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와 블러드 문 - 스크린서 보기 드문 ‘찐’ 작가주의 독립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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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볼거리를 주는 블록버스터 대작들에 길들어 한동안 잊고 있었다. 한때 한국에서 컬트라고 불렸던 ‘작가주의 독립영화’라는 것이 이런 것이었다. 좋은 영화다. 영화가 남긴 잔상이 머리에서 오래 떠나지 않을 듯싶다.

제목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Mona Lisa and the Blood Moon)

제작연도 2021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107분

장르 판타지

감독/각본 애나 릴리 아미푸르

출연 전종서, 케이트 허드슨, 에드 스크레인, 에반 휘튼, 크레이그 로빈슨

개봉 2023년 3월 22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수입/배급 판씨네마㈜

판씨네마㈜

판씨네마㈜

묘한 영화다. 마녀, 그러니까 할리우드 아동영화에 등장하는 매부리코 마녀-이런 외모를 가진 마녀의 영화적 기원은 아무래도 <오즈의 마법사>(1939) 캐릭터 서쪽 마녀일 것이다-말고 정말 으스스한 느낌의 마녀라고 한다면 옛 소련 시절 만들어진 <마녀 전설(Viy)>(1967) 여주인공의 창백한 얼굴이 떠오른다. 그런데 한국출신 배우 전종서가 연기한 ‘모나’의 연기에서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그런 한기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감독의 장편 데뷔작 <밤을 걷는 뱀파이어 소녀>(2014)에 대해서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이번에 이 영화를 보고 이 특이한 아우라를 풍기는 작품을 만드는 이 영화감독은 도대체 뭐지? 하는 궁금한 마음에 찾아봤다(이번에 개봉할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과 이 장편 데뷔작 사이에는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버려진 자들의 땅(The Bad Batch)>(2016)이 있는데 그건 아직 보지 못했다. 넷플릭스에 공개돼 있다고 하니 조만간 찾아서 볼 예정이다). 이란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감독의 사진(박스 사진 참조)과 두 영화의 여자주인공을 놓고 보면 인종이 서로 다른 데도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그러니까 추정하자면 각 영화의 주인공들은 주류사회에서 당당히 살아가는 국외자로서의 자신을 표현하는 감독의 페르소나다.

주류사회 국외자 정체성을 반영한 주인공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 이야기를 하자. 영화의 시작 장면. 어느 캄캄한 밤, 카메라는 늪을 유영한다. 그리고 울려퍼지는 모나리자 노래. 이건 뭐지? 싶어질 즈음, 영화는 미국 뉴올리언스 인근 폐쇄 정신병동으로 넘어간다. 갇혀 있는 동양계 소녀. 자신을 학대하는 간호사를 마인드컨트롤로 제압하고 병원을 탈출한다. 정확한 나이나 태어난 날짜도 불명인 이 소녀는 아주 어린 시절, 12년 전부터 정신병원에 감금돼 있다. 형사의 탐문과정에서 이 소녀의 출신지는 북한이며 정치적 망명을 한 것으로 돼 있다. 소녀의 이름은 모나. 탈출 후 조력자들을 만난다. 우선 정신병원 인근 숲속에서 만난 히피들로부터 신발을 제공받고, 편의점 앞에서 만난 자칭 DJ로부터는 티셔츠를 제공받는다. 이어 햄버거 가게에서 우연히 만난 스트리퍼 보니 벨(케이트 허드슨 분)과 동행하게 되는데, 그건 모나의 ‘능력’을 알아본 보니 벨이 그의 이용가치를 깨달으면서다. 과연 모나는 능력을 발휘해 쩨쩨하게 팁으로 2달러 주던 남자들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지갑을 열어 탈탈 털어 돈을 건네게 된다. 다음 날 두 여성은 은행 ATM기 앞에 나타나 돈을 찾던 사람들로부터 수백달러를 갈취한다.

