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 과락’에 대한 상상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4·10 총선이 마무리된 지난달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국민의힘이 설치한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4·10 총선이 마무리된 지난달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국민의힘이 설치한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5월 16일부로 ‘탈(脫)정치부’ 인사 발령이 났다. 문재인 정권 말미인 2021년 9월 28일 국민의힘에 배치됐으니, 꼭 2년 7개월 반 만이다. 그사이 ‘윤석열 후보’의 당내 경선 통과와 대통령 당선을 지켜봤고, 지방선거와 국회의원선거까지 치렀다. 기자들의 농담을 빌리면 ‘그랜드 슬램’이다.

그런데도 정치인들 생각하는 방식이나 정치권 돌아가는 생리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이들이 권력 획득에 골몰하고 민생엔 무감하단 건 쉬운 비판이다. 정치권에 몸담아 본 사람은 누구나 의원들의 지독한 스케줄을 안다. 대부분은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당 공식 일정이니 지역구 동네잔치니 온갖 행사에 참석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시간을 쪼개 만나는 사람도 많다. ‘민심’을 모를 수가 있나.

‘그럴 수 있다’는 게 내 잠정 결론이다. 의원들이 만나는 사람은 누구인가. 같은 의원부터 기자, 정부 공무원, 법조인, 기업가까지 힘세고 목소리 큰 사람이 상당수다. 혹은 조직된 소수다. 정부의 행정 조치에 ‘약자’처럼 행동하지만, 의사가 어디 약자인가. 의사협회는 단상에만 서면 취재 경쟁이 벌어지고, 의사 개인 발언도 ‘업계 의견’으로 포장돼 기사화된다. 평일 낮 국회를 찾는 사람은 사회 전체로 보면 여유 있는 편이기 쉽다. 거꾸로 정치인이 찾는 현장도, 언론이 찾기 좋은 시간에 말 잘해줄 사람 섭외해둔 경우가 태반이다.

여야는 바뀌어도 그렇게 ‘적당히’ 만나고 메시지를 포장해 내는 업무 관행은 달라지지 않는다. 목소리 낼 수 있는 사람이 과잉대표되고, 정치권은 그중 진영에 따라 취사선택한다. 시장 등 민생 현장을 찾긴 하지만 악수하느라 바쁘다. 주변부 민심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돈 되고 표 되는 사람들을 더 만난다. 공천 때는 ‘윤핵관’이니 뭐니 힘 있는 쪽 ‘줄서기’에 시간 쓰는 게 우월 전략이다.

‘민심 듣기 노력 평가’가 공천 하한선이라면 어떨까. 음주운전, 성범죄 등 ‘결격’ 사유를 말하는 게 아니다. 여야 모두 당연한 기준을 혁신·쇄신 포장하는 게 실은 우스웠다. 특정 기준에 못 미치면 떨어뜨리는 ‘과락’도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이준석표 PPAT처럼 지식을 보는 시험 말고, 지난 4년간 이력을 보는 것이다. 시민 공청회 개최 또는 참석, 직능단체와의 만남, 당원 교육, 재난·민생 현장 봉사활동…. 완벽은 못 할지언정 ‘만남 노력’을 직간접 평가할 수단은 지금도 있다. 없으면 만들면 된다.

공천이 당장 반년 뒤인데 민심 청취 점수가 모자란 사람을 상상해 본다. “어, 이 의원. 여기 ‘찐명’ 계신대”, “죄송합니다. 시민부터 만나야 해요.” 과락은 면해야 공천 심사를 받을 터, 당대표·대통령이 별건가. 보란 듯 추레한 옷 꺼낼 시간도 없이 현장에 나서는 거다. 자영업자·알바생에게 인사와 잔소리를 번갈아 듣는 거다. 카메라 한 대 없이 묵묵히. “로터리클럽 회원님들과 자리 만들어 뒀다”는 보좌관 말에는 의원이 경악하는 거다. “면접 때 ‘중복 청취’라고 지적하면 어떻게 해!” 정치학자 데이비드 메이휴는 재선이 국회의원의 제일 목표라던데, 그 정도 판돈은 걸려야 겨우 사람 만나는 습관을 교정하지 싶다. 친윤·친명의 공천 과락 기사를 기대해 본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꼬다리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