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5세 왕자는 낙마사, 10세 공주는 병사? 금령총·쪽샘 44호분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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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과 2018~2020년 두 차례 조사된 금령총은 5세 전후의 어린 왕자 무덤으로 추정된다. 2014~2023년 조사된 쪽샘 44호분은 10세 전후의 공주 무덤으로 판단된다.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국립경주박물관 제공

1924년과 2018~2020년 두 차례 조사된 금령총은 5세 전후의 어린 왕자 무덤으로 추정된다. 2014~2023년 조사된 쪽샘 44호분은 10세 전후의 공주 무덤으로 판단된다.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국립경주박물관 제공

‘쪽샘 44호분=10살 소지왕대의 공주, 금령총=5살 지증왕대의 왕자?’

얼마 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경주 쪽샘 44호분의 10년 발굴성과를 정리한 시사회를 열었습니다. 2014년 시작된 발굴은 황남대총 조사(1973~1975) 이후 40여 년 만에 진행된 장기프로젝트였죠. 신라의 독특한 묘제인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을 완전해체하고 그 전모를 밝혀보겠다는 야심 찬 학술조사였습니다.

한 고분을 10년간 발굴한 것도, 발굴현장을 돔으로 씌워 현장을 보호하고, 일반에 공개한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신라 공주의 현현

발굴이 진행되면서 노출 유구와 출토유물은 건건이 화제를 뿌렸습니다.

2019년에는 고구려 고분벽화(안악 3호분·무용총)를 연상케 하는 ‘신라행렬도’ 토기가 출토됐습니다.

1년 뒤(2020)에는 더욱 엄청난 유물이 쏟아져 나왔죠.

금동관(1점), 금드리개(1쌍), 금귀고리(1쌍), 가슴걸이(1식), 은허리띠 장식(1점) 등 장신구 세트가 주인공이 착장한 그대로 노출됐습니다. 고분의 규모가 엄청났습니다. 돌무지의 규모(16~19m)가 금관총(20~22m)·서봉총(16~20m) 등 왕릉급 고분과 맞먹을 정도거든요. 돌무지의 무게만 해도 5t 트럭 198대분(992.41t)에 달합니다.

반면 출토품은 한결같이 ‘아담(한) 사이즈’였습니다. 금동관의 높이(23.2㎝)와 지름(16.5㎝)이 그렇습니다.

서봉총(높이 30.7㎝·지름 18.4㎝), 황남대총 북분(높이 27.3㎝·지름 17㎝)·금관총(27.7㎝·19㎝)·천마총(32.5㎝·20㎝·이상 금관) 등에 비해 작은 편이고요. 출토된 허리띠의 좌우 폭(34㎝) 역시도 ‘스몰 사이즈’입니다. 여성의 표지유물인 은장도도 출토됐습니다. 그래서 2020년 당시에는 주인공을 ‘150㎝ 안팎의 공주’로 추정했습니다. 주인공의 발치 쪽에서 확인된 바둑돌 860여 점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신라 공주의 헤어스타일

며칠 전 10년의 발굴을 끝내고 성과를 총정리한 시사회가 열렸습니다. 그동안 출토된 유물을 보존 처리해 완벽하게 복원한 결과물이 눈에 띄더군요.

그중 ‘비단벌레 꽃잎장식 직물 말다래’가 돋보이더라고요. 엄청 화려합니다. 하지만 복원품을 보면 175개의 금동달개가 들뜬 채(튀어나오게) 매달려 있습니다. 말을 타면서 밑에 깔아둔 실용품은 아니었다는 얘기죠.

직물의 복원품도 화려합니다. 붉은색, 보라색, 노란색 3가지 색상으로 무늬를 만든 삼색경금(三色經錦)이 돋보였습니다.

쪽샘 44호분의 출토품은 한결같이 ‘아담 사이즈’였다.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쪽샘 44호분의 출토품은 한결같이 ‘아담 사이즈’였다.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이번에 새롭게 밝혀낸 연구 성과 중 으뜸은 역시 ‘주인공’ 이야기라 할 수 있어요.

