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기술로부터 내 직업 지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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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이 다시 대유행이다. 이번에는 수많은 직업인이 존재의미에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번역하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 이제는 글 쓰는 사람까지. 나름 공들여서 하던 일이 명령어 몇 마디에 쏟아져 나오니 허탈할 따름이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2월 18일 열린 임시 대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2월 18일 열린 임시 대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극장 간판을 손수 그리던 직업은 사라졌어도, 넷플릭스의 섬네일을 그리는 일이 대신 생겼다. 언제나 변화를 읽은 사람들은 또 새로운 일을 찾아내고 그렇게 세상은 굴러갈 것이다. 그러한 낙관이 있는 사회에 기술 혁신은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는다.

어제까지 천직이라고 생각해온 내 일이 기술의 힘에 의해 대체되는 충격과 상실감은 보통내기로는 견디기 힘들다. 훌훌 털고 유행하는 업스킬·리스킬(향상교육·재교육)에 참여할 쿨한 중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면 직업을 지키겠다는 결단과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 본받을 사례가 우리 사회에는 이미 있다. 우선 강력한 산별노조가 필요하다. 단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칭하지 말고 ‘사’ 자로 끝나는 직업명을 붙여 협회라고 이름 짓는다. 이 노조의 절대 목적은 공급량을 통제하는 일이다. 이때 유용한 건 “돌팔이가 사람 잡는다”라는 명분이다.

의료법이 원천 봉쇄한 돌팔이 의사보다 돌팔이 산업 인재의 사회적 파급력은 어쩌면 훨씬 더 위험할 수 있다. 설계 오류로 교통사고가 나고 건물이 무너지는 위험도, 사려 깊지 못한 소셜 미디어 플랫폼 탓에 현대인의 우울증이 느는 일도 산업인재사법이 있다면 막을 수 있다고 산업인재사협회가 주장하자.

양반들의 하대를 받던 의사지만 근대 이후 그들은 법에 의한 지배에 성공한다. 나의 직업을 건드리는 시도는 무엇이라도 불법으로 만들어 버리는 힘은 지금 같은 변화기일수록 빛을 발한다. 그 어떤 기술 혁신이 벌어져도 노조, 아니 협회가 실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존재 자체가 돌팔이를 판별하는 일이니 대체인력도 없다.

그런데 유전공학 등 현대 과학은 머지않은 미래에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병을 고쳐주려 한다. 건강조차 프로그래밍하고 최적화할 수 있는 시대, 더 정확한 표적·맞춤 치료가 정보과학의 효율성과 맞물려 찾아온다. 스마트 워치로 혈압·혈당 등 우리의 생체 신호를 클라우드로 보내 아프지 않도록 관리받는 시대도 머지않았다. 의사의 일자리는 당연히 불안해진다. 하지만 사회의 건강과 후생은 증진될 수도 있다. 또 누군가는 새 생명을 얻을 수도 있다. 이 희망이 바로 기술의 힘이다.

지난해 말 의사·변호사 등 ‘사’ 자 업종을 중심으로 반(反)플랫폼 연대를 조직했다. 이들의 결의 앞에서 아직 초보 수준의 비대면 플랫폼들은 금세 지쳐간다. 로톡은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닥터나우는 의료법·약사법을 위반했다고 복지부에 혼쭐이 났다. 어린 수재들은 기초과학과 공학 대신 의대 정원부터 채워간다. 환자를 돌보는 일이 이들 모두의 적성에 맞을 리 없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극히 드문 합법적 공급량 담합의 힘을 이들은 잘 알고 있다. 한국의 의대 정원은 17년째 3058명을 유지 중이다.

<김국현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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