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우주보다 오묘한 ‘나’를 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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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Tank 0-24>, 뮤지컬 <렛미플라이>·<문스토리>·<안테모사>·<이토록 보통의>

연극 <Tank 0-24> /국립극단 제공

연극 <Tank 0-24> /국립극단 제공

민간인 우주여행은 더 이상 꿈이 아니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화성여행을 목표로 추진 중인 우주발사체 ‘스타십’의 2차 시험발사는 “실패했지만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빅뱅의 탑을 비롯해 여러 나라의 예술인들과 달여행을 예약한 일본인 부호 마에자와 유사쿠의 ‘디어문’ 프로젝트도 연기는 됐지만 현재진행형이다. 한국은 누리호 3차 발사 성공으로 우주여행에 성큼 더 다가선 상태다.

이런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듯 우주 탐사와 우주비행사를 소재로 한 다양한 한국 창작 무대극이 상연 중이다. 이 작품들이 궁극적으로 탐사하는 대상은 실제 우주보다 더 거대하고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나’라는 우주다.

연극 <Tank 0-24>의 무대는 실제 우주처럼 어슴푸레하다. 안개 너머로 유영하듯 천천히 커다란 구멍을 들여다보는 이들은 우주복에 헬멧을 착용하고 있다. 우주인들은 구멍 안에 돌과 인형을 던져보더니 갸우뚱하며 자기 스스로를 던져보기도 한다. 긴 정적과 암전 후 구멍에서 붉은 풍선이 천천히 솟아오른다. 이를 부여잡은 우주인은 한참 멈춰서 있다. 연이어 날카로운 무언가로 풍선을 터뜨리고 유유히 우주복을 벗어 던진 후 일상으로 돌아간다.

대사 없이 마임처럼 진행되는 국립극단의 청소년 참여극 <Tank 0-24>의 2막은 인간의 심연을 탐사한다. 여신동 연출가는 “내면에 무엇이 있는지, 깊은지, 물이 있는지 이것저것 추측을 해보지만 결국 알 수는 없다”라며 그 과정에서 떠오르는 풍선은 “또 다른 나를 상징한다”고 부연한다. 터뜨린 풍선 속에는 아무것도 없다. 관객들은 심연에 존재하며 나를 짓누르는 거대한 무언가의 실체는 결국 허상임을 깨닫는다.

뮤지컬 <문스토리>는 소외된 인간의 내면에 대한 본격 탐사다. 달에 사는 용은 오래전 지구로 간 친구들과 소식이 끊어지자 이들을 찾아 나선다. 웹툰 <문스토리>로 인기절정을 누리다 파트너의 죽음으로 폐인이 된 이헌은 ‘우리 모두 달의 아이’라고 주장하는 용이 낯설다. 죽은 파트너까지 트랜스젠더 린으로 되살아나 혼돈에 빠진다. 잡지기자 수연은 용과 린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헌의 재기를 돕는다. 서로 다름을 ‘틀린 것’으로 규정하는 현대사회의 소외된 인격들에 대한 이야기다. 전체 넘버에 고루 반복되는 ‘움바콤보 쿰투미키야 알리타카 바바야케’는 비빌 언덕도, 뛰어난 재능도 없지만 냉혹한 지구 도심살이를 선택한 ‘달의 아이들’을 위한 행복주문이다. 우리 모두 사실은 달의 아이니까.

