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식물 의·약사 제도 왜 시급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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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의·약사 자격면허제도의 도입 필요성 도표 / 대한민국 2030 미래농업 기술전망

식물 의·약사 자격면허제도의 도입 필요성 도표 / 대한민국 2030 미래농업 기술전망

<피로사회>의 저자로 잘 알려진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성과사회의 과잉활동과 과잉자극에 맞설 수 없는 현대사회의 일면을 비판한 적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지금 우리는 ‘위기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아프리카의 질병, 북한의 인권문제, 국토에 마구 뿌려지는 농약과 제초제 등 유해물질과 같은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아무도 귀 기울여 듣지 않아서 별 반향도 없는, 이른바 ‘소리 없는 위기(silent crisis)’는 더 심각한 실정이다.

우리나라 농경지와 골프장에 제한 없이 뿌려지는 유해물질이 몇십만t 규모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유해물질에 대한 생산통계는 있으나 소비통계가 없어서다. 쌀을 평생 연구해온 전문가로서 땅과 유해물질 그리고 농작물의 치명적인 순환 관계를 생각할 때 이만저만 걱정스러운 게 아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생물학적 위해요소의 발생과 위험 정도는 과거보다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국내에서 생산 및 유통되는 농산물뿐만 아니라 수입 및 수출 농산품의 안전성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2020년 1월부터 2021년 9월까지 잔류농약 위반으로 일본의 수출 농산물의 수입이 금지된 사례가 20건에 달한다(대한민국 2030 미래농업 기술전망·Ⅲ. 지속성장·p880·농촌진흥청). 앞으로도 이런 잔류농약 위반 사례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안전 사용 교육 프로그램을 일정 시간 이수하면 누구나 농약을 판매할 수 있다. 최근 정부 차원에서 자연을 지키고자 하는 식물 의·약사 제도가 논의되고 있는 건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 자꾸 미루면 국토 전체의 피해 규모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농작물의 병·해충을 진단하고 약제를 처방하기 위한 식물 의·약사 제도를 빨리 도입하지 않으면 같은 국가기관인 산림청에서 이미 3년 전부터 시행 중인 ‘나무의사’ 및 ‘수목치료사’ 제도와 충돌이 불가피하다. 국토에 뿌려지는 유해물질은 눈에 잘 보이지 않으나 누진적으로 작물 환경과 생태계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선진국은 저마다 농약을 철저하게 관리한다. 미국은 농약사용 허가제를 도입해 엄격한 기준과 교육과정으로 운영하고 있고, 일본과 대만도 국가 차원의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해 선도적으로 농약을 관리하고 있다. 심각해질 대로 심각해진 토양 때문에 병든 농작물을 치료할 의·약사를 우선 배출해야 한다. 나아가 생태계 보호를 위한 장기적이고도 종합적인 근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망가진 환경을 지금 이대로 후대에 물려준다면, 그로 인한 후손의 비용부담은 상상을 초월할 게 분명하다. 환경을 지키기 위한 국가의 노력과 자각 그리고 의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빠를수록 좋다. 더 늦기 전에 정부의 각성을 촉구한다.

<류수노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제7대 총장·(사)한국기능성작물생산포럼 이사장·유니오픈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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