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정책·철학 다 실종…문화도 ‘퇴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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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부천국제만화축제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카툰 부문 금상 수상작 ‘윤석열차’ / 인터넷 커뮤니티 화면 캡처

제23회 부천국제만화축제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카툰 부문 금상 수상작 ‘윤석열차’ / 인터넷 커뮤니티 화면 캡처

윤석열 정부 1년에 대한 평가는 사회 전 분야에서 참담한 수준이다. 문화 분야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타 분야에 비해 존재감이 미미했고, 상대적으로 큰 실책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농담처럼 “그나마 다행이지 않냐?”는 자조적인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문화정책은 역대 이전 정부들에서도 관심사에서 벗어나 있거나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큰 틀에서 보면 정책 방향이나 내용 면에서 별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정부마다 나름 문화정책의 목표와 방향은 존재했다. 정책적으로 독자적인 특징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윤석열 정부의 문화정책은 그야말로 아무런 특징도 찾을 수 없는, 문화정책의 부재 상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지난 1년간, 문화체육관광부에 대한 국회의 현안 질의 과정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내용이 ‘청와대 이전에 따른 활용 방안’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청와대 이전이 그만큼 논란의 대상이 되는 주제이긴 하다. 이는 반대로 이야기하면 결국 청와대 이전 건 외에는 논의할 거리조차 마땅치 않았다는 말이 된다. 윤석열 정부에서 내세우는 문화정책의 내용을 찬찬히 뜯어봐도 뉘앙스나 용어만 바뀌었을 뿐, 대부분 이전 정부에서 해오던 것들의 답습에 불과하다. 해오던 사업이라도 잘하면 다행이다. 세부사항과 현황을 살펴보니 현상유지는커녕 사실상 퇴행이라고 규정해도 무방한 수준이다.

윤석열 정부는 문화정책의 비전으로 ‘국민과 함께하는 세계일류 문화매력국가’를 제시한 바 있다. 문제는 이러한 수사를 뒷받침할 개념이나 철학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공허한 구호로밖에 들리지 않는 까닭이다. 문화매력국가라는 것에 대한 개념 정의나 근거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윤 정부만의 차별성 있는 정책이나 사업들도 거의 없다 보니 “아예 문화정책이 없다”는 비판마저 제기된다. 알맹이 없이 그저 미사여구를 나열하는 수준이다. 이런 수사마저 윤석열 정부가 내세우는 언어를 그대로 적용할 뿐이다.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자유와 공정’을 문화정책에서도 그대로 적용하는 식이다. 억지로 갖다 붙이다 보니 내용도 어색하고, 구조적 완성도마저 떨어지는 애매한 상황이 돼버렸다. 자유의 경우 ‘윤석열차’와 같은 예술검열 사건들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받고 창작환경의 자유가 위축되는 자기 모순적 상황에 빠져버렸다. 공정의 경우도 예술계 내에선 세대나 젠더, 지역, 국적 등 다양한 차별이 존재한다. 하지만 정책적 대상을 장애 예술로만 한정하고 있다. 이마저도 장애인의 보편적 권리나 환경 개선보다는 개별화된 홍보성 사업에 그치고 있다. 나아가, 각각의 정책 의제가 서로 연결되지 못한 채 단순 나열에 가까운 상황에 머물러 있다. 이들 의제를 어떻게 정책 비전과 연결할 것인지의 정책적 논리구조도 빈약하다.

문화체육관광부 홍보물 / 해당 홈페이지 캡처

문화체육관광부 홍보물 / 해당 홈페이지 캡처

‘K컬처’라는 공허한 슬로건 

윤석열 정부 문화정책에서 특히 강조하는 개념으로 ‘K컬처’가 있다. ‘K(케이)’는 한국의 문화콘텐츠가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면서 이를 지칭하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K팝, K무비 등이 널리 사용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보편이 됐다. 이에 따라 윤석열 정부는 ‘K컬처’를 정책적 용어로 본격 사용하기 시작했다. K콘텐츠, K아트, K관광, K스포츠 등. 문화영역의 거의 모든 분야에 K를 갖다 붙이고 있다. 실제 사용되는 방식을 보면 협소하기 그지없다. K컬처가 한국의 문화나 한국의 문화콘텐츠를 지칭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K컬처를 위한 특별한 접근이나 방법론이 있지도 않다. 다시 말해 윤석열 정부의 K컬처는 사실상 한국문화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몇몇 한국의 문화콘텐츠 인기에 편승하려는 얄팍한 속셈에 지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문화정책의 통합성과 전문성은 결여돼 버렸다. 문화(산업) 생태계에 대한 접근이나 협력체계에 관한 내용도 생략되고 말았다. 예를 들면 윤석열 정부는 인기 K팝 그룹을 통한 국가적 이미지 제고와 경제적 수익 창출에는 관심이 있지만, 그 토대가 되는 아이돌 육성 시스템의 폐해와 연습생들의 인권 문제, 산업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조건 등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오로지 결과를 내세울 수 있는 사업들과 이를 통한 가시적인 성과를 드러내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문화정책의 불균형이 점점 심화될 수밖에 없다. 현 정부 들어 이른바 돈이 되는 K컬처, 관광, 콘텐츠 등으로 정책의 방향이 과도하게 쏠리고 있다. 그에 반해 지역문화, 생활문화, 생활체육, 전통문화 등 문화영역들의 소외와 위축은 심각한 수준에 다다른 상황이다.

