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미국의 전략은 왜 흔들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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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8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이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허리펑 중국 부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7월 8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이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허리펑 중국 부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7월 6~9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이 중국을 방문했다. 옐런 장관은 리창 국무원 총리, 허리펑 경제담당 부총리, 류쿤 재정부장, 판궁성 인민은행장 등 중국의 경제 관료들과 10시간 가까이 개별회담을 가졌다고 회담 결과 브리핑에서 밝혔다. 옐런 장관은 “미국은 중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양국 경제의 분리)을 추구하지 않는다. 디커플링은 양국에 재앙이 될 것이며 세계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실행도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또한 “디리스킹(위험제거)은 명확하게 제시된 특정 국가안보 우려와 공급망 다각화에 대한 일부 주요 부문에만 적용된다”고 강조했다.

디리스킹이지 디커플링은 아니라는 옐런 장관의 브리핑은 논리적으로 궁색하고 설득력이 약하다. 실제로 옐런 장관의 언급에 대한 중국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중국의 관영 언론인 신화통신은 옐런 장관의 방문 직후에 “미국이 (디커플링 대신) 디리스킹을 추구한다고 해서 미국이 중국을 억제하려는 노력을 포기한 것으로 (중국이) 착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측의 관점에서는 이 둘의 구분이 사실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옐런 장관의 브리핑에는 국가안보와 경제문제를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로 보는 미국 정부의 정책 노선이 담겨 있다.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과 중국에 대한 전략제품 수출 통제 등은 이러한 국가 전략에서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미국 정부의 정책 노선은 현실 상황에서 어긋나기 때문에 실현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국가안보를 위한 기술적 우위의 확보가 실질적으로는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경제문제에서 자유주의적 노선을 견지할 수 없게 된다. 현재의 미국 통상정책과 이를 뒷받침하는 산업정책이 그러하다. 이 전략이 어디까지 성공할 수 있을지, 미국이 의도한 만큼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두 가지 측면에서 검토해본다.

미국을 앞서가는 중국

먼저 과학연구와 기술개발 측면이다. 최근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인공지능(AI) 기술을 예로 들어보자. 스탠퍼드대학 인간중심인공지능연구소의 ‘2023년 AI 지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AI 관련 논문은 2010년 약 20만 건에서 2021년 약 50만 건으로 대략 2.5배 증가했다. 논문 건수로는 중국이 1위, 미국이 2위다. 이러한 양적 증가와 함께 국가 간 협력도 크게 증가했는데, 미국과 중국의 연구자들이 함께 발표한 경우가 가장 많았다. 미국과 중국 간의 AI 연구 협력 건수는 2010년 이후 약 4배 증가했다. 최근에는 미·중 협력 건수의 증가 속도는 낮아지고 있지만, 다른 나라 사이의 연구 협력보다 현저히 앞서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논문 건수 하나만으로 국가의 과학기술 경쟁력을 평가하는 것은 무리다. 이를 보완하는 방법이 논문에 대한 인용이다. AI 논문에 대한 인용에 있어서도 중국은 미국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전 세계에서 출판된 AI 논문의 인용 비중을 보면 중국이 29%로 1위를 차지했다. 영국과 유럽연합을 합하면 22%이고, 미국은 15%로 한참 뒤져 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도 중국이 미국에 뒤지지 않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 14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미·중 정상 간 첫 대면회담에 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발리|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11월 14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미·중 정상 간 첫 대면회담에 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발리|로이터연합뉴스

AI 이외의 다른 기술 분야는 어떨까. 지난 2월 호주의 전략정책연구원(ASPI)은 44개 핵심기술에서 미국-중국 간의 경쟁구도를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44개 핵심기술 중에 미국은 7개를, 중국은 37개를 선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기술 선도국으로 미국과 중국 이외의 국가는 없다. 중국이 선도하고 있는 이들 37개 기술 중에서 중국은 8개 분야에서 독점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국가 간에 이뤄지는 기술 교류에 대한 통제가 부분적으로는 가능할 수 있지만, 기술의 기반의 되는 과학연구의 교류를 봉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과학연구에 있어서 인적 자원의 배출과 교류는 더욱 그러하다. 박사학위 배출을 보자. 중국은 2021년 한 해에 7만2020명의 박사를 배출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숫자다. 같은 해 미국에서 배출된 박사학위자는 5만2250명이다. 이중 미국 시민권자는 전체의 60%를 차지하는 3만1674명이다. 나머지 외국인 박사학위 수여자 중 중국인이 6148명으로 가장 많다. 그 뒤를 이어 인도인이 2291명, 한국인이 1025명이다. 박사학위에 대한 통계를 발표하는 미국과학재단에 따르면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상당수는 미국에 남기를 희망한다. 박사급 연구자에서도 중국은 미국 내에서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이 배출하고 있고, 이들은 미국에 남든 귀국하든 미국과의 연구 교류에 있어서 창구 역할을 한다.

바이든 정부 대외정책의 한계

이러한 배경에서 과학연구에 있어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절대적 우위는 이미 사라지고 있거나, 앞으로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소유권이 인정되는 특허는 어떨까. 특허에 있어서도 유사한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통계에 의하면 2021년 중국은 153만8604건의 특허를 국내에서 출원했다. 이 숫자는 세계 1위의 기록이다. 중국의 해외 특허 출원은 11만1960건으로, 세계 3위를 기록했다. 같은 해에 미국은 50만9962건을 미국 내에서 출원했다. 이는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다. 출원 건수로 보면 중국은 미국의 3배 규모이다. 논문 건수와 마찬가지로 특허 출원 건수만으로 국가의 기술력을 평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특허에서도 인용이라든지 다른 부수적인 지표를 사용해 이를 보완한다. 이러한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중국의 왕성한 특허 출원 활동은 기술 분야 전반에 있어서 중국 ‘기술 굴기’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과학연구의 개방성과 중국의 기술 굴기는 현재 미국이 추구하는 기술패권 전략이 미국이 의도한 대로 작동하지 않으리라는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배경이 옐런 장관의 디커플링-디리스킹 레토릭을 궁색하게 한다. 이는 또한 바이든 정부가 추구하는 대외정책의 한계이기도 하다. 미국의 대외정책이 압도적인 기술적 우위를 경제 영역에서 실현하는 방편으로 본다면 더욱 그러하다. 미국이 현재 추진하는 대외정책의 파장과 한계에 대해서는 다음 칼럼에서 이어간다.

<서중해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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