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관객 크리티컬? 관객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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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뮤지컬 <수레바퀴 아래서>

뮤지컬 <수레바퀴 아래서> 토크 콘서트 / 이주영 제공

뮤지컬 <수레바퀴 아래서> 토크 콘서트 / 이주영 제공

관객과 공연은 적대적 공생관계인가? 아니면 친화적 상생관계인가? ‘관객 크리티컬’(관극에 방해되는 행위를 일컫는 신조어·이하 ‘관크’)과 ‘시체관극’(시체처럼 움직이지 않고 주위에 방해되지 않는 관극 문화를 일컫는 신조어) 문제가 또다시 화두가 되고 있다. 공연 성수기인 연말연시라 관크와 시체관극의 고충을 토로하는 경험담도 SNS에 자주 올라온다.

앞 좌석 관객이 허리를 숙여 시야가 가려진다거나 공연 중 휴대전화를 켜 방해가 된다는 정도의 관크 비판은 그래도 이해되는 수준이다. 바스락거리는 외투 소리나 몸 상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새어 나오는 숨소리마저 참기 어렵다는 등의 관크 비판을 보면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가족과 큰맘 먹고 좋은 공연을 보러왔는데 마음만 상했다는 글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아 필자 역시 등을 반드시 객석 등받이에 붙이고 움직일 때 소리가 나는 외투는 가급적 피한다. 소음 유발 장식이 있는 가방 등은 사물함에 맡긴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선문답을 나누는 고고(신구)와 디디(박근형) / 파크컴퍼니 제공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선문답을 나누는 고고(신구)와 디디(박근형) / 파크컴퍼니 제공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오경택 연출)의 객석 분위기는 삼엄한 공연 예절에 대한 우려와 달리 시작부터 화기애애했다. 87세 배우 신구가 분한 에스트라공(이하 ‘고고’)이 발을 절뚝이며 신발을 벗으려고 무진 애를 쓰자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껑충한’ 83세 배우 박근형의 블라디미르(이하 ‘디디’)와 선문답을 주고받으면서 발을 조인 신발에서 탈출한 고고는 맨발이 돼서야 숨을 몰아쉰다. 주머니를 뒤져 작은 순무를 건네니 맛있게 먹으며 떠나자는 도도에게 디디는 “고도를 기다려야지”라며 붙잡는다. 두 노배우의 생활 연기 같은 ‘티키타카’가 익숙하고 천진해 객석 여기저기서 또다시 웃음이 밀려온다.

부조리극(불합리 속에서 존재와 소통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던지는 실존주의 극)의 대명사로 알려진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난해하다. 같은 대사가 무한 반복되고 1막과 2막은 틀린 그림 찾기처럼 비슷한데 다르다. 기승전결이 있어 자연스레 몰입되는 이야기 구조도 아니다. 상황 중심의 분절적 서사다. 폭력적인 지주 포조에게 묶여 트렁크와 짐을 들고 끌려다니는 럭키로 분한 81세 박정자 배우는 700단어에 이르는 맥락 없는 대사를 순식간에 토해내기도 한다. 이해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가족단위 관객들과 청년 및 중장년 등 전 연령층에 인기다. 관크나 시체관극을 논할 겨를도 없이 객석 분위기 또한 활달하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혼돈에 빠진 고고(신구), 디디(박근형), 럭키(박정자) / 파크컴퍼니 제공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혼돈에 빠진 고고(신구), 디디(박근형), 럭키(박정자) / 파크컴퍼니 제공

대사의 행간보다는 출연진들이 주고받는 호흡과 표정, 그들이 놓여 있는 상황과 무대예술에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작품임을 관객들도 알아차린 듯하다. 극의 흐름과 출연진들의 호흡에 심신을 맡기다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명확히 형언하기는 어려워도 캐릭터들끼리의 소통하는 과정과 대사 중 관객 각자의 마음에 들어오는 단어들이 모여 동시대의 문제의식과 버무려진다. 하염없이 고도를 기다리는 고고와 디디의 신선 같은 이미지, 폭력적인 지주 포조와 노예 럭키와의 관계 등은 마치 생의 한가운데를 관통한 혼돈 같다. 마지막에 고도의 말을 전하는 소년이 등장하고, 고도가 오지 않으면 나무에 목을 매자는 고고와 디디의 태연스러운 한마디에 관객들은 가슴이 먹먹해진다.

