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즈-좌절마저 아름다운 청춘 ‘인생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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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드릭 클라피쉬 감독은 흔히 있는 소소한 사건과 문제를 다루지만, 흥미로운 전개와 비범한 인물들을 통해 영화적 재미를 끌어낸다. 신작 <라이즈>는 전보다 훨씬 깊어진 듯하다. 따뜻하고 충만한 삶의 에너지로 우리 모두를 응원하는 느낌이다.

/㈜퍼스트런

/㈜퍼스트런

국내 대중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세드릭 클라피쉬 감독은 오랜 활동과 작품목록으로 신뢰를 쌓고 있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중견 감독 중 한명이다.

1992년 <빙산의 일각들>(1992)로 데뷔한 그는 가칭 ‘청춘 연애 3부작’으로 묶을 수 있는 <스페니쉬 아파트먼트>(2002), <사랑은 타이밍!>(2005), <차이니즈 퍼즐>(2013)로 인지도를 높이며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다져왔다.

이후에도 연출가와 제작자를 병행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2017), <썸원 썸웨어>(2019) 등 비교적 최근 작품까지도 꾸준히 개봉되고 있을 만큼 국내에서도 단단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일상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소소한 사건과 문제를 다룬다. 하지만 좀처럼 눈을 뗄 수 없는 흥미로운 전개와 비범한 인물들을 통해 영화적 재미를 끌어낸다. 무엇보다 종국에 이르러 변함없이 드러나는 삶을 바라보는 따뜻하고 애정 어린 시선은 관객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를 전한다.

신작 <라이즈> 역시 이전까지 그가 보여줬던 장기와 미덕이 변함없이 목격된다. 전보다 훨씬 깊어지고 성숙해진 듯하다. 따뜻하고 충만한 삶의 에너지로 우리 모두를 응원하고 있는 느낌이다.

고전적 문법과 현대적 감성의 조화

타고난 재능과 남다른 열정으로 승승장구의 길을 걷고 있는 젊은 발레리나 엘리즈(마리옹 바르보 분)의 삶은 완벽해 보였다. 그러나 무대에 오르기 직전 목격하게 된 어처구니없는 장면에 충격을 받고 이로 인한 실수로 다리를 다치고 만다.

의사는 어쩌면 무용을 그만둬야 할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내린다. 어려서부터 춤추는 것이 좋아 한 길만 달려온 엘리즈는 큰 실의에 빠진다. 이 지경에 이르자 설상가상으로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크고 작은 주변의 관계와 문제들까지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과연 엘리즈는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영화 <라이즈>는 표면적으로 전도유망한 발레리나의 사적 고뇌와 갈등을 그리고 있지만, 그의 방황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자신에게 던져보았을 본질적 질문을 되새기게 한다. 절박한 상황을 통해 돌아보게 되는 행복의 정의는 삶의 고귀한 가치와 의미로까지 확장된다.

감독은 자칫 상투적이고 진부할 수 있는 주제와 정서를 고전적 방식의 형식과 문법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세련된 감성과 화면으로 유쾌하게 풀어낸다.

영화 속에 상반되듯 배치되지만, 결국 공통분모를 공유해 가는 발레와 현대무용이란 소재는 영화의 일부 주제를 노골적으로 상징하는 여러 장치 중 하나다.

현대 프랑스 상업영화의 현주소

더욱 원숙해진 감독의 연출에 버금가게 흥미로운 인물들과 배우들의 연기도 사랑스럽다. 특히 주인공 엘리즈를 맡은 마리옹 바르보의 이지적이지만 풋풋한 외모와 섬세한 연기는 강렬하게 다가온다.

1991년생으로 실제 발레리나와 현대무용가로 활동 중인 그에게 극 중 엘리즈라는 인물은 단순한 극 중 인물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았을까 싶다. 이번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 능력까지 확실히 각인시킨 그는 지난해 세자르상과 뤼미에르상의 신인여우상 후보로 지명됐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또 다른 프랑스 영화 <도그맨>의 시사가 있었다. 국내 관객들에게는 꽤 친숙한 뤽 베송 감독의 신작이다. <라이즈>보다 한 주 뒤에 개봉한다.

두 사람 모두 할리우드 상업영화 시스템을 적극 수혈한 동년배로서 프랑스 상업영화의 중추적 거물로 대접받고 있다. 그러나 작품의 양태는 전혀 다른 극단적인 영역에서 이어져 꽤 흥미롭다. 오랜 세월 동안 꾸준히 활동을 이어온 만큼 각자의 영역에서 발산하는 기교와 노련함은 깊어졌지만, 그것으로 만들어 내는 감흥과 의미는 장르가 갖는 이질성만큼이나 큰 거리가 있어 보인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는 2편의 영화로 한국 관객들은 모처럼 프랑스 상업영화의 지금을 제대로 비교하며 만끽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됐다.

제목: 라이즈(Rise)

제작연도: 2022

제작국: 프랑스, 벨기에

상영시간: 117분

장르: 드라마

감독: 세드릭 클라피쉬

출연: 마리옹 바르보, 메디 바키, 호페쉬 쉑터, 프랑수와 시빌

개봉: 2024년 1월 17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뤽 베송 감독 5년 만의 신작 <도그맨>

/㈜엣나인필름

/㈜엣나인필름

국내에도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뤽 베송 감독은 현대 프랑스 영화뿐 아니라 세계 영화산업의 판도에도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초기작들이 일으킨 영향력은 막강하다. <니키타>, <그랑블루>, <레옹> 등의 작품은 영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제목과 이미지가 친숙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산업적 측면에서의 평가이고, 그의 작품들이 갖는 완성도와 가치에 대한 의문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그는 데뷔 초기부터 고전적인 프랑스 영화의 전통 또는 구태를 향한 거부의 목소리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는 새로움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됐다. 잠시 ‘누벨 이마주’라는 분류 안에서 진지하게 평가받기도 했지만, 이전의 ‘누벨 바그’나 이후의 ‘도그마 95’ 같은 탐구적 작가주의 성향과는 노선을 달리하는 철저히 상업적 가치에서의, 할리우드에 대한 동경이었다.

뤽 베송이 프랑스 영화산업에 중요한 원동력이 된 것은 사실이다. <택시> 시리즈나 <테이큰> 시리즈처럼 그가 제작한 영화들도 범 세계적인 흥행작들 사이에 이름을 올렸다.

그의 작품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 5년 만의 연출작인 <도그맨>(사진) 역시 영어로 제작했을 뿐만 아니라 배경 자체도 미국 뉴저지로 설정했다.

어린 시절 학대로 개와의 소통을 유일한 위안으로 살아가는 한 의문스러운 남자의 과거를 뒤쫓는 이야기다. 소재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듯이 이전까지 그가 보여줬던 단순 오락영화와는 차별을 꾀했다. 드라마에 좀더 힘에 실은 작품이다. 감독 스스로가 온전히 자신의 영화 인생을 집대성한 작품이라고 말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단다.

나이를 먹으며 후덕해진 그의 인상만큼이나 관객들도 긍정적인 평가를 할지 궁금하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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