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와 인간의 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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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이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 있다. 인간의 본질 자체가 정보처리 기계이므로 뇌를 모방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가설과 신념을 갖고 있다. 제이 데이비드 볼터는 이들을 ‘튜링맨’이라고 불렀다. 2000년 즈음이면 인공지능이 완벽하게 구현될 것이라고 극단적으로 예측했던 수학자 앨런 튜링의 이름에서 따온 용어다.

중국 우한에서 열린 세계인터넷대회(WIC) 행사장에 있는 스크린 앞을 사람들이 걷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우한에서 열린 세계인터넷대회(WIC) 행사장에 있는 스크린 앞을 사람들이 걷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튜링맨은 컴퓨터나 AI 발명 이후 느닷없이 등장한 부류는 아니다. 유사 이래로 인간을 창조 또는 재창조하고자 하는 시도와 욕망은 연금술사의 이름으로 수없이 행해지고 또 실험됐다. 연금술사의 세계관에서 인간은 태엽 달린 인형과 같았고, 때론 영혼이 깃든 기계와 다르지 않았다. “인간은 기계라고 용감하게 결론을 내리자”고 했던 18세기 유물론자 라 메트리의 대담한 선언도 있었다.

신에 귀속된 존재로서 인간을 바라봤든, 노예적 도구로 접근했든 다수의 인간은 오랜 기간 비인간화의 대상으로 다뤄진 것이 인류의 역사다. 튜링맨들의 사고에 새삼 놀랠 필요가 없는 이유다. 그들은 앞선 연금술사들의 이상과 관념을 다른 모습으로 계승하고 있는 현대적 집단에 불과하다.

챗GPT의 등장은 21세기 ‘디지털 연금술사’ 튜링맨들의 목소리에 한껏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인간과 맞먹는 지능을 갖춘 인공일반지능(AGI)을 향한 첫걸음이라는 해석은 식상할 정도다. ‘죽는 게 두렵다’라고 응답한 구글의 생성 AI 람다처럼 기계의 지각 존재 논쟁도 일어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감각 기관에서 입력된 정보를 기쁨, 슬픔 등 감정적 사고로 매개하는 ‘생각의 존재’가 인간을 규정한다는 데카르트적 명제마저 위태로워지는 형국이다. GPT-4가 공개되고 구글 딥마인드의 스패로가 애플리케이션으로 등장한다면 우리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더 깊은 질문과 마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관념 혹은 인간의 조건에 대한 정의는 볼터가 말했던 대로 시대에 따라 달라져 왔다. ‘너 자신을 알라’에서 보듯 한계의 인식이 핵심 요건이 되기도 했다.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에서 확인할 수 있듯 생각의 힘이 관념에 깊게 자리 잡기도 했다. 인간과 자연 그것의 관계에 따라 ‘인간 본성’에 대한 이상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고, 또 변화해왔다. 최근 들어서는 기술의 관여가 더 큰 폭으로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중요한 건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지 정의할 때 기술이 기여해온 지분을 더 이상 간과하지 않는 일이다. 그것의 구성 요인으로서 자연과 함께 기술을 빼놓지 않는 유연한 사고 말이다. 기술은 인간에게 새로운 사유와 창조성의 실마리를 제공하며 문화적 격변의 초석을 놓았다. 과거에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자연, 기술을 종합하는 새로운 인간 조건의 상상, 그것을 깊이 탐구할 시점이다. 어쩌면 머지않은 시간에 ‘기계 지능과 협업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인간을 정의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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