앙상하고 기괴한 나무 한 그루와 커다란 달이 떠 있는 무대 디자인은 이번 작품에서 다르게 와닿는다. 사후의 세계, 혹은 신들의 공간을 방불케 한다. 60년 넘게 연기 내공을 쌓은 노배우들의 체화된 캐릭터 해석이 이들이 반복적으로 주고받는 선문답 속에서 삶의 진리를 일깨운다. 일행과 소곤거리며 감탄사를 연발하거나 장면에 맞춰 박수와 폭소, 탄식으로 이어지는 관객들 반응은 이 작품에 입체감과 생기를 불어넣는다. 다른 공연이라면 소음 유발자로 관크 논란에 휩싸일지 모르나 이 공연은 작품과 관객이 영향력을 주고받는다. 시체관극이 아닌 ‘관객 해방’을 향한 상호작용성인 셈이다.

관객 유형을 관크와 시체관극의 대척점에 서 있는 관객 해방으로 선순환시키려는 시도는 또 있다. 지난해 12월 21일 광진정보도서관에서는 대학로 소극장 뮤지컬 <수레바퀴 아래서>(박한근 연출·김하진 작가)의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창작진들과 관객들이 만나 작품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하는 자리였다. 헤르만 헤세의 원작을 ‘젠더 리버스’ 버전(원작은 남학생들 이야기지만 뮤지컬은 여학생들이 다니는 신학교를 배경으로 한다)으로 각색한 창작 초연 작품으로, 상연 당시 반복 관람하는 마니아가 많았다. 이 경우 보통은 공연 기간에 ‘관객과의 대화’로 간략히 궁금증을 해소하거나 콘서트를 통해 뮤지컬 넘버를 공연하는 데 그친다. 관객과 작품의 상호작용성을 위한 소통보다는 관객들이 원하는 것을 알아서 제공하는 모양새다.

뮤지컬 <수레바퀴 아래서>  공연사진/ 네버엔딩플레이 제공

뮤지컬 <수레바퀴 아래서> 공연사진/ 네버엔딩플레이 제공

<수레바퀴 아래서> 뮤지컬 토크 콘서트는 좀 달랐다. 작품의 기획부터 제작, 상연 중 궁금증을 창작진과 관객이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본격적인 소통의 자리였다. 마니아 관객들은 예정된 시간이 훌쩍 넘어가도 지친 기색이 전혀 없었다. 깊이 있는 질문을 끊임없이 꺼내놨다. 주인공 한스와 하일러의 관계에 대한 유언비어가 교내에 퍼지는 대목에서 자유를 상징하는 초록색 조명을 사용한 이유를 질문한 관객에게 박한근 연출은 “관객들이 이런 미세한 연출의 차이를 알아차렸다는 사실이 놀랍다”며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소문을 낸 학생이나 소문의 피해자가 된 학생 모두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기 위한 복선이었다”라고 말했다.

2시간 넘는 현장에서 관련 창작진 및 배우들이 관객들의 질문을 직접 받고 소통하는 과정은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가 개념화한 ‘관객의 역설’ 혹은 ‘관객 해방’의 사례라 할 수 있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 감화돼 관크나 시체관극과 무관하게 자유롭게 웃고 울며 감정을 표현하는 관객들의 반응 역시 그러하다. 랑시에르는 “관객의 고유한 활동·능동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모든 관객은 이미 자신의 이야기를 연기하는 배우다. 모든 배우, 모든 행위하는 인간은 같은 이야기의 관객이다”라고 강조했다.

관객과 작품이 서로에게 상호작용하는 친화적 상생 관계는 좋은 공연으로 확장된다. 이는 좋은 관객을 견인하고 더 좋은 공연이 제작될 수 있는 단단한 터전을 만든다. 각자 원하는 것만 선취하고, 관객문화 자체는 점점 경직돼가는 ‘적대적 공생관계’의 악순환에 빠져들지 않기 위한 대안이기도 하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지난해 하반기 초연을 마무리하고, 재연을 준비 중이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오는 2월 18일까지 공연한다.

<이주영 문화칼럼니스트·영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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