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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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창이 달린 작은 우리 안에 광대가 앉아 있다. 광대는 단식 중이다. 빼빼 마른 광대의 단식 공연을 보기 위해 구경꾼들이 몰려든다. 사람들은 궁금하다. 광대가 진짜로 굶고 있는지, 얼마나 오래 굶을 수 있는지. 광대는 사람들의 관심이 좋다.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내가 얼마나 잘 굶을 수 있는지를.

[오늘을 생각한다]단식 광대

군중이 몰려들자 광대는 더욱 열광적으로 단식에 몰두한다. 이대로라면 영원히 굶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단식은 40일 만에 중단된다. 고용인이 그 이상의 단식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광대는 서커스단에 들어가 단식 공연을 계속한다.

그런데 광대의 기분이 점점 가라앉는다. 단식 공연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호기심에서 멀어져 갔다. 사람들은 다른 전시회를 구경하러 갔다. 언젠가부터 사람들 사이에 단식쇼에 대한 혐오마저 생겨났다. 이제 군중에게 광대의 단식은 이상하고 의심스러운 일이다. ‘도대체 왜 굶는가?’, ‘진짜 굶는가?’ 슬퍼진 광대는 ‘이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했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단식 광대>의 이야기다.

어느 날 서커스단 감독관이 광대에게 묻는다 “아직도 단식을 하고 있는가? 도대체 언제 그만둘 건가?” 광대가 대답한다. “모두들 나를 용서해주세요.” 감독관은 광대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머리에 손을 얹는다. 광대는 말한다. “나는 언제나 여러분이 제 단식에 대해 감탄하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단식을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지요. 왜냐하면 저는 달리 다른 방도가 없었거든요.” 단식의 유일한 목표는 사람들에게 단식을 보여주는 것이었기에, 군중의 무관심은 공연이 무의미해졌음을 뜻했다.

광대의 마지막 말을 들은 사람들은 광대를 묻어버렸다.

<단식 광대>의 이야기는 인정받지 못한 존재의 절망을 보여준다. 무기력한 광대가 존재의 의미를 느끼는 순간은 사람들이 굶는 자신을 바라볼 때뿐이었다. 그 옛날 전두환이 퇴임 후 감옥에서 벌였던 단식쇼도 관객을 잃을 수 없었던 광대의 절망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사람들은 광대의 절망에 관심이 없다. 세상에는 그런 것보다 흥미롭고 중요한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의 단식이 생각났다면, 그건 기분 탓일 거다.

이 시대 가장 공포스러운 단식 공연은 권력자들이 벌이는 그것이다. 모든 수단을 잃은 사람에게 신체는 마지막 남은 저항수단이다. 힘센 사람들이 무대를 만들어 머리를 깎고 밥을 굶는 장면이 누군가에겐 공포스러운 이유다. 이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단식은 약자들의 최후 저항수단이다.”(이재명 성남시장, 2016. 10. 2)

<정주식 ‘토론의 즐거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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