되살아나는 블랙리스트의 악몽 

‘블랙리스트’로 대표되는 예술검열 사건들이 다시금 확대되는 것도 중대한 문제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문화예술계의 문제를 정치적 이념화를 통해 정쟁적으로 풀어나가려고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윤석열차’ 사건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대통령을 풍자한 작품이 상을 타자, 주최 측에 주의를 줬다. 박보균 장관은 “순수한 공모전을 정치 오염시킨 게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이 예술검열이 아니라는 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주장을 폈다. 하지만 정치적인 부분을 문제 삼는 박 장관의 발언에서 이 사건은 이미 ‘예술검열’ 사건임이 드러난다. 더더구나 예술검열을 막고 표현의 자유를 지켜야 할 정부가 검열 사건의 주체라는 점에서 박근혜 시기의 블랙리스트 악몽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 1년 동안 예술검열 사건이 끊이질 않았다. 그 빈도도 점차 늘어가는 추세다.

블랙리스트는 단순히 예술검열 사건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당시 블랙리스트 사건은 국가 전체가 조직적으로 시민과 예술인을 검열한 국가 범죄였다. 이러한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이를 계획하고 작동시켰던 이들이 우선 책임을 져야겠지만, 이러한 국가단위 범죄 작동의 토양이 된 문화예술계의 고질적인 문제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술인의 불안정한 지위, 지원사업 중심의 예술정책, 권위주의적 문화행정과 관료주의, 문화예술에 대한 도구적 접근 등이 모두 원인으로 작용했다. 블랙리스트 철폐 운동은 예술검열 사건뿐만 아니라 이렇게 중층적으로 얽히고설킨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었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정부 들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는 ‘블랙리스트의 부활’은 문화예술계의 고질적 병폐가 다시금 강화되고 있음을 뜻한다.

미국 ‘LA 컨벤션 센터’와 ‘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 지난해 8월 열린 K컬처 페스티벌 ‘케이콘 2022’ 행사 모습. / 박선영 소장 제공

미국 ‘LA 컨벤션 센터’와 ‘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 지난해 8월 열린 K컬처 페스티벌 ‘케이콘 2022’ 행사 모습. / 박선영 소장 제공

이러한 상황에서 문화정책의 미래를 상상하고, 혁신과 변화를 논의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크다. 가뜩이나 지금 우리 사회는 기후위기, 기술자동화, 초고령사회, 지역불균형, 계급양극화 등 많은 변화를 겪고 있고, 복합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럴수록 문화정책은 좁은 의미의 문화예술 영역 정책이 아닌, 사회변화에 조응하고 시민의 삶과 일상을 변화시키는 철학이자 원리로서 변화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사회변동에 국가정책을 연결시키고 대응한다는 차원에서 문화정책의 개념을 잡고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문화정책은 지극히 단기적 성과만을 추구한다. 정책 사업들도 폐쇄적인 개별 사업 구조로 짜여 있어 한계가 뚜렷하다. 기존의 협치와 협력구조를 거부하고, 폐쇄적인 의사소통 구조를 고집해서는 유연한 정책적 대응은 불가능하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 인사과정에서 드러나듯 인맥과 정치성향에 따라 좌우되는 코드인사와 일차원적 성과 중심으로 작동되는 문화행정 관행은 일선 공무원들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정책적 사고를 가로막고 있다.

문화 거버넌스 확대하는 정책을 

문화정책이 정치권력의 도구가 아닌, 시민과 문화 현장이 지속적으로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전환이 필요하다. 지난 몇 년간 문화 현장은 블랙리스트와 미투 등을 통해 많은 사람이 상처를 입었다. 이에 대한 피로감이 컸다. 더불어 변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널리 퍼졌다. 한꺼번에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토론과 협치를 통해 하나씩 풀어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예술 공공기관, 전문기관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동시에 다양한 문화적 주체들과의 수평적 협력체계를 복원해야 한다. 이를 가능케 하는 문화 거버넌스 체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문화정책이 앞으로 미래사회를 살아가는 시민들 삶의 원리이자 원칙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혁신과 전환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조건이다.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변화의 목소리와 움직임이 현장에서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 1년간 사실상 퇴행에 가까운 행보를 보여주었던 윤석열 정부가 이제라도 문화 현장과 소통하고 협력하기를 바란다. 문화정책과 문화행정의 혁신을 통해 미래에 걸맞은 문화정책을 수립하는 방향으로 대전환의 큰 발걸음을 내딛기를 기대해 본다.

<박선영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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