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신연의: 조가풍운-마침내 스크린에 구현된 동양 판타지의 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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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중국 이야기인데 일본 전국 시대나 다이묘 시대다운 전개에 영화 <300>이나 <글래디에이터> 같은 그리스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 판타지 영향도 받은 듯하다. 일본판 애니메이션처럼 이 영화도 열혈 지지층을 얻게 될까.

/㈜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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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은나라 시대에 신라의 상수리제도나 일본 에도막부 시대의 참근교대제 같은 게 있었다고? 영화를 보면서 든 의문이다. 공성전을 벌이기 전, 공격하는 측에서 나서 자신이 어느 가문의 누구이며, 자신들의 출병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도 지극히 일본스럽다. 어차피 판타지라고 하지만, 이 영화에서 묘사하는 이야기가 실제로 맞을까.

<봉신연의>. 넷플릭스 드라마나 1990년대 일본에서 각색된 만화 덕분에 요즘엔 꽤 알려진 작품이지만, 원작소설을 읽은 사람이 아마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애니메이션화된 일본 만화 덕분에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작품에 대해 논하는 ‘덕후’들이 꽤 모여 있긴 하다). 그도 그럴 것이 명나라 시대의 작품으로 알려졌지만, 흔히 원·명 시기에 세상에 나온 중국 ‘4대 기서’(<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금병매>. 사람에 따라서는 <금병매> 대신 <홍루몽>을 포함시키기도 한다)에도 끼지 못한 잡서 취급을 받아 왔다.

한글로는 1992년에 <선불영웅전>이라는 이름으로 첫 번역됐는데 현재는 절판된 상태이고,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대부분 일본 만화판만 나온다. 2010년 <홍루몽>까지 포함해 <6대 기서>라는 시리즈 제목으로 번역된 <봉신연의>가 판매되고 있긴 하다.

영화화된 <봉신연의>에 대한 의문

영화의 주인공은 희발이다. 나중에 상나라를 멸망시킨 주나라 무왕(武王)이 되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는 상나라의 수도 조가에서 특수부대 전사다. 성탕이 세운 상나라는 다시 동서남북을 동로, 서기, 남악, 북숭으로 나눠 백후가 지배했다. 백후는 다시 800명의 제후를 거느렸다. 800 제후의 아들들은 상나라 제을왕의 둘째 왕자인 은수의 양자가 돼서 정벌에 동원되는 특수부대원들이었다. 말이 양자지, 신라의 상수리제도나 고려 초기의 기인제도처럼 일종의 인질개념이다. 만약 제후들이 반심을 품으면 아들들이 죽음을 당하게 된다는 설정이다.

영화의 시작 장면. 상나라에 공물 상납을 거부하는 소호국을 이 특수부대들이 공격한다. 특수부대원이던 소호국 왕의 둘째 아들 소전효가 앞으로 나와 자신의 신분을 밝히며 반심을 품지 말라고 호소하나 돌아오는 것은 한 무더기의 화살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소전효의 시체를 뒤로하고 특수부대들이 소호의 성을 공격한다. 도피하던 소호국의 딸 달기를 생포한 이 특수부대들은 즉결처형을 하려 했으나 때마침 나타난 자신들의 보스 은수에게 바친다. 문제는 달기였다. 이미 자신의 비녀로 목숨을 끊었으나, 격투 중이었던 장군 은수의 피를 마신 은여우가 깨어나며 달기 안으로 들어간다. 살아난 달기는 여우혼이 씌인 채 제을왕과 은수의 형인 은교를 잇따라 죽이고 은수를 왕으로 만든다.

쓰다 보니 영화의 핵심소재인 봉신방(封神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은수의 왕위 찬탈로 천벌이 내려지고 곤륜산의 12천존은 인간계 ‘천하의 주인’에게 봉신방을 건네 세상을 다스리게 하려고 한다. 용의 입에서 나온 봉신방은 그냥 뼈다귀 내지는 막대기처럼 생겼는데 이 마법의 지팡이는 죽은 자-정확히는 선인(仙人)-의 원기를 흡수해 봉신방의 주인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능력을 준다.

원작소설의 설정에서는 모두 365명의 혼백이 신(神)으로 봉(封)해진다. 여기에 역사를 바탕으로 마음대로 이야기를 만들어 덧붙인 소설이라는 뜻의 연의(演義)를 덧붙여 제목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번에 개봉하는 <봉신연의: 조가풍운>편에서 이 봉신방에 봉해지는 건 1명이다. 봉신방을 가지고 은수를 찾아온 강자아-우리에겐 그의 별명인 태공망(太公望), 강태공(姜太公)이 더 유명하다- 앞에서 시험적으로 옆에 서 있던 한 젊은 신하를 찔러 죽여 얻은 혼백뿐, 아직 364명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도대체 후속편을 몇 편이나 만들 계획이길래? (총 3부작 예정이라고 한다.)