우선 금동관 주변에서 폭 5㎝가량의 머리카락 다발을 확인했습니다. 분석결과 황(S) 성분이 검출됐고, 주변에 두개골 조각이 나왔습니다. 헤어스타일도 파악했습니다. 1㎝ 내외 두께로 모발을 모아 직물로 감거나 장식한 흔적으로 보입니다.

또 2020년에는 주인공의 키를 150㎝ 정도로 추정한 바 있는데요. 당시에는 장신구의 착장 상태로 얼추 계산한 건데요. 이번에 목관 바닥의 크기 등을 정밀 조사해 키를 130㎝로 수정했습니다. 나이는 ‘10세 전후’로 추정했습니다.

불현듯 소환되는 5세 왕자

이 대목에서 불현듯 떠오른 경주 고분이 하나 있었습니다. 금령총입니다.

이 고분의 주인공은 ‘5세가량의 어린 왕자’로 추정됩니다. 금령총은 일제강점기인 1924년 발굴됐는데요.

금관을 비롯해 귀고리, 허리띠, 목걸이, 팔찌 등 순금제 장신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말탄 인물상(기마인물형 도기)도 2점 출토됐죠. 또 특이하게도 금방울(금령)이 출토됐습니다. 따라서 이 고분에 ‘금령총’의 이름이 붙었습니다.

‘금령총=5세 어린 왕자’로 특정한 근거가 뭘까요. 일반적으로 신라 고분의 주인공 성별을 구분할 때 ‘가는고리 귀고리-큰 칼=남성’, ‘굵은고리 귀고리-작은 칼(은장도 등)=여성’으로 판단합니다.

금령총 주인공의 머리 쪽에는 ‘가는고리 귀고리’가, 허리춤에는 ‘장식달린 둥근고리 큰칼’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남성으로 추정한 겁니다. 금령총 주인공의 나이는 어떻게 추정할까요.

주인공이 자리에서 노출된 각종 장신구로 추정할 수 있죠. 쪽샘 44호분처럼….

그러고 보니 ‘머리(금관의 장식 끝부분)-허리-발(발찌 추정 구슬)’을 잇는 장신구의 간격은 90㎝를 넘지 않았습니다.

금관의 크기도 작았습니다. 주인공이 착장한 금관 지름(15㎝)이 다른 고분의 출토품(천마총 20㎝·금관총 19㎝·서봉총 18.4㎝)보다 작았습니다.

금령총의 금허리띠를 봐도 그렇습니다. 허리띠의 ‘꾸밈 쇠붙이’가 23점에, 길이는 74㎝ 정도인데요. 천마총 금허리띠(과판 44점·길이 125㎝)에 비하면 상당히 작은 편이죠. 천마총은 왕 혹은 왕족인 성인 남성으로 추정되거든요.

그렇다면 천마총과 비슷한 시기(6세기 초) 조성된 금령총이 어린 왕자 무덤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됩니다.

여기에 90㎝ 정도의 키를 토대로 나이를 추론해볼까요. 2001년 경기 양주에서 17세기 중엽 미라 한 구가 발굴됐는데요.

신장은 99.4㎝, 치아로 측정한 연령대는 5.5세 정도로 밝혀졌습니다. 금령총 주인공의 키(90㎝)라면 5~6세 무렵의 왕자로 추정해볼 수 있다는 겁니다.

주인공의 머리맡에서 확인된 비단벌레 장식 말다래. 화려하지만 실용적이지는 않았다. 금동달개 장식을 세워 장식한 것이 그 증거다. 장례용으로 묻어주었을 것이다.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주인공의 머리맡에서 확인된 비단벌레 장식 말다래. 화려하지만 실용적이지는 않았다. 금동달개 장식을 세워 장식한 것이 그 증거다. 장례용으로 묻어주었을 것이다.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순장이 있고(쪽샘 44호분), 없고(금령총)

10세 공주(쪽샘 44호분)와 5세 왕자(금령총)의 무덤을 비교해볼까요. 두 고분은 340m가량 떨어져 있습니다.

