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셰린의 밴시 - 작지만 참혹한 두 남자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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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건너에서 울려퍼지는 포격 소리. 조용히 시작된 두 남자 사이의 균열은 마을의 공기를 바꿔놓는다. 맥도나 감독의 치밀한 각본과 남다른 연출력이 설득력을 더했다. 두 주연배우의 뛰어난 연기도 큰 역할을 했다.

제목 이니셰린의 밴시(The Banshees of Inisherin)

제작연도 2022

제작국 아일랜드, 영국, 미국

상영시간 114분

장르 드라마

감독 마틴 맥도나

출연 콜린 파렐, 브렌단 글리슨, 케리 콘돈, 배리 케오간

개봉 2023년 3월 15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1923년 4월, 아일랜드의 외딴 섬 이니셰린은 모든 것이 한가하고 평화롭게만 보인다. 세상 걱정 없어 보이는 낙천적인 남자 파우릭 설리반(콜린 파렐 분)은 오늘도 절친한 술동무 콜름 도허티(브렌단 글리슨 분)의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콜름은 파우릭의 방문을 애써 무시하는 눈치다. 할 수 없이 파우릭은 먼저 술집에 가서 콜름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뒤늦게 술집에 나타난 콜름은 여전히 파우릭에게 쌀쌀맞게 대한다. 하루아침에 차갑게 변해버린 콜름의 행동에 파우릭은 안절부절못한다. 파우릭은 어떻게든 콜름의 변심한 이유를 알아내 마음을 돌려보려 애쓰지만, 그의 노력이 더해질수록 갈등의 골은 깊어져만 간다.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는 두 인물 파우릭과 콜름은 오랜 시간에 걸쳐 깊은 우정을 쌓아온 친구 사이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기질적으로는 양극단의 사람들이기도 하다.

파우릭은 현실에 만족하는 매우 본능적이며 단순한 인물로 그려진다. 반복되는 일상에 순응하며 자신이 가진 얼마 되지 않는 작은 것에도 애정을 쏟아붓는다. 여동생과 의지하며 살아가는 그는 동물을 좋아한다. 종종 술에 만취해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반면 콜름은 이성적이며 논리적이다. 바이올린과 작곡을 즐긴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조급함을 가지고 있다. 집안을 장식하고 있는 가면이나 장신구들은 콜름이 얼마나 다양한 예술과 문화에 관심이 많고 다층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인지 보여준다.

콜린 파렐과 브렌단 글리슨의 명연기

뼛속부터 완전히 달랐던 두 사람의 결별은 어쩌면 애초부터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불과 몇백m 바다 건너 본토에서 울려퍼지는 포격 소리를 들으며 이니셰린 섬사람들은 당장은 자신들과 상관없는 전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용히 시작된 두 남자 사이의 균열은 작은 마을의 공기 전체를 바꿔놓는다. 총칼이나 대포처럼 눈에 보이는 무기가 등장하지 않을지언정 전쟁에 버금가는 잔인하고 혹독한 과정과 상흔을 모두에게 남긴다.

이 모든 것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건 당연히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재능이 만개한 마틴 맥도나 감독의 치밀한 각본과 남다른 연출력이다. 감독은 이번 작품을 위해 과거 자신이 집필했던 동명의 희곡을 새롭게 각색했다. 더불어 두 주연배우 콜린 파렐과 브렌단 글리슨의 뛰어난 연기와 협연도 큰 역할을 했다.

여러 설정상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었던 <킬러들의 도시>에 등장했던 레이(콜린 파렐 분)와 켄(브렌단 글리슨 분)이라는 인물이 마치 다른 시대에 환생한 듯한 연결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두 배우는 꾸준히 마틴 맥도나 감독의 작품에 출연해왔지만, 이번 작품은 그 어느 때보다 뛰어난 성취를 일궈냈다.

인간의 본성을 탐색하는 거대한 우화

다소 관념적이고 사색적인 작품의 기조는 세트와 의상 제작 과정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감독은 “다큐멘터리나 고전 시대물 느낌이 아니라 시각적으로 독특한 매력을 갖춘 작품이 되길 원했다”고 말한다. 1920년대 아일랜드 내전 시대가 배경이지만 역사적 고증이나 현실성보다는 이야기와 캐릭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아름다운 자연을 담아낸 뛰어난 촬영과 인물들의 감정을 대변하듯 섬세하지만 절제된 음악은 흥미로운 이야기에 힘을 더한다.

이렇게 다방면의 포석과 노력으로 시작된 작은 우화 같은 이야기는 인간의 역사·정치·종교를 아우르는 철학적 질문과 사색으로까지 확장된다.

밴시(Banshee)는 원래 켈트 신화에 등장하는 요정의 이름이다. 잿빛 망토나 수의를 입고 다니는 여자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곡소리를 통해 죽음을 예언한다고 해 현대에 이르러서는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밴시를 소재로 한 다수의 공포영화가 존재한다. <이니셰린의 밴시> 속에서도 설화 속 묘사를 연상시키는 노파가 등장한다. 과연 그처럼 초자연적으로 특정된 존재만이 전쟁과 죽음을 초래하고 관장하는 존재일까? 영화의 중요한 물음이자 관객에게 많은 생각을 안기는 지점이다.

천재 극작가의 영화적 일취월장

왼쪽부터 마틴 맥도나 감독, 콜린 파렐, 브렌단 글리슨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왼쪽부터 마틴 맥도나 감독, 콜린 파렐, 브렌단 글리슨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마틴 맥도나는 1970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아일랜드 노동자 출신 부모 밑에서 태어난 그는 전문적인 영화교육을 받지 못했다. 거장들의 작품을 섭렵하며 거의 독학으로 ‘이야기 만드는 법’을 독학했다고 한다. 그는 오랜 기간 희곡 작가로 먼저 유명세를 쌓아온 인물이다. 셰익스피어 이후에 아일랜드와 영국이 낳은 최고의 극작가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작품들은 언제나 비극과 희극이 공존하는 아이러니가 빛을 발한다. 새로운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깊이와 혜안이 돋보이는 그의 작품 행보를 평가함에 있어 일취월장이라는 표현은 과하지 않다.

2005년 내놓은 첫 단편영화 <식스 슈터>부터 7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단편영화상을 수상하며 연출가로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참으로 불행한 하루를 보내는 중년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이후 꾸준한 협업을 이어가고 있는 브렌단 글리슨이 주연을 맡았다.

2008년 내놓은 첫 장편영화 <킬러들의 도시>는 그의 작가적 역량을 유감없이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뜻밖의 실수로 벨기에의 소도시 브루쥐로 도피하게 된 젊은 킬러와 선배의 우정을 다룬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당시 유행했던 범죄영화의 외형을 따르지만, 이전 동종영화에선 볼 수 없었던 낭만과 사색적인 분위기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후 전작과 비슷한 느낌의 블랙 코미디 <세븐 싸이코패스>(2012)를 내놓은 그는 2017년 <쓰리 빌보드>를 통해 자신만의 뚜렷한 색깔을 확정하며 작가임을 증명한다. 끔찍한 범죄로 딸을 잃은 한 여성이 진실을 찾고 복수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힘겨운 여정은 다양하고 다층적인 인간군상을 통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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