서양 판타지에 대한 옥시덴탈리즘

앞서 기원전 중국 이야기인데 일본 전국 시대 내지는 다이묘 시대다운 전개에 대한 의문을 거론했다. 영화에 명백히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이는 또 다른 작품들이 있다. 프랭크 밀러 원작의 코믹스를 영화화한 <300>(잭 스나이더 감독·2006)이나 <글래디에이터>(리들리 스콧 감독·2000)와 같은 그리스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 판타지 영화들이다. 각 백후와 제후들의 아들로서 상나라 ‘제국’의 양자로 이뤄진 엘리트 부대는 갑옷과 병기로 무장한 스파르타와 로마 시대의 전사들을 연상시킨다. CG를 통해 마침내 구현한 중국인들 망탈리테에 기반한 특유의 옥시덴탈리즘을 보는 느낌이랄까. 영화에는 수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한다. 거의 읽기도 전에 자막으로 살짝 보여주고 휙휙 지나가는 식이어서 난삽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래도 큰 이야기 줄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일본판 애니메이션처럼 이 영화도 열혈 지지층을 얻게 될까. 거기까진 잘 모르겠다.

제목: 봉신연의: 조가풍운(Creation Of The Gods I: Kingdom Of Strom)

제작연도: 2024

제작국: 중국

상영시간: 148분

장르: 판타지, 액션

감독: 우얼샨

출연: 크리스 필립스, 우적, 나란, 이설건

개봉: 2024년 1월 24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수입: ㈜풍경소리

배급: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CG 기술 덕분에 묘사 가능해진 원작소설의 ‘스펙터클’

<봉신연의>는 이미 중화권에서 여러 차례 드라마화됐고, 일본에서 각색한 만화/애니메이션이 있지만, 원작을 제대로 만들겠다는 야심은 아마 동북아에서 콘텐츠 제작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품었을 법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나라와 주나라 교체기라는 시대적 배경 아래 당대의 신선과 요괴들이 총출동해 싸우는, 말 그대로 괴력난신(怪力亂神) 쟁투를 담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피터 잭슨 감독이 툴킨의 판타지 대작 <반지의 제왕>을 영화화한 것처럼 이 동양풍 판타지의 원류에 해당하는 작품을 영화화할 욕심은 영화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봄 직했다. 그리고 꿈을 이뤘다. 이 영화, 한눈에 봐도 돈을 쏟아부었다. 특수촬영 기술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 주류를 이뤘던 20세기 중후반에는 꿈도 못 꿨을 장대한 스펙터클을 CG 기술을 통해 완성했다.

/㈜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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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CG의 ‘퀄리티’는 이미 20년 전 피터 잭슨이 <반지의 제왕>을 제작·감독하며 달성한 수준을 따라잡지 못한다. 이를테면 달기에 빙의하는 천년 여우가 지붕 위를 폴짝폴짝 뛰어가는 장면 같은 건 너무 ‘싸구려’ 티가 난다(이건 그동안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온 기술 덕분에 필자 같은 관객의 보는 눈이 높아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주목할 만한 인물은 결국 상나라를 파멸로 이끄는 팜므파탈 캐릭터인 달기다. 주왕이 주지육림에 빠지게 한 게 은여우의 혼이 씌인 달기다. 관련돼 인터넷에 정리된 자료를 보면 죽음을 당한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의도적으로 주왕을 타락시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꽤 있는 모양이다. 과거 드라마 등에서 그런 입장을 취한 해석(“달기는 죄가 없다!”)이 있었던 모양인데, 이번 영화판에서 다르게 해석할 여지는 그리 많지 않다. 영화에서는 상당히 이국적인 외모의 인물인지라 원작에서 그의 출신지로 돼 있는 기주(冀州)가 막연히 중국 서역쯤에 있는 나라일까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기주는 오늘날 허베이성 중남부, 산둥성 서부, 허난성 북부쯤에 있는 나라로, 중국 내륙이다.

영화의 보도자료를 뒤져봐도 달기 역을 맡은 배우에 대한 정보는 ‘나란’이라는 이름 이외에 특별한 정보가 없다. 실제 인물이 아니라 CG로 만들어낸 캐릭터인가 싶었는데, 좀더 찾아보니 러시아 울란-우데에서 1997년 출생한 여성(사진)이라고 나온다. 원래 이름은 나라나 에르디네예바(Нарана Эрдынеева)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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