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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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아들이 말썽을 일으켰다고 칩시다. 생활관에서 후임을 갈구고 폭행을 일삼다가 소대장에게 발각됐습니다. 하루 이틀 된 일이 아니고, 1년 넘게 꾸준히 이어져온 상습구타였답니다. 자칫하면 구속될지도 모르게 생겼습니다. 부모라면 애간장이 타들어 가겠지요. 그렇다고 누구나 사단장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자초지종을 좀 알아봐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편집실에서]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

학교라고 다릅니까. 아들이 ‘학폭’ 사건에 휘말렸다고 칩시다. 동급생을 1년 넘도록 지속적으로 괴롭혀온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마땅히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를 열어 정확한 진상을 파악하고 피해 복구 및 재발 방지책을 모색해야겠지요. 실제로 이런 일이 10년 전 한 고등학교(하나고)에서 일어났는데요. 거짓말처럼 ‘없던 일’이 됐답니다. ‘학폭위’는 열리지 않았고,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은 생활기록부 기재는 물론, 징계도 피했습니다. 이 학생, 일반고등학교로 전학 가더니 버젓이 명문대학교에 입학합니다.

예, 맞습니다. 지금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설이 흘러나오고 있는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별보좌관의 아들 이야기입니다. 당시는 이명박 정권 5년차였고, 이 특보는 청와대 대변인과 홍보수석 등을 지낸 이른바 ‘권력 실세’였습니다. 아들의 ‘학폭 연루 시비’가 불거지자 김승유 하나고 이사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지요. 지위를 이용해 사건을 뭉갠 것 아니냐고 야당 의원들이 지적하자, 진상을 알아봐 달라고 했을 뿐이라고 해명을 늘어놓습니다. 자식이 곤경에 빠졌다고 중간 단계 다 건너뛰고 최고 정점에 있는 학교재단 이사장한테 직통 전화를 넣을 수 있는 학부모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 정도 반열의 권력자가 진상조사를 언급했다고 곧이곧대로 진상조사만 하고 끝내는 감 떨어진 재단 이사장은 또 몇이나 되겠습니까.

아들이 피해자 4명 중 1명과 ‘화해했다’는 내용을 강조하며 “지금은 아들이나 그 학생이나 서로 연락하며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항변하는 이 특보의 모습은 짠하기까지 합니다. 폭행의 기억이 얼마나 오래가는지 몰라서 그러는 걸까요, 아니면 알고도 감투에 눈이 멀어 모르는 척하는 걸까요.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불현듯 떠올라 악몽을 꾸고, 용서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되살아나 몸서리를 치게 만들고…. 폭행이란 그런 거라고 많은 피해자는 증언합니다.

이 특보를 감싸고 도는 대통령실과 정부·여당 인사들은 최근에 터진 ‘정순신 사태’의 교훈을 벌써 깡그리 잊은 걸까요. 선관위에서 터진 일련의 ‘아빠찬스’ 의혹은 그토록 매섭게 몰아붙이면서 자기 식구에 대해선 관대하기만 합니다. 남의 눈의 티끌을 지적하려면 적어도 제 눈의 들보는 빼고 달려들어야겠지요. 가뜩이나 정부의 ‘언론장악’ 논란이 본격적으로 불붙은 마당입니다. 그 핵심에 방송통신위원장이라는 자리가 존재한다는 사실, 하늘도 알고 땅도 알지 않습니까.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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