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맑은 눈의 광인이 노조위원장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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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1일 오후 서울 동자 아트홀에서 열린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발대식에서 송시영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부의장이 협의회를 소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2월 21일 오후 서울 동자 아트홀에서 열린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발대식에서 송시영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부의장이 협의회를 소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1단계: ‘MZ+노조’라는 형용모순

-회사생활이 즐겁고 하는 일에 만족하지만, 처우나 인사제도에 다소 불만이 있는 어느 회사원(K대리·30)과의 상담 중.

K 변호사님, 우리 회사에는 문제가 좀 있어요.

무슨 문제인가요?

K 일단 일이 많아요. 그래서 야근하려고 하면 정작 회사에서 못하게 해요.

회사가 야근 수당이 부담돼서이겠군요.

K 네. 그래서 야근은 못 하고 주말에 출근해요. 그런데 휴일근무수당도 주지 않아요.

부당한 일이네요.

K 그것만이 아니고, 저희는 공공기관인데 이사진들이 인사권을 마음대로 행사해요.

그래서 실제 불이익이 있었나요?

K 네. 불공정하고 억울한 일이 많아요. 서류전형, 1차 면접, 최종 면접제가 있는데, 대표의 지인이라 바로 다음 날부터 출근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회사에 말씀해 보셨나요?

K 아니요. 개인적으로 말하다가는 찍힐 것 같아요.

노동조합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떤가요?

K 노조는 인원이 많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두 명 이상만 있어도 됩니다.

식사 자리에서 먼저 나서 수저를 놓지 않고, 업무 시간에 에어팟을 귀에 꽂은 채 일을 하고, 상사가 야근하든 말든 눈치 안 보고 정시 퇴근을 합니다. 현재 방영 중인 SNL코리아 <MZ 오피스> 이야기입니다. ‘맑눈광’ 김아영도, 주인공 주현영도 속한 세대이니 MZ를 비하한다기보다는 특징을 익살맞게 표현했습니다. 과장됐지만 공감되고, 공감되기에 개그가 됩니다. 이 세대는 자기중심, 개인적, 수평적, 다양성, 여가, 재미를 추구합니다. 덜 지루하고, 더 간단함을 원합니다.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노동조합법 (이하 ‘노조법’) 제2조 제4호)를 의미하는 노동조합(이하 ‘노조’)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감도 있습니다.

그런데 세대를 막론하고 회사 내 지위(신분)와 급여(돈)에 대한 갈등은 언제나 있습니다.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노동자들의 노력도 늘 있었습니다. MZ+노조가 형용모순인 것 같아도, 단결과 연대는 필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현 20·30세대의 노동조합에 대한 태도는 과거 세대보다 오히려 더 긍정적이라고 합니다(경향신문 2023. 2. 27.자 “오히려 좋아”…청년세대, 노조에 ‘호감 UP’). 그렇게, 젊은 노동자들이 노조원이 됩니다.

2단계: 우리도 교섭 테이블에 앉게 해달라

전통적으로 노조가 결성되기 쉬운 생산직군과 달리, 사무직군에는 노조가 별로 없었습니다. 2020년도 들어 LG전자, 현대자동차, 금호타이어 등 제조업 대기업에서 새로운 노조가 설립됐습니다. 40~50대 생산직이 중심인 기존 노조와 달리, 20~30대 사무직이 중심이 된 사무직 노조입니다.

사무직 노조는 기존 생산직 노조와 노동조건과 고용 형태가 다르니, 생산직 노조의 교섭 테이블과 다른 별도의 교섭 테이블을 원했습니다. 생산직과 별도의 임금, 단체협약을 원했습니다. 즉 ‘교섭 단위 분리’를 원했습니다. 애초에 생산직 노조가 사무직군의 노동조건에 관심이 있을 이유가 없었고, 사무직의 임금을 높인다는 협상을 기대하기는 힘들었습니다. 사무직 노조가 생겨도 그 현상은 마찬가지였습니다.

