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나폴레옹(Napoleon)
제작연도: 2023
제작국 : 영국, 미국
상영시간: 158분
장르: 드라마, 전쟁
감독: 리들리 스콧
출연: 호아킨 피닉스, 바네사 커비, 벤 마일즈, 타하르 라힘
개봉: 2023년 12월 6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정형화된 상업 영화로 세계를 평정했다는 손가락질도 있지만, 오랜 전통과 기술력을 통해 영화 강국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 즉 할리우드의 힘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낯선 시도와 재능으로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는 현대 작가들의 끊임없는 등장과 활약이 가장 큰 원동력이다. 이를 재빠르게 포착해 적절히 활용해 내는 시스템의 능력, 그리고 특정 장르나 유행에 함몰되지 않고 꾸준히 명맥을 유지하는 것 역시 할리우드의 저력이다. 여기에다 노익장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작품활동을 이어가는 거장들의 창의와 에너지가 무게감을 더한다.
1937년 11월 30일 영국 태생으로 올해 86세인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감독도 그중의 한 명이다. CF 감독 출신 영화감독의 원조 세대로도 구분되는 그는 상당히 세련된 화면을 만들어 내는 비주얼 리스트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1990년대 이후 흔히 사용되는 멀티 카메라 시스템을 처음 기획하고 상용화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에이리언>(1979), <블레이드 러너>(1982), <델마와 루이스>(1991), <글래디에이터>(2000) 같은 작품의 면모만으로도 거장의 반열에 올랐지만, 최근 몇 년간 해마다 신작을 발표하고 있는 왕성한 활동을 보고 있자면 더욱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2021년에만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과 <하우스 오브 구찌>를 내놓았고, 올해는 <나폴레옹>을 발표했다. 현재는 내년 개봉을 목표로 <글래디에이터 2>의 연출에도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거대한 역사 속 표류하는 인간의 내면
되돌아보면 리들리 스콧의 장편 데뷔작인 <결투자들>(1977) 역시 나폴레옹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해 최고 데뷔 상을 받으며 주목받았다. 이를 계기로 할리우드로 진출해 만든 두 번째 장편 <에이리언>은 감독 개인뿐 아니라 영화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은근히 역사적 인물들의 삶을 스크린에 옮기기를 즐기는 리들리 스콧 감독은 오래전부터 나폴레옹을 소재로 한 영화를 꿈꿔왔다고 한다. 나폴레옹이라는 인물 자체가 꽤 복합적인 성격의 인물로도 알려졌지만, 그를 둘러싼 주변의 시대적·정치적 상황을 동반한 장대한 스케일이 영화인이라면 누구나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도록 이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폴레옹의 삶을 쉽게 정의할 방법은 없다. 전기를 읽으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지만, 영화 제작자로서 나는 역사적 업적보다는 그의 내적 심리에 더욱 흥미를 느꼈다. 즉 이 영화는 역사를 넘어 나폴레옹의 정신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런 욕심이라면 나폴레옹 역으로 호아킨 피닉스를 캐스팅한 것은 적절한 포석으로 평가된다. 리들리 스콧과 호아킨 피닉스는 이미 <글래디에이터>를 통해 함께 작업했던 경험이 있지만, 지금은 두 사람 모두 그때와는 다른 위치에 올라섰다.
전통적 형식과 규모로 획득한 확장성
호아킨 피닉스가 출연한 <마스터>(2012)나 <그녀>(2013), <너는 여기에 없었다>(2017), <조커>(2019), <보 이즈 어프레이드>(2023) 같은 일련의 영화는 동시대 배우 중 그만큼 심리묘사에 적격인 배우가 없으리란 확신을 갖게 만든다.
그럼에도 영화 <나폴레옹>은 놀라울 정도로 고전적이고 정직한 전기영화의 형식을 따른다. 이야기의 구조나 연출의 호흡, 배우들의 연기까지 참으로 전통적인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형 장면으로 강렬하게 시작하는 영화는 정직하게 연대기 순으로 진행된다. 초·중·후반에 걸쳐 툴롱, 아우스터리츠, 워털루에서 벌어진 세 번의 대규모 전투 장면을 배치해 관객들의 대작 관람 욕구를 충족시킨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는 아내 조제핀과의 결혼과 이혼, 정치적 상황 속에서의 고뇌 등 나폴레옹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하는 에피소드들을 촘촘히 배치했다.
이런 형식에 덧대어 리들리 스콧 감독 특유의 군더더기 없는 화면과 편집, 두 주연배우의 진중한 연기가 녹아들어 평범해 보이지만 이전과는 다른 특별한 전기영화가 탄생했다. 그 덕분에 <나폴레옹>은 ‘전기영화는 다소 따분하고 지루하다’는 관객들의 선입견을 충분히 상쇄하는 작품이 됐다.
순수미와 퇴폐미가 공존하는 배우
수많은 배우가 존재하지만, 상대적으로 시대마다 주목받는 인물은 극소수고 빠르게 바뀐다. 한국에선 유독 스타로서의 이미지가 덜하지만, 2023년 할리우드 여배우 중 가장 활발하고 내실 있는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바네사 커비(Vanessa Nuala Kirby·사진)다.
바네사는 1988년 4월 18일, 영국 런던 윔블던에서 태어났다. 영화 전에 모델과 연극무대를 오가며 본격적인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 보는 각도에 따라 순수미와 퇴폐미를 동시에 머금고 있는 양면적 매력의 얼굴이 다양한 성격과 시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변신을 가능케 한다. 실제로 <미션 임파서블>이나 <분노의 질주> 같은 21세기를 대표하는 액션 시리즈부터 <어바웃 타임>, <미 비포 유> 같은 멜로드라마까지 장르와 비중을 넘나들며 팔색조 연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
2016년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더 크라운>에서 연기한 마거릿 공주 역은 연기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21년 출연한 넷플릭스 영화 <그녀의 조각들>로 77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 볼피컵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유력 후보로까지 거론되며 성숙한 연기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올해 7월에는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의 홍보차 크리스토퍼 매쿼리 감독, 톰 크루즈 등 다른 주연배우들과 함께 한국을 처음 방문하기도 했다.
이번 작품 <나폴레옹>에서 나폴레옹의 부인 조제핀 역을 맡아 연기파의 대명사가 된 호아킨 피닉스에게도 밀리지 않는 내공을 펼쳐 보였는데, 이제 더 많은 사람이 그의 존재를 기억할 듯하다.
<최원균 무비가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