정신병원을 탈출한 이 위험한 한국계 여성과 스트리퍼 2인조는 이내 경찰의 추적을 받고, 스트립댄스로 생계를 꾸리던 보니 벨의 어린 아들과 모나는 닥치는 대로 첫 비행기를 타고 뉴올리언스를 떠나려고 한다. 불량스러워 보였던 자칭 ‘DJ청년’이 이들의 탈출을 돕고 나선다. 그리고 모나의 특별한 능력이 발화하는 건 블러드 문(혈월·血月) 일 때다. 장편 데뷔작처럼 영화의 대부분 시간적 배경은 밤이다. 하늘에 걸려 있는 붉은 달이 종종 클로즈업된다. 앞서 서두에서 묘한 영화라고 했던 건 전혀 논리적이지도 않고 치밀하게 촘촘히 구성된 내러티브가 아닌데도 영화가 깔고 있는 정서에 취하게 만드는 분위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영상으로 번역된 시(詩)라는 찬사를 받았던 짐 자무시 영화를 보는 듯했다가 어떤 장면에서는 웨스 앤더슨이나 쿠엔틴 타란티노가 연출한 것과 같은 미장센을 선보인다.

‘악의 축’ 나라에서 온 정체불명의 ‘마녀’

자막 번역이나 영화에 대한 소개에서는 거의 생략돼 있는데, 모나가 북한 출신이라는 것은 중요한 포인트다. 장편 데뷔작 <밤을 걷는 뱀파이어 소녀> 역시 캘리포니아에서 영화를 찍으면서도 ‘중동 어딘가의 도시’라는 설정을 태연히 제시했는데, 감독이 주인공 캐릭터에 투영하고 있는 주변부적 정체성은 모나가 무심히 돌리는 채널에 나오는 이란 정치 관련 뉴스에도 반영돼 있다(북한은 이란과 함께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설정한 악의 축(Axis of evil) 나라다). 화려한 볼거리로 눈요깃거리를 주는 블록버스터 대작 영화에 길들어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한때 한국에서 컬트라고 불렸던 ‘작가주의 독립영화’라는 것이 이런 것이었지, 하고 깨닫게 해주는 영화였다. 좋은 영화다. 오랫동안 영화가 남긴 잔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을 듯싶다.

이란 이민자 2세의 시각으로 해석된 장르영화

애나 릴리 아미푸르 인스타그램

애나 릴리 아미푸르 인스타그램


영화는 2021년 9월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월드프리미어로 공개됐다. 코로나19 시국 탓에 개봉이 미뤄졌다. 북미지역은 지난해 9월 30일 공개됐다. 영화의 각본과 감독을 맡은 애나 릴리 아미푸르(사진)는 1976년생으로 한국 나이로 47세다. 영화에서 한창 반항기에 접어드는 보니 벨의 아들이 메탈음악을 들으면서 ‘헤싱’(정말 그런 게 있는지 모르겠다. 메탈그룹의 기타리스트 흉내내며 ‘에어기타’를 하고 머리를 흔드는 걸 아들은 ‘헤싱’이라고 설명한다)을 한다는 게 아무래도 요즘 애들 감성이 아니라 조금 올드한 취향 아닌가 생각했는데, 감독의 나잇대를 보고 납득이 갔다. 하긴, 요즘 10대에게 오지 오스본은 10대 시절 헤비메탈을 들었던 현재의 장년층이 ‘뽕짝’을 보는 것과 비슷한 취급을 받는 모양이니까.

이란계 여성 감독이지만 감독은 본토박이 영국 출신이다. 필모그래피를 보니 영국 캔터베리 인근 바닷가마을 마르게이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미국 마이애미로 이주했다. 대학에서는 생물학을 전공했는데, 1년 다니고 중퇴했다고 한다. 좀더 나이 먹어 다시 샌프란시스코 주립대에 가서는 회화와 조형미술을 전공하고 다시 UCLA 연극영화과에서 각본을 진공했다.

감독은 열두 살 때 첫 공포영화를 찍는 등 일찍부터 영화 쪽 재능을 드러냈다. 장편 데뷔작인 <밤을 걷는 뱀파이어 소녀>를 찍은 것이 2014년이니 장편 입봉은 늦은 편인 듯싶다. 장편 전에는 여러 단편 영화를 찍었다. 위 데뷔영화 <밤을 걷는…>의 원작은 동명의 단편 영화라고 한다. 지난해 기예르모 델 토로가 총괄연출한 넷플릭스 시리즈 <호기심의 방> 네 번째 에피소드 <겉모습>도 애나 릴리 아미푸르가 연출했다. 여기서도 주인공 여성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캐스팅을 잘하는 것도 능력이다. 감독이 직접 그린 <밤을 걷는…>은 그래픽 노블로도 국내에 출판돼 있다. 앞으로 더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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