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백제금동대향로 다섯 악사는 여성 전문 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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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금동대향로 / 국립부여박물관 제공

백제금동대향로 / 국립부여박물관 제공

위대한 발견은 어느 날 불쑥 예고 없이 찾아온 손님 같습니다. 하지만 곱씹어보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국보 중의 국보’로 꼽히는 백제금동대향로의 발굴 이야기입니다.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봅시다. 백제 왕들의 무덤이 모여 있는 ‘부여 능산리고분군’(현 백제왕릉원)엔 관람객들이 증가 추세에 있었습니다.

‘찜찜해서 파보자고 했더니…’

그러나 주차시설이 턱없이 비좁았습니다. 부여군은 고분군의 서쪽 능선에 주차장을 마련할 계획을 세웠고요. 사전시굴조사가 진행됐고요.

건물터와 재를 비롯한 불탄 흔적, 그리고 금속유물 편들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공사를 중단시킬 결정적인 유구·유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 보통은 공사를 강행합니다. 발굴 때문에 비용과 시간을 낭비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심상치 않은 징후가 보이는데 고고학도로서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겠죠. 관계 연구자들이 문화재관리국으로 달려가 “찜찜하니 딱 한 번만 파보자”고 건의했답니다. 그렇지만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당시 노태섭 문화재관리국 기념물과장이 선선히 “그러자” 수용했답니다. 그러면서 국비(3000만원)를 선뜻 책정해주었습니다. 만약 “나온 것도 없는데 뭘 파보겠다는 거냐”고 일축했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금동대향로는 공사 강행과 함께 중장비의 삽날에 찍혀 흔적도 없이 사라졌겠죠.

강추위 속에 판 물구덩이

이듬해(1993년) 10월부터 본격 발굴에 돌입했답니다. 계곡부에 자리 잡고 있던 현장 상황은 최악이었습니다. 12월 들어 강추위까지 들이닥쳤고요. 조사단은 꽁꽁 언 손으로 산골짜기에서 흘러드는 물을 빼내느라 악전고투했습니다. 발굴은 기다림의 미학이자 인내의 결정체라 했던가요. 그때가 12월 12일, 일요일 오후 4시 30분이었습니다.

발굴 구덩이에서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물체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흥분에 젖은 발굴단은 전등을 밝혀 놓고 본격 수습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밤 8시 30분쯤 ‘국보 중의 국보’가 물구덩이 속에서 빼어난 자태를 드러냈습니다.

백제금동대향로였습니다. 나중에 보니 수상했습니다. 향로가 출토된 타원형 구덩이는 사찰의 공방에 필요한 물을 저장하던 구유형 목제 수조가 놓여 있던 곳이었습니다. 왜 향로가 나무 물통 안에 숨겨져 있었을까요.

‘잠깐 숨겨놓으면 될 줄 알았는데….’

그럴듯한 해석이 동원됐습니다. 660년(의자왕 20) 나당연합군의 공세에 사비(부여)가 함락됩니다. 백제 왕릉을 지키던 사찰의 승려들은 이 대향로를 공방터 물통 속에 감춰둡니다. 그저 며칠만 숨겨 두면 괜찮을 거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건 오판이었습니다. 백제는 속절없이 멸망하고 말죠.

나당연합군은 나라 제사를 지내던 이 절을 불에 태웠고요. 공방터 지붕도 폭삭 무너졌습니다. 금동대향로도 이후 1300년 이상 그 자리에 묻혀버린 거고요. 허황된 스토리일까요.

지난 1993년 12월 12일 밤 백제 사비시대 임금들의 무덤이 모인 능산리고분군 서쪽 계곡부 주차장 예정부지에서 출토된 백제금동대향로. 구유형 물통 속에 숨겨져 있었다. / 국립부여박물관 제공

지난 1993년 12월 12일 밤 백제 사비시대 임금들의 무덤이 모인 능산리고분군 서쪽 계곡부 주차장 예정부지에서 출토된 백제금동대향로. 구유형 물통 속에 숨겨져 있었다. / 국립부여박물관 제공

1995년 절터의 목탑지 밑에서 깜짝 놀랄 만한 유물이 발견됩니다. ‘백제 창왕(위덕왕·재위 554~598) 13년인 정해년(567년) (창왕의 누이인) 공주가 사리를 공양한다’는 글자가 새겨진 ‘석조사리감’이었습니다. 그런데 출토양상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탑의 중심기둥이 도끼 같은 흉기로 처참하게 잘려져 있었습니다. 명문 사리감도 비스듬히 넘어져 있었습니다. 나당연합군이 목탑의 사리장치를 수습하려고 파헤친 것이 아닐까요.

