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표 사는 게 ‘당연한 일’이 돼선 안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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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호 기자

김찬호 기자

사기만 하면 두 배는 기본. 이런 장사가 가능하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마치 땅 짚고 헤엄치기 같은 돈벌이에 혹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현재 한국 공연·콘서트 시장이 그렇습니다. 돈이 될 만한 공연·콘서트를 골라서 예매한 뒤 되팔기만 해도 큰돈을 벌 수 있습니다. 일부 인기 아이돌 콘서트는 정가의 4~5배를 버는 것이 가능할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공연 티켓 재판매는 암암리에 하고 있을까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일상생활에 파고든 중고거래 앱, 티켓 거래 전용으로 만들어진 인터넷 플랫폼 등을 이용해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습니다. 몇 배의 웃돈을 붙여 팔든 ‘도덕적 비판’의 대상은 될지언정, ‘법으로 처벌’받지는 않습니다. 이른바 ‘매크로’(반복 작업을 자동화하는 컴퓨터 프로그램) 프로그램을 이용해 티켓 예매를 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지난 3월 22일 시행된 개정 공연법은 매크로를 이용한 티켓의 부정판매를 금지했습니다. 공연법 개정 취지를 보면, “암표가 기승을 부려서 법을 개정했다”고 명확히 나옵니다. 그런데 공연법 어디에도 이 ‘암표’가 무엇인지는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습니다. 대체 이 법은 매크로 사용을 금지해서 무엇을 막겠다는 것일까요.

실효성도 문제입니다. 매크로 사용은 금지했는데 실제 예매 과정에서 매크로를 사용했는지 잡아낼 방법이 없습니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판매하는 업자들은 “안심하고 쓰라”며 개정 공연법을 비웃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개정 공연법을 통해 한 가지 확실해진 것이 있습니다. 매크로만 이용하지 않는다면 티켓을 사서 얼마에 되팔든 처벌할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공연 티켓을 되팔아 차익을 얻는 업자들에겐 사실상 ‘면죄부’가 주어진 셈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티스트 소속사와 티켓 예매를 위임받은 업체들이 자체적으로 나섭니다. 이들 역시 티켓을 재판매하는 업자들을 잡을 방법이 없습니다. 대신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 즉 팬들의 행동을 통제합니다. 단순히 “암표를 사지 마세요”가 아닙니다. 신분증을 검사하고, 결제 내역을 확인하고 서로를 감시하게도 합니다. “내가 팬인지, 잠재적 범죄자인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법, 기술, 사회적 인식 어느 측면에서 봐도 현재 한국사회에서 티켓 재판매는 사라지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문제에 대한 접근법을 바꿔볼 필요가 있습니다. 티켓 재판매를 허용하되, 가격 상한 등으로 규제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지금 변화를 고민하지 않으면 한국에서 공연을 보기 위해선 암표를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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