뮤지컬 <문스토리>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제공

뮤지컬 <문스토리>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제공

<문스토리>의 이헌이 상실한 꿈과 소외의 고통을 술과 약으로 망각하려 했다면 뮤지컬 <렛미플라이>의 노인 남원은 ‘치매’를 묘약 삼아 시간여행을 한다. 1969년 닐 암스트롱의 달 탐사로 세상이 들뜨던 시기로 돌아간 청년 남원은 정분과 대도시로 나아가 복장학원에 등록하려고 했으나 현실이 발목을 잡는다. 아픈 아버지를 두고 갈 수 없는 정분과 함께 고향에 남기로 한다. 서로의 존재가 꿈이라고 위로하며 반려가 된 남원과 정분은 그 후 행복하게 살았을까? 무의식 속 ‘나’는 소망대로 복장학원에 입학해 디자이너가 된다. 나사 연구원이 된 정분의 옷을 지어주고 싶었나 보다. 환갑이 넘어도 좁은 수선집 안에 멈춰 있는 노인 남원의 인생 다시 살아보기 프로젝트를 다룬 <렛미플라이>는 관객 각자의 내면에 있는 ‘나’를 소환해 새로운 꿈과 미련을 직시하게 이끈다.

뮤지컬 <렛미플라이> /프로스랩 제공

뮤지컬 <렛미플라이> /프로스랩 제공

꿈을 갈망하는 자아의 목소리에 충실한 뮤지컬 <이토록 보통의>의 제이는 그토록 원했던 우주비행사가 됐건만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아내와 1년간 떨어져 있어야 하는 현실에 화가 난 남편 은기가 집을 뛰쳐나가다 그만 사고사한 것. 제이는 자신과 은기의 복제 로봇을 만들어 생활하게 두고 평행세상에 존재할지 모르는 또 다른 은기를 찾아온 우주를 헤맨다. 은기를 잃고서야 자신의 꿈이 은기와의 평범한 일상이었음을 깨닫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뮤지컬 <이토록 보통의> /파크컴퍼니 제공

뮤지컬 <이토록 보통의> /파크컴퍼니 제공

우주와 자아 성찰을 소재로 한 다양한 무대극 중에서 <이토록 보통의>가 의미심장한 이유는 이들 부부의 DNA를 복제한 로봇이 선택한 삶 때문이다. 일상이고 당연해서 인식하지 못한 평범한 행복을 복제 로봇 커플은 고민없이 선택한다. 인간이기에 늘 욕망에 휘둘리며 본질의 목소리를 외면한다는 웃픈 현실을 자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뮤지컬 <안테모사> /국립정동극장 제공

뮤지컬 <안테모사> /국립정동극장 제공

그런 점에서 뮤지컬 <안테모사>는 내 안의 심연과 건강하게 마주하는 또 다른 선택지를 제공한다. 페트병으로 만들어진 자작나무 숲속 재활용품 오두막 안테모사(antemosa·세이렌 설화 속 세 여성이 사는 꽃의 마을)에는 햇빛 알레르기가 심한 하얀 머리카락의 만능 수선사 몰페가 산다. 빵을 잘 만들고 버려진 물건들에 쓸모를 찾아주는 두 할머니는 몰페를 키워준 가족이자 수호신이다. 마을 사람들이 세 마녀라며 기피하고 두려워하지만, 떠돌이로 자란 우편배달부 제논이 드나들며 두 세상은 조금씩 소통한다. 마을 사람들은 몰페가 수많은 물품을 수선해주며 추억을 보전해왔음을 깨닫고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며 공존 공생한다.

인간을 흔히 ‘소우주(Microcosmus)’라고 표현한다. 복잡다단한 심연을 인식한 통찰이다. 우주 같은 ‘나’는 종종 앞과 뒤가 다르거나 상황 판단이 서투르다. 하지만 그것 역시 나의 일부이다. 뮤지컬 <안테모사>의 몰페는 “나는 달라, 그게 뭐. 내가 누군지는 내가 정해!”라며 자신의 내면에 충실한 행보로 마을 사람들과의 불화를 평화로 바꾸었다. 쓸모없는 것에 가치를, 가치 있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지혜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안착한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검은 구멍 속 ‘나’와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이다. 아쉽게도 다른 작품들은 최근 막을 내렸고, 뮤지컬 <렛미플라이>와 <문스토리>는 오는 12월 10일까지 상연한다.

<이주영 문화칼럼니스트·영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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