금동대향로 19명 인물열전

2023년은 금동대향로를 발굴한 지 딱 30주년 되는 해인데요.

며칠 전 백제문화제재단 등의 주최로 열린 발굴 30주년 ‘학술대회’에서 상당수 논문이 발표됐더라고요. 그중 ‘향로에 표현된 19명의 인물상’과 관련된 발표문(‘백제금동대향로의 동아시아 미술사적 의의’)이 눈길을 끌었습니다(소현숙 원광대 교수). 그래서 기왕에 발표된 논문(박경은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관의 ‘백제금동대향로 도상과 상징성 연구’, 홍익대 박사논문, 2018)과 비교해보았죠. 재미있더라고요.

금동대향로는 받침과 몸체, 뚜껑, 꼭지 등 4부분으로 구성돼 있는데요. 인물은 뚜껑에 악사 5명을 포함한 17명, 몸체(연꽃)에 선인 2명 등 모두 19명이 보입니다. 새삼 이 19명을 뜯어보았는데요. 어쩌면 그렇게 사실적으로, 디테일하게 표현했는지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우선 뚜껑을 볼까요.

거문고(금)와 완함(비파), 북, 종적(피리), 배소(퉁소)를 연주하는 다섯 악사가 표현돼 있습니다. 이 다섯 악사의 표정을 보시죠.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은은합니다. 동시대 백제 불상의 온화한 표정을 연상하게 됩니다.

다섯 악사의 독특한 헤어스타일

여기서 소현숙 교수가 ‘주목!’을 외치네요. 다섯 악사의 헤어스타일을 자세히 보라고 합니다. 얼핏 보면 정수리까지 삭발하고 뒷머리를 길게 땋아서 오른쪽으로 틀어 올린 것 같은데요. 그러나 아니라는 겁니다. 머리카락을 표현하지 않았을 뿐,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 오른쪽으로 틀어 올린 것으로 봐야 한다는 거죠.

이런 헤어스타일이 중국 동진시대(317~419) 유물에서 보인다는데요. 즉 중국 난징(南京)에서 출토된 4~5세기 동진시대 여성 도용(무덤에 껴묻이한 인물·동물상)의 헤어스타일이 연상된다는 연구가 있답니다. 동진시대에 전해진 머리 모양이 백제 악단의 공식 헤어스타일로 자리 잡게 된 것이 아닐까요.

여성 전문 악단의 포스

무엇보다 이 다섯 악사가 ‘모두 여성 선인’일 가능성이 짙답니다. 이 대목에서 착안점이 하나 있다는데요.

중국 향로에서는 남녀 선인이 함께 즐겁게 놀거나 짝으로 표현된답니다. 즉 남녀의 결합 등이 득도(得道)의 중요 통로로 인식됐거든요. 그런데 중국에서 여성 선인은 신선이 되기 위한 일종의 보조자 역할이었답니다. 반면 백제금동대향로의 다섯 악사를 보십시오. 이들은 남성 선인의 짝이나 선인을 이루기 위한 보조자가 아니라는 거죠. 산 정상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독립된 지위를 갖고 있는 주악(연주) 선인의 신분을 과시했다는 겁니다.

예컨대 거문고나 피리 등의 연주는 하늘신을 부르는 초혼과 같은 기능을 한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그렇다면 금동대향로 속 여성 선인은 신을 부르거나 제례의 악을 담당하는 기능을 부여받았을 가능성이 짙습니다.

다섯 악사의 헤어스타일이 같다.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 오른쪽으로 틀어 올렸다. 백제 악단의 공식 헤어스타일 같다. 산 정상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여성 전문 악단은 독립된 지위를 갖고 있는 주악(연주) 선인의 신분을 과시했다는 견해가 있다. 소현숙 원광대 교수의 견해를 토대로 구성했다.

