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은 새로움이 펼쳐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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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미추홀구 ‘키니스 장난감 병원’에서 장난감 박사로 봉사하고 있는 원덕희씨(70)가 고장 난 모빌을 고치고 있다. 채용민 PD

인천 미추홀구 ‘키니스 장난감 병원’에서 장난감 박사로 봉사하고 있는 원덕희씨(70)가 고장 난 모빌을 고치고 있다. 채용민 PD

인천 미추홀구에 있는 ‘키니스 장난감 병원’은 14년째 고장 난 장난감을 무료로 고쳐주고 있다. 다양한 직군에 종사하다 은퇴 후 장난감 박사가 된 사람들이 장난감을 치료해준다. 박사들의 손을 거치면 멈춰 섰던 오리 로봇도 다시 춤을 추고, 마우스가 고장 났던 뽀로로 컴퓨터도 말끔히 고쳐진다.

개인적으로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지난해 은퇴를 한 터라 장난감 박사들의 은퇴 전 직업에 눈길이 갔다. 금속공학과 교수, 조선공학과 교수, 전자업체 연구원. 페인트 회사에서 영업부터 총무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는 한 장난감 박사는 키니스 장난감 병원에서 온라인 접수와 택배 관리 등 행정 업무를 맡고 있다.

그중 원덕희 박사(70)는 공업고등학교 교장 선생이었다. 원 박사의 전문 분야는 모빌이다. 지난해에만 400개가 넘는 모빌을 고쳤다. 원 박사는 몇 개의 모빌이 장난감 병원에 입원했고, 입원한 것 중 자신이 몇 개를 고쳤는지도 매일 기록한다. ‘이걸 굳이 왜 기록하냐’고 물어보니 “못 고치는 것도 서너 개씩 나오는데, 발전시켜볼 여지가 있을까 봐서 그런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매사에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인터뷰가 끝나고 박사들이 함께 쓴 에세이집 <할아버지의 장난감 선물가게>를 다시 읽다가 뜻밖의 글귀를 발견했다.

“지금껏 살면서 제가 하는 일에 미쳐서 몰입했던 적이 있었을까요. 저는 교직 생활을 36년간 했고, 그중에서 담임을 23년 가까이 맡았어요. 그 당시에도 지금처럼 일했느냐 묻는다면, 솔직히 그러지 못했습니다. (중략) 저는 이제야 비로소 불씨를 찾은 거예요. 아랫배가 쑤시고 허리가 저릿저릿하더라도 침대를 박차고 얼른 이곳으로 오고 싶어집니다. 육십이 넘어서야 비로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생동감이 온몸에 절절합니다.”

36년간 교편을 잡았지만 원 박사에게 교직은 꿈이 아니었고, 취직이 어려웠을 때 선택할 수 있는 후보 중 하나였다. 그런 원 박사가 은퇴 후에 자신의 ‘불씨’를 찾은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원 박사는 유튜브에서 키니스 장난감 병원의 다른 박사들을 인터뷰한 영상을 보고 키니스 장난감 병원에 합류했다.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부모의 은퇴에 대해 부쩍 이야기를 많이 한다. “우리 부모님은 블루베리 농장을 시작하셨다”, “우리 아빠는 베이킹을 배우셨다,” “우리 아빠는 밭을 사셨다”, “우리 엄마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

부모의 은퇴에 대해 한참 떠들다 보면 우리는 하나의 질문에 도달한다. “엄마, 아빠는 요즘 대체 뭘 하고 다니시는 걸까?” 응원해드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부모님을 보면 어쩔 수 없이 걱정도 뒤따르기 때문이다. 베이비붐 세대 부모의 거친 은퇴 계획과 그걸 지켜보는 K장녀들이랄까.

그래도 이번에 원 박사의 이야기를 듣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 헤맬 시간과 도전할 기회가 필요한 것은 젊은 청년들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되는 마음 일단 접어두고 어머니, 아버지가 불씨를 찾을 때까지 응원해보기로 했다. 장난감 병원의 김종일 이사장(78)의 말처럼 “뜻하지 않은 새로움이 이 나이에도 광활하게 펼쳐질지 모르니까.”

<박채영 기자 c0c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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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총리 한덕수씨에게 드리는 질문
오늘을 생각한다
전 총리 한덕수씨에게 드리는 질문
관료 출신으로 경제와 통상의 요직을 두루 거쳐 참여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내고, 윤석열 정부에서 다시 국무총리를 지냈으며,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수행하다 21대 대통령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사퇴해 공직에서 물러난 자연인 한덕수씨에게 몇 가지 궁금한 것을 묻는다. 2007년 첫 총리 지명 당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나라당이 제기한 ‘2002~2003년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 재직 시절 외환은행 매각 사태(론스타 게이트) 연루 의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와 관련해 서울중앙지검에 고발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 사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첫 총리직과 주미대사를 역임하고 공직에서 물러난 뒤 2012년부터 3년간 무역협회장으로 재직하며 받은 급여 19억5000만원과 퇴직금 4억원, 2017년부터 5년간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고문으로 재직하며 받은 보수 18억원, 2021년 3월부터 1년간 에스오일 사외이사로 재직하며 받은 보수 8000만원 등 퇴직 전관 자격으로 총합 42억3000만원의 재산을 불린 일에 문제가 없다는 인식은 지금도 그대로인가? 이처럼 전관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다 다시 윤석열 정부의 총리 제안을 수락해 공직으로 복귀한 것 역시 관료로서 부적절한 처신이 아니냐는 문제 인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