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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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9일, 경북 예천 내성천에서 채 상병과 함께 급류에 휩쓸렸던 병사가 있다. 한참을 떠내려가던 그는 가까스로 물에서 건져지자마자 강둑을 따라 하류로 뛰었다.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전우를 찾아야겠다는 급한 마음. 사고 이후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남긴 첫 마디는 그랬다. “엄마, 내가 수근이를 못 구했어.” 사고가 발생한 것도, 끝내 동료를 잃은 것도 그가 감당할 몫이 아니지만 자꾸 몫을 찾아 헤맨다.

[오늘을 생각한다]해병대의 몫

사고 이후 두 달이 지났다. 그 사이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은 물에 빠졌던 부대원들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한다. 예천에서 채 상병이 실종됐을 때도 인근에서 수색 작업을 시찰 중이던 사단장은 사고 현장에 오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부하들이 까닭 없이 만난 생사의 갈림길에 자기 몫은 없다고 여긴 것일까. 혹여나 그 자리에 서면 부정할 수 없는 몫이 생길까 두려웠던 것일까. 사고가 발생한 것도, 끝내 부하를 잃은 것도 지휘관이 감당해야 할 몫이지만 여전히 사단장 자리를 지키고 앉은 그는 자꾸 몫을 피해 숨는다.

박정훈 대령에게 항명죄를 덮어씌워 요란스레 수사를 시작한 지도 한 달 반이 지났다. 수사하는 사람도 한평생을 군인으로 산 박 대령이 징역을 살고 연금수급권도 날아갈 항명죄를 범할 동기를 설명하지 못한다. 아마 알면서도 얘기를 못 하는 것일 터다. 부당한 수사개입의 공범이 되길 거부한 것. 그 선택이 상관인 해병대 사령관과 부하들을 모두 살렸다. 그렇게 그는 자기 몫의 안위를 버리고, 자기 몫의 책임을 지켰다.

며칠 전엔 사령관이 항명죄 수사 개시 직후 박 대령 휘하의 중앙수사대장과 나눈 통화 내용이 공개됐다. 사령관은 “우리는 진실되게 했기 때문에 잘못된 건 없다”며 부하의 무고함을 인정하면서 “나중엔 내 지시사항을 위반한 거로 갈 수밖에 없을 거다”며 겪게 될 고초도 예견한다. 잘못된 것이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임 사단장 등을 업무상과실치사죄로 민간에 이첩하는 것을 중단하라 지시했고, 부적절한 지시로 인해 부하는 곤경에 처하고 자신은 권력의 노여움을 비껴갈 수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자기 몫의 안위를 지키고, 자기 몫의 책임은 버렸다.

9월 23일, 서울시청광장에서 해병대 한국전쟁 서울수복기념행사가 열렸다. 해병대가 중요하게 여기는 연례행사다. 그 자리에 사령관은 검은 옷을 빼입은 경호원들을 잔뜩 대동하고 나타났다. 같은 날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선 예비역 해병대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박 대령의 복직과 채 상병 사망 원인 규명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그곳엔 박 대령, 채 상병과의 공통점이 ‘해병대’뿐인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다들 저마다의 몫을 맴돌며 산다. 부끄러운 삶과 부끄러움을 걱정하는 삶, 그 사이 어딘가에서.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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