다섯 악사의 헤어스타일이 같다.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 오른쪽으로 틀어 올렸다. 백제 악단의 공식 헤어스타일 같다. 산 정상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여성 전문 악단은 독립된 지위를 갖고 있는 주악(연주) 선인의 신분을 과시했다는 견해가 있다. 소현숙 원광대 교수의 견해를 토대로 구성했다.

파르티안 샷 선보이는 인물

여성 다섯 악사 외에 뚜껑에 표현된 12명은 어떤 인물일까요. 이중 3명은 동물을 탄 모습인데요. 1명은 봇짐을 지고 코끼리 등에 편안하게 올라탔습니다. 코끼리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동남아시아인이 아닐까요(박경은 학예연구관). 또 한 인물은 말갖춤새를 완비한 말을 타고 산언덕을 오르고 있네요.

제3의 인물은 말을 탄 채 등을 돌려 활을 쏘고 있는데요. 이 ‘돌려쏘기’ 신공은 무용총이나 덕흥리 고분 같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보이는 ‘파르티안 샷’이라고 하죠. 고대 파르티아 왕조(기원전 3세기~기원후 3세기)의 궁기병이 로마군과의 전투에서 구사한 기술입니다. 그럼 남은 9명은 누구일까요.

거울인가 낚시도구인가

뚜껑의 제1단에는 3명의 인물이 출현합니다. 편의상 인물 ①~⑨로 표현해보죠.

‘인물 ①’은 어깨에 옷이 빗물에 젖지 않도록 도롱이(비옷)를 걸친 채 걷고 있네요. ‘인물 ②’는 계곡의 암반 위에 앉아 있습니다. 손에 끝이 구부러진 지팡이와 둥근 무엇을 쥐고 있는데요.

여기서 관찰자들의 견해가 갈립니다. 이 ‘둥근 무엇’을 거울로 본 연구자가 있어요(박경은 연구관). 인물 ②가 앞에 걸어가는 호랑이를 향해 거울을 비추고 있다는 겁니다. 도교 경전인 <포박자> ‘내편·등섭’은 “옛날 도사들은 직경 9촌의 거울로… 새나 짐승이 사람으로 둔갑했다면 그 본래의 모습이 거울에 비친다”고 했답니다.

백제금동대향로 발굴 30주년 기념 특별전. 향을 주제로 한 특별전이다. 2024년 2월 12일까지 열린다. / 국립부여박물관 제공

백제금동대향로 발굴 30주년 기념 특별전. 향을 주제로 한 특별전이다. 2024년 2월 12일까지 열린다. / 국립부여박물관 제공

그렇다면 ‘인물 ②’ 역시 호랑이를 물리치거나 판별하려고 거울을 비추고 있는 걸까요. 다른 연구자는 물 위의 암반에서 갈고리처럼 생긴 물건을 들었다는 것에 주목했는데요. 또한 선인들의 전기인 <열선전>에서 낚시와 관련된 선인들이 다수 언급된답니다. 따라서 ‘인물 ②’는 ‘낚시하는 선인’으로 보는 게 맞다고 추정합니다.

‘인물 ③’은 어떨까요. 지팡이에 의지해서 구부정하게 걷고 있는 노인으로 보기도 하고요(박경은 학예연구관).

하지만 중국 양나라 시대 도인이었던 도홍경(456~536)은 “쉽게 굴복하는 세태가 싫어 지팡이를 짚고 산을 찾는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꼭 ‘지팡이=노인’의 등식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도 있습니다(소현숙 교수).

풀어헤친 머리를 감는 사람은

제2단에도 3명의 선인이 있네요. ‘인물 ④’는 약초를 향해 몸을 굽히고 있습니다. 풀의 줄기가 휘청대네요. ‘인물 ④’가 손으로 확 휘어잡아 뜯었음을 알 수 있죠. 디테일한 묘사가 일품입니다.

‘인물 ⑤’는 ‘인물 ③’과 비슷하게 지팡이를 집고 산에서 내려오고 있네요. 인물 ⑥의 자세가 아주 특이합니다. 계곡 사이로 몸을 반쯤 내밀고 폭포 아래에서 긴 머리를 물에 담근 채 감고 있어요. 이것을 입산수도와 단약 제조를 위해 목욕재계하는 과정으로 보는 견해도 있고요(박경은).

