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 죽음의 바다-이순신 3부작 완결, 흥행 역사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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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들 이상으로 전투상황의 디테일한 묘사, 액션 장면 연출에 공을 들였다. 특히 원테이크로 명군→조선→왜→이순신으로 넘어오는 백병전 연출이 백미다.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도입부 해변신과 비교되며 회자될 듯싶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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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노량: 죽음의 바다(Noryang: Deadly Sea)

제작연도: 2023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152분

장르: 액션, 드라마

감독: 김한민

출연: 김윤석, 백윤식, 정재영, 허준호, 김성규, 이규형, 이무생, 최덕문, 안보현, 박명훈, 박훈, 문정희

개봉: 12월 20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작: ㈜빅스톤픽쳐스

그러니까 이맘때다. 서양 달력으로 1598년 12월 16일 자정, 일본 시마즈 요시히로의 함대가 노량을 통과해 순천왜성으로 향했다. 노량해협은 지금은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와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 일대이다(지금은 이 자리에 남해대교가 들어섰다). 당시 전라도 순천에선 고니시 유키나가가 왜성을 짓고 조·명 연합군에 항전 중이었다.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더 이상 조선반도에서 버틸 이유가 없다고 판단해 철수를 계획하고 있었다.

영화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임종 장면부터 시작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지켜보고 있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자신의 아이들을 잘 부탁한다고 유언을 남기다가 뭔가를 깨닫고 “이에야스 네 놈이~!”라고 소리치다가 눈을 감는다. 일본 중세사를 잘 모른다고 하더라도 전국시대를 끝내고 ‘최종승자’가 된 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란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역사는 결국 끝까지 버틴 쪽이 쓰게 마련이다).

노량해전의 막전막후

고니시 유키나가는 봉쇄된 순천왜성에서 탈출하기 위해 부산에서 철병을 준비하던 시마즈 요시히로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어 조·명 연합군의 명나라 측 진린을 회유해 “치고받는 약간의 무력충돌은 있겠지만, 우리의 목적은 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협조를 요청했다. 문제는 당시 조선수군통제사가 ‘이순신’이었다는 점이다. “돌아간다고 하니 그냥 놔주는 것이 좋지 않겠소?”라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진린에 맞서 이순신은 다시 조선반도를 침략하지 않도록 하려면 철저하게 부숴야 하고, 가능하다면 일본열도까지 추적해 섬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니시 군대를 구출하러 왔다가 ‘대충 싸우는 시늉만 할 것’이라는 밀약과 달리 시마즈 측이 싸움에 ‘진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진린도 나중에는 돌아서서 이순신과 함께한다는 이야기. 지금까지 영화의 배경설명이다.

실제 영화의 전체 상영시간 중 상당 분량을 앞서 이야기한 12월 16일 자정부터 동이 터 아침이 밝을 때까지 벌어진 해전(海戰) 전투신에 할애했다(감독에 따르면 이 전투신이 약 100분에 걸쳐 이어진다고 한다). 감독의 이순신 3부작 전작들인 <명량>(2014), <한산: 용의 출현>(2022) 이상으로 전투상황을 디테일하게 묘사했고, 액션 장면 연출에도 공을 들인 영화다. 특히 원테이크로 명군→조선→왜→이순신으로 넘어가는 백병전 연출이 백미다. 아마 영화가 정식 개봉하면 핸드헬드 기법으로 촬영한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의 도입부 오마하 해변신과 비교되면서 회자될 듯싶다.

“노량을 만들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런 순간이 오네요.”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감독이 꺼낸 첫마디다. 이순신 3부작을 결산하는 영화가 아니랄까봐 전작에서 죽었던 어영담(안성기 분)이나 전라우수사 이억기, 그리고 충남 아산에서 왜군에게 희생된 아들 면 등이 머잖아 죽음이 예정된 이순신 앞에 현현해 함께 싸우는 장면을 배치했다. 눈에 띄는 연출이다. 일종의 주마등(Phantasmagoria)으로 해석하면 될까. 물론 이것은 영화적 허구다. 이순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친구 유성룡의 <징비록>이나 이항복의 <백사집> 등의 기록 등이 남아 있지만, 그가 남겼다는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戰方急愼勿言我死)”(징비록)는 유언의 정확한 워딩이 뭐였는지 알 수는 없다.

