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거미-실화 토대로 그린 ‘살인 칭송하는 사회’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이란의 한 도시에서 차도르에 친친 감긴 채 살해된 윤락여성들. 살인범이 검거되고 진실이 드러날 때마다 여론은 뒤집힌다. 알리 아바시 감독의 말대로 “연쇄살인범 영화가 아니라 연쇄살인범을 만들어낸 사회에 대한 영화”다.

제목 성스러운 거미(Holy Spider)

제작연도 2022

제작국 덴마크, 독일, 스웨덴, 프랑스

상영시간 118분

장르 범죄, 스릴러

감독 알리 아바시

출연 자르 아미르 에브라히미, 메흐디 바제스타니, 아라쉬 아쉬티아니

개봉 2023년 2월 8일

등급 청소년 관람 불가

판씨네마㈜

판씨네마㈜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모티브를 제공한 ‘사이드 하네이 사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0년부터 2001년까지 약 1년간, ‘순교자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이란 최대의 종교도시 마슈하드(Mashhad)에서 16명의 윤락여성이 살해되는 희대의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의 피해자들이 하나같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의 차도르에 친친 감긴 채 발견되면서 이 사건은 ‘거미 살인’이라 불리게 됐다.

엽기적인 사건 자체도 문제였지만 더 큰 충격을 안긴 것은 이 사건을 바라보는 이란 정부와 대중의 반응이었다. 근본주의와 강경노선을 지지하는 계층에서는 연이은 살인 행각에 찬사를 보냈다. 그들은 정체불명의 연쇄살인범을 ‘퇴폐하고 타락한 사회에 저항하는 정의의 전사’라고 추켜세우기까지 했다. 급기야 일부 대중과 이란 보수 언론이 ‘영웅’으로 칭송하기 시작하면서 논란은 더욱 가중됐다.

사건 발생 1년 만에 살인범은 검거된다. 범인 사이드 하네이는 세 명의 자녀를 둔 가장이자 이란-이라크전에 참전했던 참전용사로, 이웃들로부터 존경받던 평범한 사람임이 밝혀지면서 새로운 파장이 일었다. 그가 “더러운 여성들을 죽여서 도시를 청소하는 종교적 의무를 행했을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혼란스러웠던 대중의 시선은 더욱 극명하게 양분됐다.

논란과 갈등의 제작 과정

재판과정에서 그의 숨겨진 진실이 하나둘 드러나며 여론의 추이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이드가 밝힌 범행동기부터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느 날 자신의 아내가 한 택시운전사에게 매춘부로 오해를 받은 일에 앙심을 품고 살인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오해의 원인은 도시에 매춘부가 너무 많기 때문이고 그러니 죽여 없애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종교적 의무’라 생각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그가 희생자들을 죽이기 전 성관계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된다. 계속된 논란 끝에 결국 2001년 4월 사이드 하네이가 교수형에 처해지며 사건은 일단락됐다.

유학을 준비하던 시기에 이 논란의 과정을 목격했던 알리 아바시 감독은 큰 혼란에 빠졌고, 언젠가 이 사건을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각오했다.

영화화가 본격화되고 사건이 각색되면서 가상의 인물인 라히미를 추가했다. 미궁에 빠진 사건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뒤쫓는 저널리스트인 라히미를 통해 장르적 구조를 보강함과 동시에 이란 여성들이 경험하는 현실적 사회문제들을 좀더 적극적으로 녹여내려는 의도였다.

공교롭게도 라미히를 연기한 배우 자르 아미르 에브라히미는 한참 인기를 얻기 시작하던 2006년쯤 ‘섹스 비디오’ 스캔들로 사실상 이란 영화계에서 퇴출당한 과거를 가진 인물이다. 당시 에브라히미는 비디오 속의 여성이 자신이 아니라고 끝까지 주장했지만 결국 이란 내에서의 활동을 포기한 채 프랑스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란 정부의 싸늘한 시선

<성스러운 거미>를 세 번째 장편영화로 내놓은 알리 아바시 감독의 작품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현실에 입각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재창조하는 재주로 꾸준한 주목을 받고 있는 연출가다. 그가 보여주고 있는 연출가로서의 차별성을 굳이 규정하자면 미학적 ‘기교’보다는 남다른 ‘서사’를 포착해내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작품 역시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나 실화 소재가 가진 민감한 화제를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차분하고 무난한 작품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성스러운 거미>는 연쇄살인범 영화가 아니라 연쇄살인범을 만들어낸 사회에 대한 영화”라고 설명한 감독의 말에서도 어느 정도 작품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제작 초기 감독은 이란 내에서의 촬영을 고려했지만 불발됐다. 할 수 없이 튀르키예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이를 알게 된 이란 정부는 튀르키예 정부에 압력을 넣어 추방했고, 결국 촬영의 대부분은 요르단 암만에서 진행됐다.

작품이 나온 뒤에도 이란 정부는 “악의로 가득 찬 거짓되고 역겨운 영화”라며 맹비난을 쏟아냈다. 심지어 이란 문화부 장관 모하메드 메흐디 이스마일리는 “이란 내 거주하는 사람 중 이 영화 제작에 참여한 사람이 있다면 처벌할 것”이라고 강경한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란계 덴마크인 감독 알리 아바시

판씨네마㈜

판씨네마㈜


작가 겸 감독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알리 아바시는 1981년 이란의 테헤란에서 태어났다. ‘사이드 하네이 사건’이 한창이던 2001년쯤 유학을 시작한 그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이후 덴마크 국립영화학교에서 영화 연출을 공부했다.

몇 편의 단편영화 작업 후 내놓은 첫 장편 데뷔작 <셜리>부터 2016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프리미어 상영 후 호평을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외진 호숫가 집에 사는 불임부부의 가사도우미로 오게 된 젊은 여성은 고용인의 부탁으로 대리모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후 처절한 고통과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사회적 통념과 특별한 개인 사이의 괴리를 꾸준히 탐구해온 그의 영화세계를 처음으로 선보인 작품이다.

2018년 내놓은 두 번째 장편영화 <경계선>은 <렛 미 인>의 원작소설로 유명한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단편소설을 영화화했다. 제71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받으며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는데, 사실상 그의 존재를 뚜렷이 부각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항구의 출입국 세관 직원으로 근무하는 티나는 독특한 외모와 사람의 감정을 읽는 남다른 후각을 지닌 여인이다. 보통 사람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를 자학하며 외로워하던 티나는 어느 날 자신과 비슷한 외모를 지닌 남자 보레를 만나 호감을 느끼면서 이제껏 알지 못했던 진실과 대면하게 된다.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젊은 감독에게 할리우드의 ‘러브콜’은 당연하다. HBO맥스를 통해 인기리에 방영 중인 게임 원작 9부작 드라마 <더 라스트 오브 어스>에서 알리 아바시 감독은 하이라이트인 8화와 9화의 연출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할리우드 진출의 시동을 걸었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시네프리뷰바로가기

이미지