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SEC의 현물 ETF 승인과 비트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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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지난 1월 10일(현지시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비트코인 현물 ETF 상품 거래를 승인했다. 어떤 의미에서 ‘다크 월드에서만 존재’하던 비트코인이 드디어 명실상부한 금융규제를 받는 금융상품이 됐다고 볼 수도 있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물론 비트코인 자체가 다양한 전문 거래소를 통해 이미 거래 중이어서 별반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고, 비트코인과 비트코인 현물 ETF는 서로 약간 구별되는 상품이어서 아직 비트코인 그 자체가 금융상품으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 관련 금융상품이 명시적인 금융규제의 틀 속에서 둥지를 틀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이번 승인의 역사성을 반영이라도 하듯 비트코인의 가치도 하늘을 날았다. SEC의 승인 발표 이후 비트코인은 한때 대략 4만8900달러 수준까지 급등했다. 그러나 하늘을 나는 기쁨은 잠시였다. 그후 비트코인은 다시 하락해 현재는 뉴스 발표 이전과 거의 유사한 수준인 4만3000달러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비트코인의 지위 격상이 그 거래가격을 획기적이고 장기적으로 높인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언제든지 변동할 수 있지만) 그렇다면 이번 뉴스와 관련한 다른 질문은 ‘과연 비트코인의 제도권 교두보 확보가 향후 비트코인이 명실상부한 화폐로 기능할 가능성을 높일 것인가?’와 ‘만일 비트코인이 화폐로 기능하게 된다면 그 경제적 효과는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가?’ 등이 될 수 있다. 이하에서는 이런 측면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이 글은 비트코인 투자 전략을 안내하는 글이 아니다(필자는 돈 버는 투자 측면에는 ‘젬병’이다). 즉 이 글을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비트코인 투자로 돈 버는 방법에 더 통달하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이 글에서 비트코인은 ‘바다이야기와 같은 사행성 도박 상품’이라는 일부의 시각을 대변할 생각도 없다. 이하에서는 비트코인이 다른 가상자산과는 달리 ‘가상화폐’ 또는 ‘암호화폐’를 지향하는 일종의 화폐, 또는 화폐 대체물이라는 측면에서 비트코인의 지위 격상이 과연 비트코인의 화폐성 또는 일반적 통용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비트코인의 화폐적 효과를 알아볼 때 흥미롭게 참고할 만한 나라가 있다. 중남미 국가인 엘살바도르다. 엘살바도르는 2021년 9월 7일, 전 세계 국가 중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화(법정 통화)로 채택했다. 즉 적어도 엘살바도르에 한정하는 한, 비트코인은 가상자산이 누릴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제도적 인정을 획득한 것이다. 따라서 엘살바도르의 경험은 비트코인이 과연 화폐로 기능할 수 있는가를 가늠해보는 하나의 실험 사례가 될 수 있다.

엘살바도르는 매우 독특한 화폐적 실험을 한 나라로 유명하다. 이 나라는 과거 콜론(colon)이라는 자체적인 화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가, 2001년 1월부터 미국 달러화에 그 가치를 고정하는 고정환율제를 채택했다. 그러다가 통화정책의 주권을 상실하고 ‘평가절하에 의한 수출가격 경쟁력 확보’라는 정책수단이 사용 불가능해졌다.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2021년 들어 나입 부켈레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비트코인을 법화로 도입하는 획기적인(?) 선택을 하게 됐다.

그럼 그 이후 비트코인은 이 나라 경제 거래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교환의 매개물로 기능했을까? 그리고 엘살바도르 경제는 훨씬 나아졌을까?

애석하게도 위 두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는) 모두 ‘아니다’이다. 우선 비트코인을 경제거래에 사용하는 비중인 소위 거래 침투율 수치를 보자. 제도 변화 초기인 2022년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그 비중은 24.4%였는데, 2023년의 설문조사에서는 그 비중이 12%로 오히려 하락했다. 즉 초기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비트코인을 실제 거래에서 화폐처럼 사용하는 빈도가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비트코인 가치의 변동성이 크고, 엘살바도르 국민의 정보기기 사용 능력이 높지 않을 수 있고, 인터넷망이 제한적일 수도 있다. 이런 요인들은 그러나 초기 침투율이 낮은 것을 설명하는 요인이 될 수는 있어도 ‘시간이 갈수록 침투율이 하락하는 현상’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아마도 엘살바도르에서 비트코인은 인터넷 활용능력이 상대적으로 출중한 젊은 세대나, 투자 여력이 있고 정보가 풍부한 부유층의 전유물로 굳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번 SEC의 승인 결정을 계기로 비트코인의 지위가 격상되고 비트코인에 대한 수요가 증가해 그 가치가 장기적으로 상승 기조에 놓이게 되면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과연 그럴까? 만일 비트코인 가치가 (상당한 진폭의 변동성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상승추세가 확연하다면 비트코인은 화폐로 정착하게 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최소한 이것은 경제학이 거의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다.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는 소위 ‘그레셤의 법칙’ 때문이다.

편의상 달러화와 비트코인만 존재한다고 하고, 달러화에 비해 비트코인은 향후 뚜렷한 가치상승 추세를 보인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독자들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후 어떤 지급수단을 써 대금을 지급할 것인가? 앞으로 가치가 오를 것으로 기대되는 비트코인일까, 아니면 상대적으로 가치상승 가능성이 없는 달러화일까? 당연히 달러화일 것이다. 가치가 오를 비트코인은 ‘금이야 옥이야’ 하면서 지갑 속에 고이 모셔둘 것이다.

결국 교환의 매개물로 기능하는 것은 이 사례에서의 달러화처럼 상대적으로 가치가 뒤떨어지는 자산, 즉 악화인 것이다. 이것이 그레셤의 법칙이고 이미 복본위제 운영의 역사적 경험에서 확인된 바다. 악화였던 금화가 양화였던 은화를 제치고 주도적인 화폐가 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비트코인의 가치가 달러화 표시로 상승할 것이 확연하다면 비트코인의 화폐적 용도는 더욱더 취약해질 것이다.

그럼 비트코인에서 남는 부분은 무엇인가? 투자대상으로서의 비트코인이다. 비트코인은 매우 큰 변동성을 가지고 있는 위험한 투자자산이다. 따라서 여기에 투자하면 돈을 벌 수도 있지만 돈을 잃을 수도 있다. 이런 쿨한 마음으로 이번 ETF 거래 승인 뉴스를 접하는 것이 그래도 가장 적절한 태도가 아닐까 한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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