(1)그런데 하나의 사업(사업장)에 2개 이상의 노조가 있는 경우, 2개 이상 노조 중에서 대표 노조만 회사와 협상을 할 수 있습니다(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 1개의 교섭대표 노동조합이 교섭합니다. 우리 노조법은 교섭 창구 단일화가 원칙입니다. 노동조합이 2개 이상인 경우 노동조합은 교섭대표 노동조합을 정하여 교섭을 요구 “하여야 한다.”(노조법 제29조의2 ①). 교섭 창구 단일화와 복수노조 허용 문제는 오래전부터 논의됐으나, 노조법이 개정된 2011년 7월 1일부터 시행됐습니다.

130개 소수노조가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으나, 헌법재판소는 합헌으로 판단했습니다(2011헌마338). 창구 단일화 제도의 보완으로 교대노조의 공정대표 의무가 있는데, 법원은 이마저도 소극적입니다. 교대노조가 소수노동조합 조합원들의 찬반 의사를 고려 또는 채택하지 않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절차적 공정대표 의무를 위반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대법원 2020. 10. 29. 선고 2017다263192 판결)고 본 것입니다(이 판결은 큰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노조법 주해 2023년 제2판II 171-174면).

(2)예외적으로, 2개 이상 노조가 각각 협상하는 ‘교섭 단위 분리’가 인정됩니다. 노조 조합원 간에 현격한 근로조건·고용 형태 차이가 있는 경우입니다. 회사가 2개 이상 노조와 각각 협상하면 되는데, 회사는 1번 교섭하기도 힘드니 그 이상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소수노조는 노동위원회, 법원에 가야 합니다. 이게 어려운 소송입니다. 유수의 대기업 사무직 노조가 도전했지만, 노동위원회는 각종 이유를 들어 기각했습니다.

코레일네트웍스 일반직 노조(서울행정법원 2021구합72543),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조(중앙 2022단위14)는 인용됐습니다. 금호타이어 사측은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에 불복해 행정소송과 집행정지를 신청했습니다. 올해 2월 17일, 집행정지신청은 기각됐습니다. 사무직 노조가 이겼습니다. 필자도 행정소송부터 노조 측을 대리하고 있는데, 파급효과가 큰 사건이라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3단계: 느슨해진 노동계에 긴장감을 줘

잘 알려진 상급노조이자 산업별노조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입니다. 오랜 기간 노동운동에 많은 공을 세워왔습니다. 다만 역사가 길고 권위가 생기다 보니 반발심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MZ세대가 노조를 결성한 것도 모자라, 노조들의 연대를 만들었습니다. 2023년 2월 21일 공식 출범한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가 그것입니다. LG전자, 서울교통공사, 금호타이어 각 사무직 노조를 포함해 8개 노조 6000여 명의 조합원입니다. 가입노조가 늘고 있습니다. 연례 파업이나 정치투쟁은 지양하고, 상생과 공정을 내세우며, 건전하고 올바른 노조 문화 확산과 노조 인식 개선 사업, 노동자 권익 향상을 위한 활동에 집중한다고 합니다.

①노동조건을 개선하고 ②노동자의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노조의 존재 목적입니다. 노·노 간의 갈등은 물론 좋지 않지만, 노조의 목적 달성을 위한 건전한 경쟁과 협력은 좋은 현상이고, 발생할 수밖에 없는 흐름이라고 봅니다. 한국노총·민주노총이 서로 존중하며 균형을 이루듯,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와 기존 노조들 역시 존중하며 발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노동자의 86%가 무노조 노동자이고, 신생노조의 86%가 상급 단체에 가입하지 않고 있습니다. 느슨해진 노조·상급노조의 저변을 확장할 기회이기도 합니다.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조 사건을 예로 들면, 교섭대표 노조의 전향적인 성명이 있었습니다. “교섭대표 노조는 헌법상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는 ‘교섭 단위 분리’를 찬성합니다”라는. 이 한 문장은 소수노조가 교섭 단위 분리사건에서 승소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됐습니다.

일은 기가 막히게 잘하지만, 항상 이어폰을 양쪽 귀에 꽂고 일하는 맑은 눈의 광인. 선배 주현영의 권고를 받아들여 한쪽 귀는 빼고, 또 뜻하는 바가 있어 노조를 설립한다면, 의외로 잘 해내지 않을까요?

※함께 고민해볼 만한 노동법·노동사건 관련 이야기를 제보받습니다.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변호사(lawyer_han@naver.com)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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