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문제는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 경제의 가장 중요한 현안이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주택담보대출이나 전세자금대출 등 부동산 관련 대출이 있다. 따라서 가계부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부동산 대출의 근저에 있는 부동산 정책을 정상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많은 국민의 생활과 직결되고, 모두가 한 마디씩 거들고 싶은 ‘전문가’이며, 무엇보다 부동산 정책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치적 갈등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 문제를 살펴보기로 한다.
IMF “한국의 가계부채는 우려 수준”
가계부채가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될 때마다 주무 부처인 금융위원회가 내놓는 답변은 ‘가계부채가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한국의 가계부채는 우려스러운 수준”이라고 평가하고, IMF의 세계 부채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부채 증가율이 비교 가능한 26개국 중 최고를 기록한다고 나오는 것일까?
가계부채가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표현의 정확한 뜻은 알기 어렵다. 다만 개인적 추측으로는 아마도 ‘(채권자인) 금융기관은 그래도 안전하다’는 뜻이 아닐까 한다. 예를 들어 만기 일시 상환형을 원리금 분할 상환형으로 바꾸는 것은 금융기관이 이자만 받지 않고 원금도 일부 받기 때문에 장삿속은 조금 떨어지지만, 대출 상환 가능성 측면에서는 더욱 안정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주택담보대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담보비율이 충분하고 채권의 우선순위도 대개 선순위이기 때문에 채권 회수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채권자 입장을 반영한 시각이다.
그렇다면 IMF의 시각은 어디서 연유한 것인가? 우려 표명이 들어간 문장의 앞부분을 보면 어렴풋이 해답이 있다. 가계부채의 수준이 “가처분 소득 대비 평균 160%”라는 점이다. 즉 민간의 상환 능력 자체가 한계 상황 가까이 내몰렸다는 뜻이다.
여기서 일부 독자는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아니, 소득 대비 부채가 많아서 빚을 못 갚을 가능성이 큰 게 뭐가 문제냐? 가계부채 대부분은 엄연히 담보가 있는 주택담보대출이고, 은행들은 선순위 저당권 설정해 두었으니 그냥 집을 경매 처분해서 채권 회수하면 되지 않느냐? IMF가 우리나라 부채가 모두 무담보 신용 부채인 줄 착각한 것 아니냐?’
이런 반론이 완전히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개별 금융기관의 입장에서 보면 주택담보대출은 ‘땅 짚고 헤엄치면서 돈 버는 장사’다. 가계가 원리금을 이상 없이 상환하면 돈장사해서 좋고, 설사 못 갚더라도 주택을 경매로 넘겨 원리금을 회수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모든 주택이 동시에 경매 시장에 나오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담보 물건이 경매를 통해 정상적으로 환가 처분되지 않는다면 금융기관이 담보권 실행으로 확보한 주택은 순식간에 복덩어리가 아니라 골칫덩어리로 변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우리 경제의 진정한 위험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그것은 ‘우리 경제가 부동산 때문에 이자율을 정상적으로 올리지 못하는 족쇄를 차고 있다’는 점이다. 그 족쇄가 우리 경제 정책을 관리 가능하지 않은 방향으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이다.
고금리는 부동산 가격을 뿌리째 뒤흔드는 핵폭탄 같은 것이다. 우리는 그 위력의 일단을 작년 말부터 올 초까지 생생하게 경험했다. 그런데 금융기관의 안위가 오로지 부동산 가격에 매달려 있는 경우, 금리정책을 관장하는 한국은행이 정상적으로 금리 수준을 조절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한국은행은 미국 연준이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하고 한·미 간 금리 격차가 사상 최대로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기준 금리를 제대로 올리지 못했다.
그런 정책은 겉으로는 무해한 것처럼 보여도 여러 부작용을 낳았다. 우선 원화 환율이 대폭 절하됐다. 지난 2월 초 1220원 수준이던 원화의 대미 달러화 환율은 몇 차례 등락을 거친 후 11월 초 1350원 수준까지 절하되었다. 약 10% 가까이 절하된 것이다. 이는 가뜩이나 등락이 심했던 수입재의 국내 물가를 끌어올려 궁극적으로 국내 물가 불안 요인으로 작용했다.
금융시장도 왜곡되기는 매한가지다. 금리 인상을 통해 정상적으로 대출 증가를 통제할 수 없게 되니, 금융위는 수량 통제를 하기 시작했다. 대출을 풀어주는 온탕 정책에는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대출을 억제하는 냉탕 정책에는 대출금리 인상에 따라 은행의 이자 수입이 증가했다. 그런 은행을 바라보는 국민적 시선이 곱지 않자 이번에는 대규모의 사회 공헌을 압박하고 있다.
정부는 왜 부동산을 애지중지하는 걸까?
그럼 왜 정부는 이렇게 부동산을 애지중지하는 것일까? 단순히 금융기관의 안위가 걱정되어서일까?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최근에 고지서가 발부되기 시작한 종부세의 경우를 보자. 윤석열 정부는 공시지가 현실화율 로드맵을 포기하고 종부세 부담을 작년 수준으로 동결했다. 금융시장의 안정성과 직접적 연관이 적은 재정수입 측면에서도 ‘부동산 지키기’는 예외 없이 강조되고 있다. 이쯤 되면 부동산 지키기에 대한 다른 이유를 찾아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이유는 비경제적일 수밖에 없다.
부동산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구분하는 분수령이자, 노동 소득자와 자본 소득자를 구분하는 갈림길이다(물론 부자 중에 금융자산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노동 소득자 중에도 유주택자가 있을 수 있으나 크게 보면 이렇다는 말이다).
그런데 또 다른 단층이 있다. 연령별 단층이다. 청년들은 주로 무주택자고, 유주택자들은 대부분 장년이나 노년층이라는 점이다. 이 단층은 정치적 측면에서 중대한 함의를 갖는다. 한국 정치에서 55세 이상 유권자는 55세 미만 유권자보다 추세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하다. 그렇다면 보수 정치권에서는 자신들의 지지층인 노년층의 경제적 기반과 결정적으로 연관된 부동산 문제에 대해 자유스러울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정책적 선택의 그늘은 청년층의 좌절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집을 마련하기 어려우면 결혼도, 출산도 계획하기 어렵다. 그것이 청년 문제의 핵심이다. 이런 청년층의 좌절은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과 활력을 좀먹고 있다. 흉악 범죄와 마약의 만연과도 무관하지 않다.
결국 부동산 문제는 현재 단순히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근본적 모순의 핵심이라고 봐야 한다. 이 문제를 개혁하지 않고서 우리 사회의 활력을 기대할 수는 없다. 마치 토지개혁이 그러했듯이.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