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플라멩코와 재즈로 그린 억압과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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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와 <시카고>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플라멩코 군무 / 빅타이틀 제공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플라멩코 군무 / 빅타이틀 제공

무너져가는 벽체에 연결된 커다란 문이 전부다. 객석 앞 무대에 나란히 놓인 8개의 검은 의자와 중간 굽의 검은 구두들이 어떤 용도인지 궁금하던 차, 검은 드레스의 맨발 여성들이 줄줄이 등장해 의자에 앉아 긴 치맛자락을 들춰 구두를 신는다. 마치 무거운 족쇄를 자발적으로 채우는 듯 비장하다. 기괴한 소리를 내며 육중한 문이 열린다. ‘철혈 군주’ 같은 베르나르다 알바가 등장하자, 한국의 ‘창가’ 같은 스페인 노래와 함께 플라멩코 군무가 시작된다.

폭력의 세기인 20세기 초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의 프롤로그는 이처럼 강렬하다. 가정폭력범인 두 번째 남편 안토니오와 사별한 베르나르다 알바는 8년상을 고집하며 딸들을 억압한다. 베르나르다는 첫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큰딸을 성폭행한 인면수심의 폭력범인 안토니오를 방조해온 공동정범이기도 하다. 가부장(家父長)이 아닌 가모장(家母長) 서사다. 작품 전체의 프로덕션 디자인은 숨 막히고 어두운 블랙이지만, 조명과 리듬은 총천연색을 썼다. 감옥 같은 저택에 갇혀 교류도 연애도 금지당하고, 시기와 질투의 늪에 빠진 다섯 딸의 소리 없는 아우성을 상징한다.

오리지널팀이 내한 공연 중인 뮤지컬 <시카고>는 또 다른 결의 폭력성을 다룬다. 재즈가수가 꿈인 록시와 이미 유명 스타인 벨마는 각기 다른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살인을 한다.

뮤지컬 <시카고> 재즈 군무 / 신시컴퍼니 제공

뮤지컬 <시카고> 재즈 군무 / 신시컴퍼니 제공

여러 인종과 배경의 여성 살인범 6명이 무대 위에 등장한다. 저마다의 기구한 사연을 소개한다. <시카고>의 대표 넘버인 ‘셀 블록 탱고(Cell Block Tango)’ 장면이 압권이다. 무대 장치는 <베르나르다 알바>처럼 의자와 사다리가 전부. 대부분의 대극장 뮤지컬 오케스트라가 무대 아래 자리하는 것과 달리 <시카고>는 무대 위 가운데에 위치한다. 이 작품은 지휘자와 연주자들, 배우들의 밀당과 농담이 주된 볼거리. 블랙 재킷과 셔츠, 모자로 통일된 배우와 연주자들의 의상이 경계를 넘나든다.

끈적한 재즈음악과 재즈댄스는 여성 사형수들의 배경에 도사리고 있는 냉혹한 가부장과 보수성을 풍자한다. 강렬하고 열정적이며 직설적인 플라멩코와 달리 밀당의 완급 조절이 묘미인 재즈댄스는 타협과 풍자를 통해 폭력성을 갖고 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정작 죄가 없는 이민 여성은 사형되고, 록시와 벨마는 사기와 타협을 통해 출소에 성공한 뒤, 마침내 보드빌(춤과 노래를 곁들인 희극) 스타가 되는 스토리는 1930년 전후 시카고로 대변되는 무법천지의 현주소를 드러낸다. 파국에 이르는 <베르나르다 알바>보다 해피엔딩 같은 <시카고>가 더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다.

두 작품 모두 8월 6일까지 서울 정동극장과 블루스퀘어에서 상연한다.

<이주영 문화칼럼니스트·영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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