노량해전에 ‘거북선’은 없었다

영화를 보면 노량해전 때도 거북선이 짜잔, 나타나자 일본군들이 “‘메쿠라부네(盲船·거북선의 일본식 명칭)’가 나타났다!”며 공포에 떨고, 실제로 그 거북선들이 시마즈 요시히로의 함대들을 들이받아 부수는 장면이 나온다. 기자가 이전에 인터뷰한 이순신 연구가 박종평씨에게 물어보니 실제 기록에는 노량해전 당시 거북선을 운용했다는 기록은 없다고 한다. “원균이 대패한 칠전량해전 때 거북선은 다 부서지고 다시 만든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 박씨의 추론이다.

영화에서는 전작 <한산: 용의 출현>에 이어 ‘항왜’ 출신 준서가 대활약한다. 이 역시 실제 <난중일기> 상에 준서가 언급된 것은 명량해전 관련된 일기에서 바다에 떠 있는 적장의 수급(머리)을 취하라고 조언하는 딱 한 장면이 유일하다고 한다. 노량의 경우 명·왜·조선 수군이 뒤엉켜 혈투를 벌이는 난전이었던 건 사실이지만, 이순신이 대장선에서 배를 넘어온 왜군과 직접 결투를 한다든가, 시미즈 요시히로와 이순신이 직접 얼굴을 맞대고 수합을 겨루는 일 따위는 실제로 없었다. 어디까지나 영화적 재미를 위한 연출일 뿐이다.

감독의 전작이자 이순신 3부작의 첫 영화인 <명량>은 누적관객 수 1761만명으로 국내개봉 영화 흥행기록에서 현재까지 1위를 찍고 있다. 영화가 정식 개봉하면 현재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서울의 봄>과 바통 터치하면서 겨울 극장가 스크린을 장악하지 싶다.

이순신 부인 ‘방씨 부인’ 밥 차려주는 장면은 왜 삭제됐을까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배우들 ‘증언’을 들어보니 영화의 최종편집 과정에서 잘린 장면이 있는 듯하다. 이순신의 부인 방씨 부인(문정희 분)이 노량해전에 나서는 조선 수군들에게 밥을 차려주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단역으로 출연한 조선 수군 병사가 나지막이 하는 대사 “잘, 먹겠습니다”가 촬영 현장 밥차에서 식사할 때 유행어가 됐다고 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영화에서 여성 등장인물이 나오는 장면이 거의 없다. 100분에 가까운 상영시간이 해상전투 신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방씨 부인이 밥을 차려주는 장면’은 왜 최종편집에서 제외됐을까. 앞서 이순신 연구가 박종평씨에 따르면 “방씨 부인이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있던 여수 진남관 일대에 1597년쯤 방문했다는 기록은 있는데 노량해전이 있을 시기에는 충남 아산 집에 있었다”라며 “아무리 영화적 창작이라고 하지만 역사적 사실과 어긋나 그 장면은 삭제된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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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명나라 수군 측 진린(정재영 분·사진)이 이순신에게 노야(老爺·원래 중국어 발음으로는 라오예라고 하는데 대충 어르신쯤으로 번역할 수 있다)라고 꼬박꼬박 존칭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영화를 보고 돌아와 자료들을 찾아보니 실제 진린은 나이가 이순신보다 두 살이 많은데도 전투 경험이 많은 이순신에게 ‘이야(李爺)’ 혹은 ‘노야’라고 존대했다고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일본군 다이묘(영주)들이 임진왜란 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과 서군으로 나뉘어 전국시대를 끝낸 전투를 벌인 것처럼 진린 역시 명나라로 돌아가 여러 반란군 진압 전투에서 승리해 명성을 날렸다. 명청 교체기에 진린의 자손들은 끝까지 명나라 편에 써서 청나라와 맞서 싸워 나름 신의를 지켰는데, 명나라 패망 후 자손 중 일부가 조선으로 넘어와 고금도를 거쳐 해남에 정착했다. 진린의 후손들은 오늘날 광동 진씨 일가를 형성해 이순신 가문인 ‘덕수 이씨 충무공파’와 지금도 우의를 다지는 행사를 열고 있다고 한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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