약 후자라면 끝내 그는 자신의 악행에 대해 반성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문득 궁금한 것이, 소련군에 체포됐을 당시 막 낳은 딸이 있었다. 그 딸은 어찌 됐을까. 찾아보니 체포 이후 다른 가정에 입양된 딸(이본느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은 그 후 이스라엘로 건너가 정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 후 오랫동안 어머니가 생존했으므로 만날 기회가 있었을 텐데, 이본느는 어머니와 연을 완전히 끊고 죽을 때까지 연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또한 비극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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