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앞뒤가 뒤바뀐 재정준칙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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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앞 정지 표지판 /연합뉴스

국회의사당 앞 정지 표지판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는 더불어민주당 반대로 법제화를 하지 못하고 있는 재정준칙의 도입을 계속 주장하고 있다. 재정건전성을 지키려면 재정준칙을 도입해야 하는데, 야당의 반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국민에게 호소하는 것은 나름 유효한 선거전략일 수도 있다. 정책효과와 무관하게 재정건전성이라는 용어는 그 자체로 이미 유권자들에게 긍정적으로 수용될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건전성이란 명분을 앞세운 정부·여당의 논리에 맞서 선거에서 싸우면 불리하다는 생각에 민주당도 고민스러울 것이다.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관리하기 위해 재정지출, 재정수지, 국가채무 등에 대해 제약을 부과하는 재정준칙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국경제는 기후변화, 글로벌 공급망 재편, 인플레이션, 양극화 등 중첩된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럼에도 최후의 구원자인 정부의 재정지출을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규범을 도입하는 것이 한국경제에 어떠한 타격을 가져올지에 대한 고려가 부족해 보인다. 재정건전성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지출 측면에서의 규제만을 생각하기보다 지출과 수입 양면에서의 규제를 생각하는 것이 종합적이고 현실적이다.

정부 재정지출의 효과를 재정수지와 국가부채에 미치는 단기적인 효과에 치우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위험하다. 정부지출 확대는 (부채를 통한 재원 조달의 경우에도) 단기적으로 경제를 활성화시킬 뿐 아니라 지출 분야와 (시기가 잘 선택되는 경우) 장기적인 성장률의 회복도 가능하게 해준다. 경제의 전환과정에서 국가만이 할 수 있는 혁신적 역할의 투자, 에너지 전환경로를 결정하고 국가가 먼저 인프라에 투자해 민간의 행태를 환경친화적으로 유도하는 것, 산업의 전환이 필요한 경우에 필요한 인프라를 제공하고 교육과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해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인 인적 자원의 형성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 바로 그런 것들이 정부의 역할이다.

위기일수록 국가는 경제를 위해 국가가 해야 하는, 국가만이 할 수 있는 기능을 감당해줘야 한다. 적정한 수준의 복지제도 정착을 통한 사회적 신뢰관계의 구축, 사회발전의 모멘텀을 제공하고 발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일도 국가가 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다.

재정준칙은 입법부가 행정부 행위에 제약을 주는 것

재정준칙과 관련한 우리 사회의 논의를 살펴보면 뭔가 앞뒤가 바뀐 느낌이 든다. 재정준칙 법제화는 입법부가 예산이나 조세와 관련한 행정부의 결정에 대해 범주를 정해주는 것이다. 국민을 직접적으로 대표하는 입법부가 행정부의 행위에 제약을 주는 것이며, 재정준칙이 법제화되면 행정부는 이 범위 내에서 재정정책을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행정부의 한 부처인 기획재정부가 나서서 국회에 자기들이 일방적으로 옳다고 여기는 방향으로 법제화를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회의 다수를 구성하고 있는 민주당은 기저계층 국민의 경제적 이해에 부합하는, 그리고 그들의 정강에 부합하는 재정정책을 재정준칙에 담는 것이 옳다. 소통과 대화의 정치를 위해 여당과 야당이 합의로 재정준칙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재정준칙의 내용은 우리 경제에게 진실로 필요한 방향으로 규정돼야 한다.

국가 경제 운영의 합리성 측면에서 접근할 때 정부의 가장 큰 지출항목인 보건복지지출과 미래성장을 위한 사회인프라 성격의 공공투자를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재정준칙이 꼭 필요하다면 이 두 가지 종류의 정부지출을 구분해 재정준칙에 담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난 2월 2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 경제 장관회의 겸 물가 관계 장관회의에 참석해 자료를 유심히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월 2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 경제 장관회의 겸 물가 관계 장관회의에 참석해 자료를 유심히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재정준칙 적용의 예외 조항

우선 미래를 위한 사회적 투자, 그리고 긴급하고 예측이 불가능한 중차대한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재정준칙 적용의 예외사항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 후자의 경우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이미 존재한다. 주요 외국의 재정준칙도 이미 이러한 조항을 두고 있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투자에 대한 합의다. 에너지전환 등과 같은 단기간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면서도 그 혜택은 장기간에 발생하는 투자의 경우 그 재원 조달을 증세보다는 국가부채를 통해 이행하는 것이 세대 간 부담을 나누는 적절한 방식이다. 이는 경제적 합리성에도 더 부합한다.

한편 적정한 수준의 복지제도 정착의 경우 재원 조달 수단으로 국가부채를 동원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출이 단기간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때문이다. 경제사회발전의 지속성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사안이므로 적절한 복지 수준이 가능하면서도 재정건전성이 유지되도록 재정준칙에는 국민의 적절한 세 부담 수준을 규정하는 일이 필요하다. 즉 20% 주변에서 움직이고 있는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을 매년 0.25%포인트 정도 인상해나가 20년 후에는 조세부담률이 25%가 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간접세 분야에 치중한 증세로 조세 부담의 소득대비 역진성이 강화되지 않도록 간접세와 직접세의 세수비중을 1 대 1로 유지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러한 재정준칙에 입각하는 경우 정부는 매년 전체적인 세수입을 증가시키는 세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하며, 세수의 증가도 직접세와 간접세 분야에서 고르게 발생하는 세법개정을 제안해야 한다.

적정한 수준의 세금 부담 증가는 국민과 기업이 감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정부지출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경제 전체에 활력이 생긴다. 25%의 조세부담률 수준이 우리 경제를 해롭게 할 정도의 지나친 세 부담은 아니다. 이러한 재정준칙안의 준수를 통해 재정건전성이 대폭 개선되리라는 점 또한 자명하다.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민과 기업은 일정 정도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 적절한 세금 부담 없는 재정건전성 제고는 막힌 길이다.

<김유찬 포용재정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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