또 앞서 인용한 도홍경은 “입산 후 머리 풀고 옷끈을 풀어헤친 채 산 위를 돌아다닌다”고 했거든요. 당대 중국에서 선인의 이미지는 머리를 길게 풀어헤치거나, 옷끈을 풀어버린 자유로운 모습이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소현숙).

다섯 악사와 다른 선인들은 소매가 넓고 길이가 긴 복장의 안쪽에도 깃이 곧게 내려가는 속옷을 입었다. 그러나 ‘인물 ⑨’ 옷 꾸밈새(복식)는 속옷이 대각선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를 두고 전형적인 불상과 승려의 옷차림이라는 견해가 나왔다.

다섯 악사와 다른 선인들은 소매가 넓고 길이가 긴 복장의 안쪽에도 깃이 곧게 내려가는 속옷을 입었다. 그러나 ‘인물 ⑨’ 옷 꾸밈새(복식)는 속옷이 대각선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를 두고 전형적인 불상과 승려의 옷차림이라는 견해가 나왔다.

광석 캐는 도인, 명상하는 승려

뚜껑의 제3단에도 3명의 인물이 있는데요. ‘인물 ⑦’은 손에 날카로운 공구로 암반을 깎아내고 있고요. 도교의 연단술(불로장생을 위해 단약을 조제·복용하는 신선도술)이 있거든요. ‘인물 ⑦’이 바로 이 단약 제조를 위해 광석을 채취하는 것 같아요. ‘인물 ⑧’은 자기 키보다 큰 약초를 캐고 있고요.

인물 ⑨는 좀 다른 모습이죠. 명상을 통해 신선이 되고자 하는 수련자의 모습이라 보기도 하고요(박경은 학예연구관). 이 ‘인물 ⑨’는 ①~⑧과는 성격이 다른 인물, 즉 도인이 아니라 승려로 판단하기도 합니다(소현숙 교수).

이 ‘인물 ⑨’의 옷 꾸밈새(복식)가 다른 16명과 다르다는 겁니다. 다섯 악사와 다른 선인들은 소매가 넓고 길이가 긴 복장의 안쪽에도 깃이 곧게 내려가는 속옷을 입었는데요. ‘인물 ⑨’의 속옷만 대각선으로 표현되고 있네요. 이것은 전형적인 불상과 승려의 옷차림이라는 겁니다.

중국 사서인 <주서>나 <북서> 등은 “백제에서는 불교는 성했지만, 도사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했거든요. 또한 이 백제금동대향로가 쓰인 곳이 어디입니까. 백제 왕릉 옆에서 선왕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사찰이었죠.

그렇다면 당시 백제금동대향로 앞에서 의례를 담당했던 인물은 승려가 됐을 겁니다. 백제금동대향로 속에 나타난 유일한 승려가 바로 도교와 불교가 결합한 당대의 백제 사상계를 잘 반영했다는 겁니다(소현숙 교수).

택견이 아니라 공중을 나는 선인

인물은 몸체의 연꽃 안에도 2명이 있는데요. 1명은 새를 타고 하늘을 날고 있어요. 혼자 공중을 나는 선인도 있는데요. 이를 두고 전통무술인 택견 자세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런데 고구려 무용총의 천장에서도 비슷한 그림이 보이죠. <삼국유사> ‘기이·남부여(백제)’조는 “백제의 전성기에는 신인(神人)이 삼산(三山)에 살았는데 공중으로 날아 서로 왕래했다”고 했습니다.

금동대향로가 홀연히 나타난 것이 벌써 30년 됐는데요. 말로만 ‘국보 중의 국보’라고 할 게 아니라 찬찬히 이모저모 뜯어보면서 이야깃거리를 차곡차곡 쌓아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침 국립부여박물관이 내년 2월 12일까지 <백제금동대향로 3.0-향을 사르다> 특별전을 열고 있습니다.

‘향’을 주제로 3D로 구현해낸 향연(香煙)과 백제금동대향로 속 세상을 휘감아 도는 카메라 워킹을 선보인다고 하는데요.

새로운 세대에 맞는 감각적인 전시회네요. 짙어가는 가을철에 한번 들러보시기 바랍니다.

<이기환 역사 스토리텔러 Ikh07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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