무덤 조성 시기는 대체로 ‘5세기 말(쪽샘 44호분)’과 ‘6세기 초(금령총)’로 추정됩니다.

연대를 가늠해볼 수 있는 극적인 지표가 있는데요. 순장 유무입니다. <삼국사기>는 “502년(지증왕 3) 국법으로 순장을 금한다”고 했어요. 금령총에는 순장의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반면 쪽샘 44호분에서는 4~5명이 희생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주인공 옆자리의 공간에서 귀고리가 보였습니다. 누군가 순장된 흔적이죠.

생전에 주인공을 키우거나 돌본 유모(보모) 또는 시종일 수 있습니다. 주인공의 머리맡 석단에서도 금귀고리 등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다른 순장자의 것임이 분명합니다. 안타깝습니다.

만약 쪽샘 44호분의 주인공이 502년 이후에 죽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4~5명이라는 아까운 인명이 ‘순장’이라는 야만적인 풍습의 희생양이 되지는 않았겠죠. 주인을 위해 속절없이 따라죽어야 했을 가련한 순장자들의 비명이 들리는 듯합니다.

금령총의 특징 유물인 흙방울. 5세 왕자가 흔들고 놀았을 장난감이 아니었을까.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금령총의 특징 유물인 흙방울. 5세 왕자가 흔들고 놀았을 장난감이 아니었을까.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소지왕의 딸과 지증왕의 아들

‘10세 공주’와 ‘5세 왕자’가 어느 임금의 자녀였는지 특정할 수 있을까요. 백제 무령왕릉처럼 “내가 무령왕이요” 하는 명문 지석이 나왔다면 또 모르죠. 그러니 100% ‘누구의 왕자, 공주’라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쪽샘 4호분이 5세기 말 조성됐다면 그 시대를 다스린 임금이 누구냐, 그분은 소지왕(재위 479~500)입니다.

5세기 후반 21년이나 신라를 다스렸다면, 쪽샘 44호분은 소지왕의 딸, 즉 공주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럼 금령총의 주인공, 즉 ‘5세 왕자’는 누구였을까요. 순장제도를 국법으로 금한 지증왕(재위 500~514)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지증왕이 순장제를 없앤 뒤 시범케이스로 단 한 사람의 희생자도 없는 무덤(금령총)을 조성했을 수 있다는 거죠.

사고사한 5세 왕자, 병사한 10세 공주

또 금령총 주인공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었을 가능성이 있다는군요.

반면 쪽샘 44호분의 10세 공주는 그래도 죽음을 준비할 시간 여유를 갖지 않았을까 하는 추론이 있습니다.

근거가 있습니다. 국립경주박물관이 2018년부터 금령총을 재발굴했는데요.

그 결과 경주의 단독 고분 중 가장 규모가 큰 봉황대와 기존에 조성된 고분 2기 사이를 비집고 금령총을 끼워 넣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상하죠. 지름 30m에 이르는 고분(금령총)을 왜 그 비좁은 틈에 굳이 ‘입주’시켰을까요.

혹시 금령총 주인공, 즉 어린 왕자의 예기치 않은 죽음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즉 봉황대의 주인공(소지왕?)이 사랑했던 왕자(정궁의 소생이든 후궁의 소생이든)가 갑작스럽게 죽자 최고의 예우를 갖춰 장례를 지내준 것일 수 있답니다. 기존에 조성된 127-1, 127-2호의 앞에 끼워 넣을 만큼….

반면 쪽샘 44호분은 주변의 고분과 중복 없이 안정적으로 조성됐는데요. 비록 10세 안팎의 어린 공주였지만 죽음을 맞이할 시간이 좀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병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엄격한 매뉴얼에 따라 무덤을 조성하고 유물을 차곡차곡 쌓은 흔적이 역력합니다.

지난 7월 4일 경주 쪽샘 44호분 발굴현장에서 발굴 10년의 성과를 정리하는 시사회가 열렸다.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지난 7월 4일 경주 쪽샘 44호분 발굴현장에서 발굴 10년의 성과를 정리하는 시사회가 열렸다.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바둑돌과 돌절구

같은 왕자·공주였지만 신분은 왕자(금령총)가 더 높았던 것 같아요.

