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수를 떠나 석연찮은 대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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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완 기자

정희완 기자

시작은 지난해 12월 추경호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이임식이었다. 이임식 관련 언론 보도가 여럿 나왔다. 보도 사진을 보니, 이임식 현장에 여러 장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특히 추 전 부총리가 ‘달성FC’ 유니폼을 입고 ‘3선 슬리퍼’와 ‘3선 운동화’를 신고 달리는 모습이 담긴 현수막에 오래도록 눈길이 머물렀다(추 전 부총리는 넉 달 뒤 열린 총선에서 대구 달성군에 출마해 3선에 성공했다). 그간 봐왔던 이임식 풍경과는 달랐다. 과한 ‘의례’를 비판하는 기사도 나왔다.

한발 더 나아가 보기로 했다. 기획재정부에 당시 이임식 소요 비용을 정보공개 청구했다. 기재부는 최근 5년 치 이임식 비용을 공개했다. 추 전 부총리의 이임식 비용은 총 495만원이었다. 현수막 제작에 230만원이 들었다. 기재부가 함께 공개한 2022년 부총리(홍남기) 이임식 비용은 17만원이었다.

다른 기관은 어떤지 궁금했다. 취임식 비용도 함께 살펴보기로 했다. 국무총리와 정부조직법상 중앙행정기관 47개, 감사원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에 이·취임식 비용의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도 청구 대상에 포함했다. 이렇게 제출받은 비용을 비교·분석했다. 코로나19 등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추 전 부총리의 이임식 비용이 가장 많았다. 기관마다 이·취임식 비용과 사용된 물품 등은 제각각이었다. 공통점이라면 취임식보다 이임식 비용이 많다는 것이다.

취재 결과 이·취임식과 관련한 특별한 규정은 없었다. 행사의 적절한 규모나 비용이 공론화된 적도 없었다. 각 기관은 기관장의 특별한 지시가 없는 한, 주로 관례를 참고해 행사를 치르는 듯했다. 추 전 부총리의 이임식은 또 하나의 관례로 남게 될까.

유독 눈에 띈 기관은 대검찰청이었다. 대검만 ‘정보 부존재’를 통지했다. 단순히 액수의 문제가 아니었다. 대검 홈페이지에 있는 검찰총장 취임식 사진을 보면, 행사장에 대형 현수막을 사용한 것 외에 별다른 비용이 들지는 않은 것 같았다. 다른 모든 기관이 공개했는데 유독 대검만 자료가 없다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번 대검의 ‘정보 부존재’ 통지와 최근 검찰의 특수활동비 등 예산의 오·남용과 자료 은폐 및 폐기 논란이 겹쳐지는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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