5세 왕자(금령총)는 금관을, 10세 공주(쪽샘 44호분)는 금동관을 쓰고 나왔으니까요.

두 고분의 ‘특징 유물’도 흥미롭습니다. 쪽샘 44호분에서는 ‘행렬도 토기’와 ‘바둑돌’, ‘비단벌레 장식 말다래’, ‘1500년 전 머리카락’, ‘삼색 직물’ 등을 꼽을 수 있는데요. 이중 10세 공주 무덤에서 출토된 ‘바둑돌’이 눈에 띕니다. 요즘 세계바둑계를 풍미하고 있는 최정 9단이 연상되죠. ‘신라판 최정 9단’이라는 스토리텔링이 가능하죠.

발굴단에서 ‘미는’ 유물이 ‘돌절구와 공이’입니다. 돌절구는 황남대총 남분에서도 출토 예가 있는데요.

이 유물이 약을 짓는 데 사용한 약용 절구였다면 어떨까요. 병에 걸린 어린 공주를 위해 생전에 약을 만들 때 사용했던 도구였을 수 있습니다. 공주가 죽자 그 절구와 공이를 묻어줬다는 스토리가 가능합니다.

기마인물형 도기의 모델

5세 왕자의 무덤인 금령총은 어떨까요. 첫 번째 특징적인 유물이 금령, 즉 금방울입니다.

금방울은 주인공의 허리춤에 매단 것과 금관에 달린 것, 두 종류가 출토됐는데요. 흙방울도 10점 정도 확인됐습니다.

흙방울 속에 소리를 내는 용도의 흙 구슬이 들어 있었습니다.

주인공인 5세 어린 왕자가 흔들고 놀았던 금방울·흙방울이었을 겁니다.

어쩌면 금령총만의 시그니처 유물은 ‘기마인물형(말탄 인물상) 도기’일 수도 있습니다.

5세 어린 왕자의 머리맡에서 확인된 기마인물형 도기는 두 점입니다. 한 점은 주인상(높이 26.8㎝)이라고 하고요. 다른 한 점은 그 주인을 따르는 하인상(높이 23.4㎝)이라고 하죠.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연구가 있습니다. 이 기마인물형 도기가 마치 누군가를 모델로 만든 인상이 짙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모델은 금령총의 주인공인 5세 어린 왕자일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저승으로 떠나는 왕자를 하인이 안내하며 따라가는 형국이죠. 국법으로 엄금한 순장제도를 이런 식으로 대체했을 수도 있습니다.

신라판 자동차 말을 사랑한 왕자?

또 하나 금령총에서는 유독 말과 관련된 유물이 많았는데요. 재갈과 안장, 발걸이, 말띠꾸미기 등 최소 3세트의 말갖춤새를 묻어주었는데요. 말 탄 이의 체구를 알 수 있는 안장과 발걸이가 소형인 것이 특징입니다. 주인공이 어린아이였다는 얘기입니다.

또 높이가 56㎝에 달하는 압도적인 크기의 말 모양 도기도 출토됐습니다. 이 말은 ‘메롱’ 하듯 혀를 쑥 내밀고 있어요. 꼭 어린 왕자와 장난을 치는 것 같아요. 요즘도 자동차를 좋아하는 남자아이들이 있죠. 1500년 전에도 죽은 5세 어린 왕자를 위해 생전에 그토록 좋아한 말 관련 용품을 넣어준 것 아닐까요. 따라서 어린 왕자의 사인을 ‘낙마 사고’로 추정하는 이도 있습니다.

물론 고고학적인 유물을 토대로 펴보는 상상의 나래입니다.

두 무덤은 공간으로는 340m, 시간으로는 30~40년의 간격을 두고 조성됐죠. 10세 공주, 5세 왕자의 그 짧디짧은 삶과 죽음의 이야기가 1500년 시공을 초월해 고이 전달되고 있습니다.

<이기환 역사 스토리텔러 Ikh07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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